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 - 한반도를 식민지배해 온 것으로 왜곡되어 온, 김종서의 한국사 복원서 5
김종서 지음 / 한국학연구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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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학의 아버지라 추앙받은 독일의 랑케에 의해 주창된 실증사학은 기존의 철학이나 신학에 의거한 역사 인식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근대화라는 크나큰 패러다임속에 새로운 역사 인식의 툴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랑케가 주장하는 실증사학 표현 그대로 역사 서술은 원사료(原史料)에 충실하면서 사실(史實)의 개성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역사란 많은 사상(事象)이 상호 관련되어 발전된 그대로를 기술해야 하며, 또 각 시대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개성가치를 간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실증사학의 사조가 조선의 한반도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 민족에 지극히 불행했던 시기인 일제 강점기 일본 식민사학자들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한국 사학의 거두로 알려진 이병도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일본유학을 통해 처음으로 실증사학을 접하게 되었고, 귀국해서는 조선총독부산하에서 한국사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우리에게 뼈아픈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립박물관에는 고조선에 대한 역사가 없다. 일반인들은 의아해할 수 있지만 강단 학계에서는 고조선에 역사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실증사학에 의해 원사료에 대한 사실의 신빙성이 부족하고 기존 몇몇 청동기유물에 대한 방사성 연대 측정등을 이유를 들어 부정적 견해가 통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들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자체 또한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통설에 의해 고조선을 비롯한 상고사에 대한 우리의 역사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시조라고 하는 이병도는 일본식민학자들과 손잡고 연구한 한국 고대사에서 일본의 식민주의정책에 적극 찬동한 인물이다. 일본은 식민지 정책의 정당화를 위해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고대 한반도내에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끼어 넣으므로서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였던 것이고 이에 맞장구 친 이가 바로 지금 강단 학계에서 추앙받고 있는 이병도이다.    


해방이후 이러한 상고사에 대한 재정립이 필수적이었으나 이승만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 지상주의로 인해 친일청산이 이루어지못하였고 단재 신채호선생을 비롯한 민족사관 사학자들의 주장이 위험스러운 사상으로 치부 받는 바람에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이제서야 우리의 상고사에 대한 재인식문제가 대두되었고, 재야사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사군의 실재 위치 연구>는 그동안 줄기차게 왜곡된 우리 상고사를 바로 잡고자 노력한 재야 사학자 김종서 박사의 의미 있는 연구서이다. 아마 기억을 학창시절로 되돌려 보면 고조선이 BC 108년에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나서 한나라는 다시는 고조선의 재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낙랑군, 현도군, 임둔군, 진번군의 4군을 설치 하였고 그 위치가 한반도내에 있는 것으로 학교에서 배웠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켰던 선생이나 그런 사실을 배웠던 학생이나 그게 사실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표적인 역사왜곡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게 되면 한반도내에 이러한 한사군은 존재하지 않은 거로 주장하고 있다. 이병도는 평양일대에서 발굴된 한나라 유적과 중국역사서에 명기된 패수를 대동강으로 비정함으로서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병도는 랑케의 실증사학에 입각하여 원사료와 발굴된 역사적유물을 근거로 부끄럽지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설은 이후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역사서가 대게 춘추필법의 방식으로 기술 되었다는 점과 당시 지명과 후대의 지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평양에서 발굴되었다는 유물의 조작성이 대두 되면서 이러한 통설에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김종서의 박사의 논거는 그동안 재약 사학자들의 막연하고 자기중심적인 학설에 비해서 상당히 과학적 근거를 가진 학설로 주목받고 있다. 굴곡지수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서 새로운 강역연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시의 거리는 지금의 지도상의 거리개념인 수평직선 거리가 아니였다 당시에는 어떤 지점에서 오르막 내리막등의 있는 구불구불한 거리를 실제 거리로 기록해 전하는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에 사실상 현대의 거리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조선의 강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연나라의 강역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착안에서 만든 것이 굴곡지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격파하여 2천리밖으로 밀어 냈다는 기록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나라의 강역확정에 의해 요동이냐 아니면 한반도내냐로 고조선의 강역이 고무줄처럼 늘고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굴곡지수등을 통한 필자의 연구는 한마디로 한사군은 한반도내에 존재할 수 도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동안 평양 지역에서 나온 고고학적인 유물에 대한 설명도 쉬워진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우리는 원사료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였고 고고학적 유물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본식민학자들의 유물조작사건도 있었지만 근시안적인 우리 학자들의 판단이 한 몫을 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학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망설이고 있다. 기득권의 영유와 그동안 자신들이 설파한 통설에 대한 전면부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들 입으로 마르고 닳도록 주장한 실증사학에 크나큰 흠집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자국의 역사는 자국이 지키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도 독도문제만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손들어 주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자국이 나서서 지키지 않는 역사는 그나라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하물며 그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자들이 나서서 자기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부여등의 역사를 자국의 지역역사로 편입시키는 이유가 장래에 있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사전포석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역사왜곡의 차원을 넘어선 한반도의 정략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제대로된 우리 상고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기존 강단 학계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고 일반인들의 역사인식도 새롭게 정립 시켜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종서박사의 한사군 실제 위치 연구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역사서이다. 물론 우리도 중국과 일본에 맞서 역사왜곡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체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정말 실증사학에 입각한 역사를 바로 잡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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