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 1884부터 1945까지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1
김흥식 기획, 김성희 해설 / 서해문집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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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500백년을 지탱해오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물론 지난 5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일본과의 7년전쟁, 그리고 청국과의 두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기본적인 사회구조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사실상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은 정조사후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대적, 역사적 변혁의 물결을 타고 조선은 近代라는 높은 파고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특히 일반민중에게 근대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했을까? 타의로 근대화를 물결을 타게 된 조선에 서구열강세력의 손길은 지배계층에게는 마수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일반민중들에게는 신천지를 보는듯한 환상에 빠졌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자리매김 하였을 것이다.

그런 신진문물중에서 가장 대중에게 근대라는 개념을 각인시킨것은 다름아닌 新聞이었다. 현대나 고대나 권력유지의 가장 큰 틀은 정보 장악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가 권력을 잡고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중세 조선도 예외는 아니였다. 이러한 정보를 지배계층만이 향유함으로써 정보 유출의 방지와 정보의 왜곡을 통해서 기난긴 세월 동안 민중을 통치해왔던 것이다. 그런 개념이 근대라는 물결을 타고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었던 것이 바로 신문의 탄생이다. 수백년동안 일반 민중들이 갈망했던 정보의 공유화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문의 역활은 지대한 것이다. 비록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는 시대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신문에 대한 역활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더 요즘 몇몇신문들에 대한 안타까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 是日也放聲大哭을 실어 정간당했던 <황성신문>, 그리고 한때나마 민족지라 자부했던 <동아일보>, <조선일보>등의 신문을 통해서 구한말시대에서 해방시기까지의 신문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을 추측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역사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획은 기존의 판에 박힌 역사적 인식을 고찰하는 개념을 초월하여 일반 민중에게 시사되는 많은 부분을 신문지상이라는 형식을 빌려 시대상을 대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 취득의 다양성이 떨어졌던 시대에 이런 신문의 역활은 바로 개인과 역사의 매게역활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번 책을 통해서 안창호와 재미교포들이 제작한 <공립신보>, 미국 호놀룰루에서 발행된 <국민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권업신문>과 임정의 기관지인 <독립신문>등의 희귀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서 한층 기획의 의도가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역사공부 특히 구한말의 역사에서 단순암기식으로 실체를 볼 수 없었으나 이번 책을 통해서 이러한 신문들을 접하게 된 점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문은 여론을 대변한다고 한다. 이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말이다. 지금도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변하는 신문이 있듯이 당시에도 그런 색깔을 지니고 있는 신문들이 있었다. 특히 한일합방을 계기로 주권상실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러한 경향을 더욱더 커지게 된다. 비록 일제의 검열이 강화되고 언론통제가 심한 시대였지만 그와중에서도 시대를 말하는 신문들이 있어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비록 정간이나 폐간의 어려움은 있었어도 이를 극복하고 민중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독립에 관한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했던 신문들이 있었기에 민중들이 그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신문과 비교하면 많은 점에서 부끄러운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시대의 신문들을 통해서 굳이 거대한 역사적 상황이나 시대적 소명 내지는 독립의 갈망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역사서의 행간을 통해서 역사를 투영 하듯이 신문기사의 행간을 통해 그 당시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문이라는 것이 그 시대상을 대표하는 기록물임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역사적 인식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매체의 다양성이 떨어졌던 시대에서 신문의 역활은 지금같은 그런 역활을 뛰어넘어 모든것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일반 민중에게는 더욱더 그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에 게재된 신문을 유심히 보면 그 재미가 한층 더 하다. 

1896년 4월 7일 <독닙신문>창간호에 나온 "광고"라는 기사에 신문 8장 가격에 10장을 준다는 마케팅 광고를 보면서 지금 신문사들의 마케팅전략과 비교해 볼 때 잔잔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또한 1905년 제국신문에는 민영환의 자살소식과 함께 광고란에 그의 부고를 실은점이 특이하다. 또한 소설이나 만평(우슴거리)같은 유머가 실여있는 점 역시 지금의 신문과는 다를바가 없다. 최초로 간행된 신문에서 출발하여 1918년까지의 신문은 대세가 정치적인 이슈등을 다루는 관보형식의 역활이 컷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19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다양한 알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고라는 형식을 빌려 본격적인 상업광고가 게재되고 있다. 이들 광고의 특징중의 하나는 유독 임질이나 매독 및 중풍에 관한 치료제 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의학적 수준으로 보아서 치명적인 질병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신식문물의 확대로 인한 제화점 광고와 여성들 바느질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제봉틀에 관한 광고, 그리고 화장품 광고등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봄나들이의 풍경들은 아마도 암울한 시기에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보라는 취지는 아니였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이렇듯 이 시대의 신문들은 그 당시 일반 민중들의 삶을 투영해주고 있다. 나라잃은 슬픔도 중요하지만 일반민중에게 가장 큰 걱정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었던 것 아닐까 싶다. 당시 신문을 통해서 역사적 인식이라는 거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반 민중들의 삶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도 봄나들이도 가고 싶은 것이고 외모에 대한 신경도 쓰고 싶은 것이고 신식의 의복과 구두도 신고 싶은것이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신문이라는 기록물을 통해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면 너무나 큰 억척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지금보면 유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더 솔직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역사적 사초나 기록물을 통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지향하고 있지만 반드시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접근일것이다. 그러한 의도 없는 역사적인식이야 말로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 인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들 민중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고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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