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쭉 수수께끼였다. 파벨 표도로비치 스메르쟈코프. 석사논문에서도 그에 대해 많이 썼다. 아마 이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써보는 중이다. 아무리 '구원'하려고도 해도 도무지 구원할 수 없는 캐릭터다. 왜냐면 그가 그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에 앞서 이반에 대해 썼으나, 뜻밖에도(-_-;;) <게재불가>를 받아, 그것도 심사결과를 너무 늦게 주셔서, 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나와야 스메르쟈코프 논문이 나가는데, 또 그래야 도-키 연구서를 꾸리는데.(음, 하지만 꼭 그래야 하나?) 아무튼 무척 의기소침했다. 그 여파도 있고 겸사겸사 날도 춥고 이삼일 자리보전하다가 일어났는데, 목디스크의 여파로 왼팔이 너무 아파 또 의기소침해졌다. 대학 시절의 절친이자 라이벌이었던 동기의 위암수술까지 전해듣고 더 의기소침해졌다. 앞으로 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건 이 모든 것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이라는 것. 과연 (희망만큼이나 허망한) 절망.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의 정조를 써본다. 바로, 증오. 다 싫어! 스메르쟈코프는 그것의 육화인 것 같다.

 

 

 

 

 

 

 

 

 

 

 

어머니가 중증자폐(1급)였던 것을 상기할 때, 또한 그의 여러 자질을 볼 때 분명히 그런 성향이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 자폐가 정신(지적)박약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이게 더 무섭다. 변호사 페츄코비치의 성격화가 제일 적확하다.

 

저도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가서 그를 만났고 대화도 나눴지만, 그가 저에게 불러일으킨 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건강이 허약하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성격이나 마음에 있어서는, 오 아니올시다, 이 자는 절대로 검사측이 단정 지은 것처럼 그렇게 허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는 그에게서 겁이라는 것을, 검사가 우리에게 그토록 특징적으로 묘사해준 그런 겁쟁이 같은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순진무구한 측면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제가 발견한 것은 순진함 밑에 감춰진 무서울 정도로 의심이 많은 성격, 그리고 극히 많은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사생아라고 생각했던 만큼(그런 증거가 있습니다) 자기 주인나리의 정식 자식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증오했을 수도 있습니다.”(3, 479-480)

 

마지막, 그의 자살에 대한 해석. 아이를 보내고 머리를 감는데 저 마지막 문장을 떠올라, 아, 가슴이 서늘했다.   

 

하지만 검사측은 그렇다면 왜, 대체 왜 스메르쟈코프가 유서에서 자백을 하지 않았는가? 라고 외칩니다. “어떤 일에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또 다른 일에선 그렇지 않았단 말입니까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말입니다, 양심이란 이미 뉘우침을 뜻하는 것인데, 자살자에겐 뉘우침이 있었을 리 없으며 오직 절망만이 있었습니다. 절망과 뉘우침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절망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할 만큼 악의로 가득 찬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살자는 자기 목숨을 끊으려는 그 순간 자기가 평생 동안 질투해온 자들을 두 배로 증오했을 지도 모릅니다.”(3, 484-485)

 

뉘우침”(회개)이 아니라 절망”, 그리고 죽기 직전에 그 동안 질투해온 자들을 두 배로 증오했으리라는 변호사의 말이 너무 격하게 공감되어, 그래서 너무 격하게 슬프다. 조시마의 말대로 진정한 지옥은 '사랑의 부재'이다. 그 스스로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못하는) 것만큼 무서운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옆집 아가씨 마리야 콘드라-나가 스-프를 사랑하지만, 스-프는 그녀에게도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그저 청자가 필요하고 거처가 필요하니 활용할 뿐. 이건 자폐와는 전혀 다른, 정녕 도-키만이 창조할 수 있었던, 우리 인간 본성의 아주 깊은 심연인 것 같다.

 

그냥 독자로서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외롭고 무서운 인물이 있을 수 있는지 놀랍고, 연구자로서 이 인물이 시사하는 문제가 너무 흥미로워 놀랍고, 소설가로서 도-키는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할 수 있는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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