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 나온 <잉.페.>를 보니 배우들의 모습이 새롭다.
유명한 무도회 장면. 깍아지른 것 같은 머리, 즉 옆머리를 다 치고 앞머리를 위로 다 올린 스타일, 그에게는 참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저 엄정한 자세와 날카롭되 열정적인 눈빛이 압권.
남편 몰래(실은 그 남편이 호텔-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차 안에서 밤 샜다, 불쌍한 제프리(콜린 퍼스), 연인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카이로의 시장. 이 장면 너무 좋다!
"Shall we be all right?" "Yes." 좀 있다가 한 번 더 "Yes". 다시 잠시 뒤 "Absolutely." 이 대답 패턴은 모래 바람에 갇혔을 때 알마시의 답과 똑같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흑발보다(이건 [네번의 결혼식...]) 금발이 더 잘 어울리고, 특히 이 영화에서 다소 긴, 옅은 웨이브 진 금발 머리를 묶은 저 하얀 리본이 무척 예쁘다. 처음 그를 찾아왔을 때도 (목이 깊게 파인 흰 원피스와 함께) 저 리본을 하고 있다. 백인이라 이런 화이트 원피스, 화이트 재킷도 잘 소화되는 듯.
이건 <쉰들러 리스트>에서의 랄프 파인즈. 배우와 배역 사이의 찰떡 궁합.
이랬던 그가 최근 <비거 플래쉬>에서는 정녕 안타까운 모습이다.(<해리 포터>는 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ㅋㅋㅋ) 사십대까지는 그래도 괜찮더니(<더 리더>) 오십을 넘으며 M자 형 탈모가 진행, 아, 정녕 없어지는 머리카락을 막을 길 없구나. 하지만 놀라운 건, 저렇게 허물어지고 망가진(?!) 모습으로 당당히 자신의 맡은 바 역을 수행하는 그 프로 정신이다. 그 때문인가, 헐렁한 뱃살을 마냥 드러내고 즐겁고 명랑하게 헐렁한 춤을 그의 모습이, 묘하게, 위안을 준다. 사실 오십대가 이 정도 몸이면 정말 관리가 잘 된 것이라는 사실이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체호프의 희곡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기분. 마치, 얼마 전 포착된 디카프리오의 '물총' 놀이 사진이 그렇듯, 어쩜 그리 행복해 보이냐. 위의 저 무도회 사진과 너무 대조적이다.
<올란도> 시절부터 진짜 4차원 배우로 여겨지던 틸다 스윈턴과 함께. 진짜 4차원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늙음이 별로 안 느껴지는 정말 특이한 배우다.
노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을 향해가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내 인생의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