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너무 궁하던 차, 어제 수업 직후에 은행에 돈 빌리러 갔다가 나의 우수했던(!) 신용 등급이 하락하여 5백만원도 빌릴 수 없음을 확인, 아연실색하였다. (작년에는 그 자리에서 천만원을 빌려주더니!) '수신'(이런 어려운 용어란?!)이 꾸준히 5백은 되어야 한다나. 아니, 그 5백이 안 되니, 돈을 빌리려는 것인데! (같은 이유로 그 유명한 '마이너스 통장'도 안 된다니!) 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뭐, 오래 곱씹을 것도 없이, 그들이야말로 옳은 것이고, 나야말로 (거지임에 덧붙여) 등신임이 금방 깨달아진다. 그리고 나만 아는 '등신-스러움'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이 모든 것이 전부, 소설 때문이라는 점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빌어먹고 (날도 추워지니!) 얼어죽을' 소설이다. 폐가망신하기 위해 소설 쓰나 보다. 흥, 그래도 계속 쓸 테다. 안 쓰고 수가 있나. 시시콜콜, 이런 정황 역시 너무 소설적이다.

 

 

 

 

 

 

 

 

 

 

 

 

 

 

 

 

소설이 언제부터 '돈'을 문제 삼나. 단순히 가난(빈곤), 기아 등등이 아니라 '돈' 말이다. 아무래도 자본주의가 있어야하고 대도시가 있어야 하고 또한 돈의 희로애락을 다 보여주려면 장편이어야 한다. 역시 발자크. 그의 인생 자체가 '돈 있음(넘침)'과 '돈 없음'의 시소 놀이임을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대놓고 '돈 타령'하지 않으나 쥘리앙 소렐이 꿈꾸었던 그 부르주아(그 이전엔 귀족이었을 터) 사회 역시 결국 돈에 기반한 것. <마담 보바리>는 예의 그 시니컬한 플로베르의 세계관이 반영된바, 돈(=신용카드 빚)으로 신세를 망치는, 19세기판 프랑스 파리판 '된장녀' 스토리로 읽을 수도 있을 정도다. 엠마가 사랑 때문에 망했다는 사람은 소설 대충 읽은 거다. 소설(특히 연애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미모(치장)이고 거기에는 엄청나게 돈이 든다. 엠마는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 위해 옷을 너무 많이 산다(맞춘다). 굳이 돈이 화두는 아니지만, 내친 김에 에밀 졸라도 떠오른다. <인간짐승>은 유감스럽게도 읽지는 않았으나, 너무나도 '졸라스러운' 제목이다.

 

 

 

 

 

 

 

 

 

 

 

 

 

 

 

 

돈에 대한 가장 건전한(-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관, 말하자면, 근검절약하는 중산층의 세계관의 모델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이 청혼(심지어 연애, 라고 하기도 뭣한!)과 결혼(심지어, 결혼식)의 과정, 즉 '짝짓기'로 이루어진 그녀의 소설에서 결혼 상대들의 재산, 재력은 무척 중요한 요건이다. 문제는 등장인물이 거의 모두, 이런 문제를 꺼림칙하거나 불편한 어떤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이게 그들 인생의 제일 중요한 화두이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물론 걸작임에는 확실하지만!) 이 소설은, 개츠비가 데이지에 대해 말하듯, 돈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것이 거의 푸짐한 똥냄새처럼 느껴졌던 소설. 역시 미국소설답다는 느낌을 비교적 최근에도 받았다. 데이지를 얻기 위해 돈을 펑펑 써대며 연일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 정녕 위대하다.  

 

 

 

 

 

 

 

 

 

 

 

 

 

 

 

 

러시아의 문학의 경우, 귀족-지주 작가는 돈 냄새가 자욱한 소설을 쓴다, 당연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외모와 매너와 재력 때문에) 열등감을 많이 느낀 투르게네프의 소설이 시종일관 온건한 사상과 세련된 서정주의로 가득 찬 것도 돈 많은 여지주의 외아들(?)이었던 그의 태생과 무관하지 않다. 한데, 그보다 더 부자였던 톨스토이는 훨씬 더 사실적인(!), 말하자면, 생활밀착형 소설을 쓴다. (언젠가 그와 돈 얘기를 했다.)

 

 

 

 

 

 

 

 

 

 

 

 

 

 

 

 

소위 세기말의 작가, 체호프는 어떤가. 사실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체호프 때문인데, 그에 관한 논문의 최종 교정본을 고치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해서이다. 

 

(...) 이런 시작에 걸맞게 다음날 치러진 결투(19)는 시종일관 희극적이다. 무엇보다도, 새벽 5, 결투의 참여자들이 모두 모였고 위치도 정해진 상황에서 계속 꾸물대자 먼저 입을 연 의사의 말이 압권이다

 

- Вам, вероятно, еще не успели сообщить моих условий. Каждая сторона платит мне по 15 рублей, а в случае смерти одного из противников оставшийся в живых платит все 30.”(444) 

아무래도 여러분에게 저의 조건을 아직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군요. 양측 모두 저에게 15루블씩 지불하고, 적수 중 한 쪽이 사망할 경우 살아남은 쪽이 30루블은 모두 지불한다, 입니다.”

 

심지어 이 말을 꺼낸 것도 굳이 돈 때문이 아니라, 사모일렌코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온 까닭인지, 관련자들에 대한 증오(“просто из ненависти, 444) 때문이다. 이런 정황까지 포함하여 결투에 입회한 의사가 소위 수임료를 언급하는 것은 문학사적으로 유례없는 일일 법하다.

 

<결투>의 주인공들은 정말 한심의 극치다. 고등백수, 한량인 라옙스키는 빚이 맨날 놀고 먹느라(카드, 술) 최소한 7백루블이나 되고 그의 사실상의 아내인 나제쥬다 역시 (보바리처럼!!) 옷을 너무 질러서 역시나 옷가게에 3백루블이나  빚을 졌다. 이곳, 카프카스의 터줏대감인 마음 좋은 의사(사모일렌코)는 사람들한테 돈을 너무 많이 빌려줘서 완전히 빈털털이인데다가, 더 가관인 건, 이놈한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저놈한테 꾸는 식으로 살아와서, 그 자신도 빚쟁이라는 것이다. 정말 너무 체호프적인 인물들이다!

 

 

 

 

   

 

 

 

 

 

 

 

 

 

 

체호프 주인공들의 이런, 뭐랄까, 어딘가 초월한 듯한 극도의 한심함은 희곡에서 더 도드라진다. 돈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특히 <벚꽃 동산>은 부동산이 처분되는 이야기니 더더욱), 인물들의 어린애 같은 울음과 또한 역시나 어린애 같은 웃음이 독자를 역시나 울게도, 또 웃게도 만든다. 한 반 세기전, 고골은 바로 이 돈(=속됨, 속물성, 비루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쳐 죽었다.

 

 

 

 

 

 

 

 

 

 

 

 

 

 

 

 

소설 속 돈, 의 테마에서 절대 빼놓은 안 되는 작가는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다.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은 돈(혹은 가난)에서 출발, 그 흐름을 타고 이어진다. 가난해서 사랑도 잃고, 돈으로 사랑을 사려고 하고, 돈 때문에 아비 죽이고. 오죽하면 연구서 제목까지 이렇게 빠질 정도이다. 

 

 

 

 

 

 

 

 

 

 

 

 

 

 

 

물론, 출발은 돈이었을지언정 그 기나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돈은 저 멀리 밀려나고 세상에는 오직 쓰는 나와 쓰이는 소설 밖에 없었을 터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런 걸작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한데 우리 문학에서 돈은 어떤가. 아, 정녕 우리는 너무 굶주렸던 것인가. 도무지 돈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 불가능했던 듯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소설은 이런 것들. 특히, '해학'의 작가로 알려진 김유정의 <소나기>(아내에게 매춘시키는), <땡볕>(뱃속에 사산한 아이를 가진 채 죽을 것이 예견되는 아내) 등은 다시 읽어도 그 가난과 무지의 무게 때문에 너무 충격이었다..ㅠ.ㅠ 항상 굶주렸던 어린 아이가 떡을 많이 먹어 죽는(?) 결말의 단편도, 나의 유년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어, 울컥, 했던 소설이다.  

 

 

 

 

 

 

 

 

 

 

 

 

 

 

 

아마 그 다음은 지난 시절, 노동자 소설 같은 걸 꼽을 수 있을 터. 그런데 어째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나. 고작해야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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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렇지 않나. 헬조선이라고는 하지만, 더 이상 돈-빈곤은 우리의 문학적, 소설적 화두가 아닌 시대가 됐다. 덕분에 소재-주제를 찾기 더 힘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 여하튼 다른 의제가 필요한 때다. 차라리 지진? -_-;;

 

언젠가 여동생이 말하더라. 돈이 있으니 싸울 일이 없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물론 일상의 소소한 불행, 다툼이야 끊이지 않지만, 오히려 돈 덕분에 그것이 쉽게 무마된다는 것. 돈이 있어 보니, 우리 성장기의 많은 불운이 거의 99프로 돈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었음을 알겠더라고. 심지어 육체적인 부분, 가령 차 멀미를 많이 하는 것 역시도, 소화기 장애와 자동차에 익숙치 않음(당연히 자가용이 없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다녔고 여행도 다니지 않았으니)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현재, 부유한 인세생활자에서 거렁뱅이 시간강사로 전락하니,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어디에 나오는 대사대로, 세상이 거의 통째로 나를 멸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역시나 체호프식으로 희극 비스므리하게, 받는다. 아웅, 어디선가 돈벼락이 떨어져야 할 텐데, 과연 어디서? 그러게 이런 이야기들이 있지 않나. [고래]에서도 어느 장면에서 지붕에서(??) 돈이 떨어졌는데,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꿈과 희망'을 주는 소설이 필요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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