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역사서를 더 보면 좋겠지만, 나도 생업이 있는지라 한 2, 3년 전 수업 준비차 읽은 책들을 떠올려 본다. 하나 같이 지리멸렬한, 오직 의무감에 의해서만 읽을 수 있는 그런 망할 책들이었다. 비단 역사뿐이랴. 문학도 그렇지만 이런 망할(^^;) 책들이 참 많다. 그나마 '콘텐츠'라도 튼튼하면 고마울 텐데...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책은 랴자놉스키 역사서였다. 이번에는 새로 나온 플라토노프의 저서를 읽어보았다. 여기서 놀라운 것이, 가령 (어제 주경철 책을 읽다 상기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 정확히 그 시기를 서술하는 관점이었다. 표트르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인 반면(그야 당연한 것이, 그가 극악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그런 동력 없이는 역사는 한 발도 진보하지 못하니까) 예-나에 대해서는 굉장히 경멸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이념이나 사상, 업적이 아니라, 근본적인 요소, 즉 '여자-사람', '외국인'이라는 것 등인 것 같다. 다시금, 외국(적국)에 시집 온 왕비는 인질이나 다름 없다, 라....  

 

우리가 아는 예-나 여제는 보다시피 전형적인 관리가 아주 잘 된, 포샵질도 많이 한 중년 아줌마 왕비이다. 그녀 스스로 연출하고자 한 이미지는 우아하고 관대한 여성 계몽 군주.(그녀에 관해 공부할 때는 항상 그녀가 볼테르와 서신 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역시나 여자에게 붙일 수 있는 각종 나쁜 걸 다 붙인다. 특히 '음탕'이 꼭 붙는다. 그가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실은 다른 남자의 소생이라든가(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정신 지체에 성불구였던 듯하다) 정부(이른바 총신들)가 많았다든가 등등. 남-왕이 후궁을 거느리는 것은 극히 정상, 심지어 장려되지만 여자-왕비는 정반대인 것이다.

 

아무튼 예-나의 이른바 방종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44년을 살아보니 그 역시 이해되는 것이다. 그녀가 러시아에 온 건 대략 열 일곱(?)살 때인가 그렇다. 러시아어도 모른 채 왔다. 러시아에 온 뒤 그녀가 제일 먼저, 아마 무척 전투적으로 한 일이 러시아어 및 풍습 습득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라. 정녕 봄날이다! 이번에 처음 본 초상화인데, 헐, 역시 젊음이 미모의 동의어이다. 그냥 여자-사람으로서 그녀에게는 권력, 사랑, 미모 등등 뭐든지 다 필요했으리라. 사랑도 플라토닉러브, 현실적 사랑(결혼), 열정적 사랑, 육체적 사랑 등등 종류별로 다 필요했으리라. 그 역시 우리 인생의 한 시절에만 허락되는 소중한 것. 그때 향유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는, 허무한 것이다. (덧붙여, 딴 얘기지만, 그런 식으로 임신, 출산되는 아이를 이제 다 받아서 키우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풍비박산나게 생겼다. 외국처럼 이른바 미혼모, 때론 어린 미혼모와 그들의 아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유학 시절, 유모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러시아 엄마들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런 장면에 대해 천박한 생각을 하지 않을 의식이 우리도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어쨌든 그녀(들)는 아이를 낳는 쪽을 택했고 남편 없이(혹은 유명무실해도) 키웠다.)    

 

 

러시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출신의 여자가 자기 나라를 쥐고 흔든 것이 무척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 심사가 곳곳에서 느껴져 읽는 독자(즉, 나)가, 이른바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무척 불편했다. 역사학자는 어떤 입장, 관점을 물론 가져야하지만, 시쳇말로 너무 '꼰대'스러워서 말이다. 러시아에서 방영된 이 역사 드라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도무지 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적어도 비주얼만은 멀쩡에 가까워보인다. 아마 젊은(어린) 예카테리나(캐서린, 카테린느)도 실은 저런 이미지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나아가 어지간한 강단과 독기가 없었으면 그 무서운 러시아의 궁정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 아, 물론 세상의 모든 궁정은 다 살벌하겠지만.

 

 

한편, 표트르 대제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왕위를 빼앗으려던 자가 있었다. 소피야 알렉세예브나라, 라는 이름의 이복누이이다. 나중에 정권을 잡은 다음 표트르는 정적을 다 처리하고 그녀를 소도원에 가둔다. 동생의 왕좌를 뺏으려 했고 또 못된 짓도 많이 했으니(세조^^;;) 벌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할 때, 저 삼엄한 18세기에 그토록 담대한 여자-사람이 있었음은 좀 놀랍긴 하다. 레핀은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수도원에 갇힌 모습. 그녀가 남자였다면 제 아무리 표트르라도 그렇게 쉽게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아, 물론, 표트르의 위대함이야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누구라도 저 얼굴 한 번 확대해보고 싶지 않은가. 이렇다! 후덜덜

 

 

 

이렇게 추운데, 그래서 또 작년 이맘때처럼 독감에 걸릴까 무서운데 벌써 봄신상품이 나온다. 아울렛에도 작년 상품들이 대거 넘어오기 시작한다. 추워서,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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