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이슬비가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오후엔 그쳤기에 깜박 우산을 놔두고 퇴근해 버렸다.
다행히 마로를 찾아 어린이집에서 나와 버스를 탈 때까진 하늘이 흐릿하긴 해도 말짱했다.
그러나 1분도 안 되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내릴 때는 굵은 소낙비가 퍼붓는 것이다.

잠시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봤지만 좀처럼 그칠 기색이 없어
할 수 없이 내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마로 머리 위에 뒤집어씌우고
쫄딱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하는데 얼마 못 가 마주오던 젊은 아주머니가 우산을 씌워주셨다.

"어디 사세요?"
"고맙습니다. 바로 보이는 아파트에요."
"202동 사시는 분 맞죠? 제가 본 적이 있는 거 같아서. 이거 쓰고 가세요."
퇴근하는 남편 마중을 가며 챙겼을 우산 하나를 불쑥 내미셨고, 내 손을 끌어 쥐어주셨다.
마로 때문에 차마 사양을 못 하고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사이 그분은 서둘러 제 갈 길을 재촉하여
간신히 호수만 물어보고 헤어졌다.

배불뚝이 임산부를 알아보신 것인지, 마로를 알아보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아파트 사는 인연을 기억하고 선뜻 우산을 빌려주신 고마움을 주체 못해
집에 오자마자 젖은 옷만 갈아입고 바로 서재에 끄적끄적.
지금쯤이면 남편과 다정히 한 우산 쓰고 돌아오셨을까나?
자두 몇 알이라도 챙겨 내려가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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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7-0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갔다왔어요. 아, 이렇게 시간이 늦지만 않으면 죽치고 앉아 수다떨고 놀았을 거에요. 나보다 조금 어린 듯 한데 어찌나 사람이 상냥하고 서글서글한지. 집도 얼마나 이쁘게 단장해놨는지 한쪽 벽면을 손수 꽃무늬 벽지로 도배한 데다가 예쁜 비즈발까지 만들어 달아놨더군요. 게다가 그집 아들이 마로랑 동갑이네요. 서로 친구하면 딱이겠어요. 주말에 놀러가기로 했어요. 홍홍홍

인터라겐 2006-07-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이웃이군요.. 저도 퇴근길에 소나기를 만났는데 맞고 뛰다 보니 많이 오길래 언니네 전화를 했어요.. 조카보고 나오라구요.. ^^
그래도 그렇게 좋은 이웃과 함께 한다는게 너무 부러워요.. 아시죠.. 전 옆집에 아주 몹쓸 것들이 살잖아요.. 흑흑..

건우와 연우 2006-07-0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웃이 생겼군요. 좋은 이웃은 핏줄같아요..
부럽네요^^

조선인 2006-07-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옆집 문제는 전혀 진전이 없나보군요. 흑흑
건우와연우님, 넵, 기필코 사귀고야 말겠어요. 부르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