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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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비해 딴짓을 많이 해대 제대로된 직장생활의 경력은 짧은 편이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월급'을 받는 취업을 한 셈인데, 운 좋게도 정규직으로 첫발을 디뎠다.
남들이 보면 근무량에 비해 박봉의 전망없는 일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로선 사회인으로서 경제생활을 한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고, 나름 뿌듯했다.

하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수많은 빗금이 나와 내 주변의 여자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나이 스물부터 회사를 다녀 경력 10년이 넘던 모부서 '왕언니'는
알량한 경력 3년으로 내 뒤에 직함이 꼬리붙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왕언니'일 뿐이었고,
아마도 지금도 '왕언니'일 따름이다.

그보다 더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한 건 청소 아주머니들이었다.
0.75평의 독방에 갇혀 사는 것은 양심수만이 아니다.
건물마다 차이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탕비실을 방마냥 꾸며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한 평도 안 되는 탕비실의 한쪽 구석에 의자 하나 놓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나마도 민원이 들어오면 내쫓겨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한숨 돌리는 게 고작이다.

처음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는 건물만 구식이다 보니 청소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계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신축건물조차 예외없이 화장실이나 탕비실이 이용되는 걸 알고 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주자를 고려한 환경설계니, 생태설계니, 어고노믹스 디자인이니 화려한 미사여구는 늘어만 가는데,
어찌하여 인텔리전트 빌딩에서도 청소 아주머니의 공간은 여전히 화장실이어야 하는가.

건물에 구내식당이 있어도 점심시간의 혼잡을 이유로
청소 아주머니나 수위 아저씨는 1시 이후에나 이용할 수 있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서라기 보다 새벽 출근(보통 6시 출근, 늦어도 7시 출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아주머니들은 화장실이나 탕비실 한켠에서 이른 도시락을 드시곤 했다.

그리하여 내겐 공상이 생겼는데, 로또에라도 당첨되면 커다란 빌딩을 짓고 싶다.
1층에는 입주자를 위한 탁아시설과 수유나 유축이 가능한 여직원 휴게실이 있고,
층마다 청소 아주머니가 있을 방도 만들고, 흡연을 위한 옥상공원도 만든다면 좋겠지.
언젠가 내 딸이 직장을 다니게 될 쯤에는 손문상씨의 보금자리를 보고,
이게 대체 뭘 그린 만화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더더욱 좋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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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안타깝네요. 조선인님이 돈 많이 벌어서 그분들 좀 편히 쉴 공간을 얼른 만들어 주세요.

반딧불,, 2006-03-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얼렁 많이 버세요.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