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탔던 무궁화가 중간에 차단기 고장으로 지연되는 바람에 KTX환승을 못했다. 익산부터 무궁화 입석으로 여수에 도착했다. 이번 액땜으로 남은 여행은 즐겁길 바랬건만 사실 이 일은 모든 악운의 시작이었다.
시티투어 시간을 기다리며 무더위를 피해 커피 한 잔. 여수특산물이라는 거문도 해풍쑥 팬케이크를 시켰는데... 음... 그냥 팬케이크. 대체 어디서 쑥내음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음.
정크아트가 전시되어 있는데 탈 수 있는 게 많고 드럼도 많아 재밌었다.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군인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최초의 서액사당이다. 임진왜란 유공비에는 여산 송가로 송대립 장군과 송이립 장군이 계시는데 안타깝게 순천 김가는 없다. 하긴 이 무렵 우리 조상은 경북산골짝으로 스며든지 오래긴 하다.
유교유적인 충민사 바로 옆에는 해상의병의 넋을 달래는 석천사가 함께 있어 모든 계급 계층이 힘을 합쳐 왜의 침략에 맞섰던 역사를 상징하는 듯 하다.
고려시대부터 군수용 배를 만들던 유적지인데 거북선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산을 하나 끼고 도는 위치인데 바닷물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 배를 선조하거나 피난시킬 수 있되 적에게 그 위치를 절묘하게 숨길 수 있는 굴강이 기가 막히다.
어쩌면 오랜 역사 피비린내 배인 곳인데 선소 입구의 해바라기밭이 찬연해 이채롭다.
전라좌수영을 내려볼 수 있는 최고 전망대. 이순신 장군이 탈영병을 효수했던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항복의 비문이 새겨진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당시의 피눈물을 상징하는 타루비가 모셔져 있다. 두 비석은 일제시대때 도난당했다가 경복궁에 버려졌던 것을 여수 시민이 합심해 찾아왔다니 여러 모로 뜻깊다.
鎭南이라는 표현은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 표현으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왜구에 시달렸는가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진남관은 금오도의 300년이 넘는 수령의 소나무 기둥으로 만들어 둘레가 2미터가 넘는다. 정면 15칸 측면 3칸이나 되는 국내 최대 단층 목조 건물이다 보니 얼마나 기둥이 굵은지 아이 둘의 손이 맞닿지 못할 정도이다. 수원화성 동장대(연무대)가 정면 5칸 측면 4칸인 것과 비교해보면 이 건물의 규모가 능히 짐작될 것이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가 없는 법. 조만간 대대적인 해체복원작업을 할 예정이라 앞으로 2-3년은 못 본다 하니 운이 좋았다.
백반 1인분 6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임에도 반찬이 푸짐하다. 특히 고등어조림 머위대무침 부추김치 일품. 서대회 1인분 1만원은 향긋하고 야들야들한데 공기밥 추가해서 밥을 비벼먹을 수 있다. 결론은 2만3천원에 깔끔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아들 역시 서대회와 비빔밥을 최고의 맛으로 꼽았다.
여수 야경은 노동으로 더욱 아름답다지만 실제는 자동화설비로 근무자는 겨우 100명을 좀 넘는 수준이란다. 화학단지의 특성상 원격모니터링을 위해 설치한 조명이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화려하다.
분수 규모는 작지만 여름밤의 한가로움으로 만족. 아리랑이 나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
거북선 모형 안에서. 거북선 탁본이랑 3d퍼즐이 가능하다. 광장에는 명량해전과 한산도대첩을 형상화한 분수가 있다.
제주도나 서울이 아닌 여수에 왜 하멜이지 싶었는데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에서 막판에 3년 넘게 있었단다. 이곳에서 억류되었다가 새로 바뀐 절도사의 암묵적인 방관하에 뱃놀이를 가장해 일본으로 탈출할 수 있었단다.
전시관에는 네덜란드에서 기증한 하멜보고서가 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옛사람의 글씨는 거의 그림 수준.
펭귄먹이주기 바이칼물범 먹이주기 벨루아고래 공연 등을 봤다. 가장 좋았던 건 오션라이프 아쿠아돔. 애들 사진 찍어주는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가오리가 썩소를 날려주고 갔다. 나 역시 가오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얻고 싶었으나 기회는 두번 오지 않나 보다. 쩝.
이곳에서 나의 노트3가 사망했다. 믿었던 방수팩이 배신을 때렸기 때문.
부대시설이 좀 부족하고 검은모래가 생각보다 신기하지 않았으나 에너자이저 아들은 바다를 마음껏 만끽하며 폐장시간까지 해수욕을 즐겼다.
일제시대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유래가 있는 터널이다. 벽면은 사람의 정과 망치 자국이 역력하고 일차선의 좁은 터널인데 양방향으로 오간다. 중간중간 2차선으로 넓힌 공간을 이용해 서로 피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주 보게 되면 후진도 불사. 일단 신기했고 이런 터널을 싫은 내색없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여수사람들의 여유가 놀랍기도 했다.
경도회관이 가장 하모샤브샤브가 맛난 집이 아니더라도 가장 경관이 좋은 집인 것만은 명확하다. 흡사 배에 떠 있는 느낌. 게다가 맛도 좋아 딸은 하모샤브샤브를 최고의 맛으로 꼽았다.
덕분에 휴대전화의 고장에도 불구하고 기분전환해서 숙소로 향했는데. 맙소사. 7월 중순에 서둘러 예약한 게 화근일까. 착오가 생겨 빈 방이 없단다. 망연자실 하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알아서 바로 옆에 위치한 굿스테이의 특실을 찾아 원래 예약한 가격으로 묵게 해주었다. 전화위복으로 여기기로 했다. 흠.
오전에 방죽포 해수욕장을 가려던 일정을 취소하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갔다. 눈물나게도 노트3는 바닷물에 완전 부식되어 사망판정을 받았다. 결국 부랴부랴 노트4를 2년 약정으로 개통.
그저 한숨만 나오지만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니 향일암으로 출발했다. 향일암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라 스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게장백반 1만2천원 2인분 해물된장찌개 8천원 1인분을 시켰다. 밑반찬은 맛난 편이지만 여수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8천원하는 게장백반에 비해 비싼데다가 맛도 별로. 그나마 밑반찬이 맛나 싹싹 먹긴 했지만 추천할 곳은 아니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암자는 바다위 절벽에 핀 한 송이 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리석은 증건의 욕심에 어딜 봐도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돌로 만든 용기둥은 어이가 없었다. 대웅전 오르는 절벽 사이 틈새와 바다를 향한 원효대사의 좌선대만이 유구한 세월 그대로인 듯 하다.
우습게도 딸아이는 향일암에서 소원 비는 동전 던지기와 암벽에 동전 끼우기가 여행중에 제일 재밌었단다.
향일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삶은 한치회에 반해 들렀다. 한치 한 접시 1만원 시원한 식혜는 2천원. 아이스커피는 서비스.
아쿠아플라넷보다 규모는 작아도 찬찬히 볼 수 있어 더 좋다. 특히 학예사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양식장을 조성하려면 최소 3미터 이상이어야 하고 통영의 경우 수심 10미터에 달한단다. 코앞에 펼쳐진 저 푸른 바다의 깊이에 깜짝 놀랄 따름이다.
크롤어선의 그물이 배보다 더 크다는 것도 놀랍다. 절로 싹쓸이 걱정이 된다. 염전을 볼 때마다 늘 비가 오면 어쩌나 궁금해했던 호기심도 해결됐다. 염전에 이어진 보관창고로 비가 오면 파이프로 이동시킨단다.
안타까운 건 상영한 3D영화가 아주 예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제대로 여수 바다속을 촬영해 3D로 만든다면 어른3천원 초중고생 2천원의 입장료보다 더 비싸도 전혀 아깝지 않을텐데.
어쨌든 거북이와 셀카에 성공해 만족스러웠다. 아들은 물고기잡이 체험이 여행중 제일 즐거웠다 하고.
오늘의 일정은 모두 끝났는데 날이 훤하니 애들이 영 아쉬워 한다. 과학관 옆으로 이어진 갯가길을 조금 걸으니 강용면 작가의 '무술목의 아침'과 '동백'이라는 조각이 서 있다. 그외에도 한진섭의 '우리들의 이야기' 등 여러 작가의 조각품이 모여 있는데 그 유래가 궁금하다. 하다못해 오솔길의 돌조차 예사롭지 않다.
숙소로 가기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듯 갑자기 나타난 고인돌 유적.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간돌검 숫돌 등이 나온 청동기 후기 유적이란다.
여행 동안 너무 과식을 한 터라 생선구이 정식이 아니라 그냥 백반만 먹으려 했는데 이 지경이다. 역시 전라도 여행은 아무데나 가도 맛기행이 된다.
홀가분하게 짐을 엑스포 인포메이션 센터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오동도까지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니 수상자전거랑 카약체험이 무료. 땡볕이라 카약 대신 수상자전거만 탔는데 무조건 2인1조 체험이라 난 구경만 했다.
* 팁 : 엑스포역, 엑스포 인포메이션 센터, 오동도 입구에 물품보관소가 있다. 숙소에 짐 풀러가기 애매하면 이곳을 이용하면 편하다.
땡볕을 걷고 걸어 오동도. 기진맥진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과 동백나무 그늘에 한숨 돌린다.
오동도 등대는 등대 앞보다 용굴 앞에서 찍는 게 진리.
에필로그
삼박사일 여행간 자잘한 사건사고가 이어졌는데도 결론은 즐거운 여행이라는 것. 모두 성심성의껏 사과를 했고 친절하게 도와줬다. 가는 곳마다 맛집이었고, 여행중 들른 화장실 중 휴지가 없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이거 은근히 대단한 거다. 모든 화장실에 휴지가 있었고 쓰레기통이 넘치는 곳도 없는 여행지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