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바람구두의 역사기행 01 - 내 마음의 폐사지(廢寺址)

제 직업이 역사기행을 다닐 입장은 아닌데 문화재단에 근무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역사기행과 문화재 답사를 일년에 한두 번은 다니게 됩니다. 덕분에 북쪽은 못 가보았지만 우리 땅에 산재해 있는 여러 고찰들을 비롯해, 사원, 무덤, 누각들 중 어느 정도 이름난 곳은 거의 대부분 다녀봤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다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도 있고, 별다른 기억없이 사라지는 곳도 있는데, 그 중에서 다시 가고 싶은 특별한 폐사지(廢寺址)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쥬빌라테님이 궁금해하시는 성주사지(聖住寺址)이고, 다른 한 곳은 영암사지(靈巖寺址)입니다. 두 곳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라고 하는데, 아마도 각 지방 호족들이 염을 담아 세운 사찰이었는데, 전란기를 거치며 소실된 모양입니다. 그 중에서 성주사지는 충남 보령 성주면에 있는 사찰인데, 마을 어귀에 다다를 때까지 그 안에 저렇게 널직한 사찰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길 안내를 받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성주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맞은 편으로는 예전에 무슨 탄광이라도 있었는지 폐가들이 있구요. 성주사지의 가장 큰 매력은 폐허라는 데서 나오는 걸겝니다. 사면으로 산이 에워싸고 있고, 그 한 가운데 보기 드물게 넓고 평탄한 평지가 나옵니다. 사방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워낙 넓기 때문에 답답하다기 보다는 탁 트인 기분이 들지요. 제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문화재 조사를 한다고 여기저기 구획을 나눠놓고는 있었지만 연구자는 한 명도 보이질 않아서 그야말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 들리듯 크게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함이었습니다.

성주사지 한 가운데에는 작은 각이 하나 있는데 무슨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해둔 듯 합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렇습니다. 천지사방 내 발 닿는 모든 곳이 폐허였습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휑그레하게 바람만 스쳐가는 그 옛 절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 말 걸어오는 사람도 없고, 한때는 비단 옷 입은 성주와 귀족들이 득시글 거렸을, 삼베 옷을 입고 열심히 절 일을 도왔을 사람들이 있었을 법한 큰 사찰터에 우거진 억새와 씀바귀, 엉겅퀴를 보면서 그냥 그렇게 떠가는 구름을 보았습니다.

바람소리가 아주 크게 들립니다. 작은 석등과 기단만 남은 듯한 석탑 사이로 바람이 휙하고 지나가면 웃자란 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죠. 폐사지에 가면 어떤 관광객들은 에이, 이런데 뭐 볼게 있다고 하실지 몰라도 앙코르와트를 못 가본 저로서는 성주사지의 그 고즈넉함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앙코르와트 못지 않은 운치를 선사합니다.

성주사지가 마을 인근에 있고, 비교적 찾아가기 쉬운 곳에 위치한 폐사지라면 합천 가회면에 있는 영암사지는 큰 마음 먹지 않으면 찾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제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주변 마을 사람들조차 영암사지가 그곳에 있는 줄도 모르는 이가 많더군요. 그 덕분에 찾아가는 길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던 기억입니다. 앞서 앙코르와트 이야기를 했는데 외국의 사찰이나 종교적 사원들은 그 건물 입구를 통과해야 비로소 사찰이 시작되지만 한국의 사찰은 산의 입구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찰에 들어서는 문을 흔히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는데 그 첫번째 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일주문(一柱門)이 산의 입구에 서 있지요. 즉, 앙코르와트나 노틀담 사원 같은 곳은 건축물의 크기 자체가 우리 내 사찰과 비교가 안될 규모이지만 한국의 사찰은 사실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왜냐하면 사찰이 지어진 산 전체가 바로 사원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영암사도 매우 큰 절이란 생각을 합니다. 절이 등지고 있는 황매산 모산재를 바라보며 영암사에 이르면 영암이란 사찰 이름이 아까울 게 없습니다. 바위가 꽃핀 산이거든요. 영암사에 특별한 애정이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찾아가는 길의 고생스러움도 있지만, 그곳의 삼층석탑에 깃든 우리네 민초들의 애정이 돋보이는 측면도 클 겁니다. 일제 시대 때 영암사터에 있는 쌍사자석등을 일본인들이 가져가려는데 이곳 마을 주민들이 밤을 새워가며 지켜냈다는 일화가 그것입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봐도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며 그 분들의 용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예전에 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독일군의 점령이 다가온 도시에서 탈출하면서 마지막 열차에 자신들이 피할 수 있었음에도 투르게네프의 소파와 미술품들을 실어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네들의 행위만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의 용기 역시 대단한 것일 테지요.

폐사지!
건물도 없고, 그저 터만 남은 사찰에 가서 볼 게 무엇이냐고 따져묻는 이에게 폐사지는 그저 황폐한 절터에 불과하지만, 어딜 가든 사람들 발길에 치이고, 각종 불사에 시달리는 고찰들 말고 자신을 만나고 옛사람들의 향기가 바람결에 스치는 그런 만남을 원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상상력만 있다면 폐사지가 주는 향기로움은 명문대찰의 그런 부산스러움과는 비교되지 않는 맛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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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08-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주사터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안내판 콘테스트를 했는데 제가 잘된 안내판으로 여기 걸 찍어서 상품탔습니다 ^^* 그래서 성주사터 더 좋습니다.(제가 원래 좀 격이 떨어집니다 --;;)

느티나무 2005-08-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영암사지는 최고의 폐사지죠 ^^;; 물론 폐사지 하면 떠올릴 아릿함은 떨어지지만 '내가 아무리 망해도 이 정도는 된다' 는 자존감이 흠뻑 묻어나는 곳이죠. 학교 다닐 때 유명한 분이 '경상도 문화재가 다 없어져도 영암사 쌍사자석등만 남아있다면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고 했더랬랍니다. 물론 빗방울 후두둑 떨어져, 인적 드문 성주사터도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