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첫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허균 선생님의 책을 읽고 우리정원기행을 가보고 싶었는데,
 빠듯한 일정상 소쇄원이나 보길도에 가는 건 무리였지요.
 결국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가
 희원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행여나 또 주말에 출근해야 하는 불상사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마침 상사가 해외출장을 가는 바람에 안심 ^^
 게다가 호암미술관에서 "연꽃전"을 하는 중이라 일석이조였지요.

희원은 그 입구부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석인의 길에서 바라보는 강가엔 마침 흰 물새가 노닐고 있었더랬죠.



물새가 안 보이신다고요? 클로즈업해드리지요.
그런데 무슨 새인지 혹시 아시나요?



안타깝게도 물고기를 낚아채는 근사한 장면은 놓쳤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다시 한 번 사냥하는 모양새를 찍겠다고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렸으나,
포식에 성공해서 그런지 훨훨 날아가버리더이다.




화계을 조성한 소원에서 우리정원에 대한 발제를 했습니다.
중국의 정원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발견하는 드라마틱한 변화에 촛점을 두었으나,
우리 정원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차경까지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지혜가 있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또한 완벽한 인공미의 일본정원과 달리 자연 그대로의 멋스러움을 살리는 우리정원이라는 것도요.
다만 희원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자나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광이야말로 우리 정원의 백미라는데,
"출입금지" 팻말이 가로막아 정자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시간 동안 마로는 돗자리위에서 낮잠을 즐겨 편안히 발제와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정에서도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연못을 조성할 때면 "천원지방"의 원리에 따라
연못은 네모나게 만들고, 그 안에 둥근 섬을 조성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연못도 네모요, 섬도 네모나서 잠시 갑론을박을 펼쳤더랬습니다.



비롯 연꽃은 제철이 아니지만 화사한 모란 앞에 시 한 수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5월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아직 모란은 뚝뚝 떨어지는 찬란한 슬픔은 아니었더랬지요.
1시간이 넘도록 늘어지게 자던 마로도 이땐 잠이 깨서 모란 구경에 넋을 잃고. ^^



호암미술관 월대 앞에 둘러모여 우리 문화에서 "연꽃"이 상징하는 바를 다시 복습했습니다.
불교에서 "연화화생"을 이야기하고, 유교에서 "꽃 중의 군자"라 칭하는 연꽃의 의미를 되새기며,
연꽃전을 둘러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가져보고자 했으나...

끊임없이 숨박꼭질을 시도하는 마로 덕분에 찬찬히 둘러보는 건 엄두도 못냈습니다. ㅠ.ㅠ
할 수 없이 기념품가게에서 연꽃전 자료집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모처럼 엄마와 이모, 삼촌들과 야외나들이에 나온 게 신이 났는지 마로가 방방 뛰어놀아
셔틀버스 막차시간까지 희원에서 놀았습니다.
그리하여 만족스럽게 차에 올라타는 순간... 기분을 망치는 광경이 있었으니...



저게 누구 동상인지 능히 짐작하시겠지요.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앞으로는 동에서 서로 물이 흐르는 명당에
높이 올라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동상... 그 의미가 연상되어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게다가 부와 권력의 상징인 공작을 방목하고 있는지 공작 몇 마리가 동상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우는데,
정원기행을 하며 멀리서 들릴 땐 운치가 있더니 가까이서 들으니 목 쉰 비명소리같이 들리더이다. -.-;;
생각이 계속 안 좋게 치닫다보니, 차경까지 보존할 수 있는 우리정원을 가꿀 수 있는
삼성가의 재력이 좋게만 여겨지진 않더군요.
(삼성 소유의 땅을 지나지 않고 용인을 가로지르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쩝)
또한 일행중에 제주도 사람이 2명 있고, 제주도 여자랑 결혼한 사람이 1명 더 있었는데,
이들은 기행 내내 "어, 이건 제주 벅수인데." "이것도 현무암이네" "정낭까지 왜 여기 있냐?"라며
불만불평이 가득했더랬습니다.
심지어 할아버지 무덤에서 도난당한 벅수가 있는 건 아닌지 찾아다니기도. ㅠ.ㅠ

뭐, 끝이 찜찜하긴 했지만, 준비 부족에 비해 만족스러운 기행이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올해 기행의 테마를 잡지 못해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혹시 좋은 주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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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5-3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곳이네요.... 마지막 사진이 그렇긴 하지만요..
이렇게 주제를 잡고 떠나는 여행도 너무 좋을듯해요...

바람돌이 2005-06-0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답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더니 이런 공부까지....
희원은 제게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었습니다. 특색도 없고 그저 삼성가의 재력을 과시해 여기저기 온갖 지방에서 모아놓은 유물들. 그러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다한 전시장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었죠. 그리고 정자를 통한 차경 역시 워낙에 일본식 정원처럼 인공적으로 꾸미다 보니 소담한 정원의 품격도 잘 느껴지지 않았구요.

호암미술관 역시 가슴아픈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지가 제대로 적히지 않은 채 -어떤 것은 시대조차도 없더군요. - 전시되어 있는걸 보면서 저것들이 죄다 도굴품이려니 생각하면서 가슴아팠지요. 물론 그 도굴품이라도 사서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한걸 다행으로 생각하려 해도 가슴이 아픈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람돌이 2005-06-0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로라는 군요. 지금 이 시간 자정을 넘겨 들어온 서방이.
쇠백로인지 중대백로인지는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이 사진만으로는 판별이 어렵다면서 아마도 쇠백로일 가능성이 많아보인다는....

조선인 2005-06-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가리가 아닐까 했는데, 안 쓰길 잘했네요.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

바람돌이 2005-06-0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가리는요 이렇게 완전히 하얀색이 드물다는군요. 저야 늘 왜가리 백로 구분 못합니다. 그리고 답사주제를 좀 고민해봤는데요. 구성원들의 성향이나 그간의 다녀온 곳 이런걸 잘 모르니까 함부로 얘기하기가 무척 힘들군요. 그냥 주절주절이니 참고삼아 말씀 드릴게요.
일단 수도권인것 같으니까 수도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조선의 건축문화'정도로 주제를 잡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구체적으로 답사코스를 적어보면
먼저 여름(반드시 장마철이 지난 여름이라야 되요)엔 우리나라 성곽건축의 절정인 '수원화성'이 괜찮을 것 같군요. 물론 여름이라 땡볕이라 힘든 점도 있지만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여름이 최고입니다. 오후 늦게 수원화성 답사를 시작하시면 저녁 해질무렵에 화홍루와 방화수류정을 보고 저녁밥먹고 여름밤의 방화수류정의 멋드러진 풍취를 즐기시면 답사의 마지막이 굉장히 인상적일 듯.. 단점은 걷기가 참 힘들다는거죠. 장안문에서 출발해서 서장대 쪽으로 해서 방화수류정까지 한바퀴 도는데 공부까지 하면서 다닐려면 2-3시간은 걸리니.... 코스가 좀 힘들다 싶으면 서장대에서 장안문쪽으로 해서 동북공심돈 내지는 봉돈까지 가는 코스는 조금 덜 힘듭니다요.

가을에는 조선의 궁궐건축이 어떨까요?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권하고 싶은데 문제는 섭외죠. 창덕궁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 많고 관람시간을 제한하는게 가장 큰 문제인데 섭외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북적거려도 경복궁이 낫구요. 그리고 궁궐건축은 돈이 좀 들더라도 전문강사를 수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워낙에 공부해야 될 양이 많은게 문제죠.

겨울에는 종묘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건축물은 우리나라 통틀어 오로지 종묘 하나뿐입니다.그리고 그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꼭 겨울을 권하고 싶고요.

그외 조선의 사찰건축은 별곳이 없는데 그나마 조선의 흔적을 많이 보이는게 여주 신륵사와 수원 용주사입니다. 페이퍼 보면 용주사는 갖다오신듯 하니 신륵사가 좋겠네요. 그리고 신륵사 바로 옆에 도자기 박물관이 있습니다. 여기는 미리 섭외를 하면 큐레이터분이나 자원봉사자분들의 안내를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제가 갔을 때는 미리 섭외한게 아니었는데도 자원봉사자분의 안내가 수준급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도자기 체험도 가능하니까 미리 알아보시면 좋고요.

그외 조선의 건축은 아니지만 원주 지역의 폐사지들도 돌아볼만합니다. 대부분 고려시대 유물들이 남아있는데 거돈사터 법흥사터등이 폐사지의 흥취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다만 폐사지들은 되도록이면 늦가을이나 초겨울쯤이 좋아요. 그리고 날도 좀 흐린날이 좋죠.... 물론 이런것들을 다 맞추기야 인간의 힘으로 힘들겠지만...

사시는 곳과 가까우니 저런 곳들이 다 둘러보신곳이 많을 듯해서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대충 늘어놔 봤습니다.

조선인 2005-06-0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바람돌이님, 전문가시로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회원들에게 그대로 건의하겠습니다.

토토랑 2005-06-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바람돌이 님 댓글을 퍼갑니다. ^^;;

바람돌이 2005-06-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가는 무슨요. 그냥 여행다니기 좋아하다보니까 여기 저기 다녀본거지요.

로드무비 2005-06-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정말 멋지십니다.
저도 겨울 종묘 무지 좋아하는데......
조선인님, 웬 선물을 그렇게 거하게 보내셨습니까?
아무튼 고맙게 받긴 했는데요.ㅎㅎ
빨리 완성해서 자랑해야 하는데 게으름뱅이 우리 부부 걱정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