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지음, 주익종 옮김 / 필맥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포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소름에 시달렸다. 미국 중산층의 위기라고? 아니, 이 책은 우리 집의 경제적 취약성도 가차없이 까발리고 있다.

유례없는 저금리와 쾌적한 주거공간의 유혹에 넘어가 한때 우리 부부는 수입의 1/3을 집에 바쳤다. 다행히도 우린 그 미친 짓을 1년 반만에 관뒀으나, 아직도 1/5을 주택담보대출과 집장만에 묶어두고 있다.

거기에 마로의 양육비가 또 1/5. 마로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저렴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둘 다 야근이 잦다보니 추가보육료도 많고, 야외학습이나 생일잔치, 명절 등의 부대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딸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딸과 함께 쓰는 돈이 많은 편이다.

또 다른 1/5은 차량유지비와 교통비. 답답한 시내에 사는 대신 수락산 아래자락을 택한 대가로 옆지기나 나나 1시간 30분의 통근거리를 감수하고 있다. 차안에서 보내는 긴 시간과 어쩌다 외출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마로의 짐을 고려하여 우리 분수보다 큰 차를 선택했다. 비록 두번째 차는 없지만, 야근하는 날이면 빨리 딸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날리는 택시값도 만만치 않다.

그럼 남은 수입은 우리 부부의 재량껏 쓸 수 있을까? 각종 세금 및 공과금을 제해야 하고, 수두룩하게 들은 보험료도 감당해야 한다. 자동차보험, 옆지기의 종신보험, 나의 건강보험과 개인연금, 마로의 교육보험. 보험을 들었으니 안전망을 확보한 걸까? 옆지기나 내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65세가 넘지 않는 한 돌려받을 일이 거의 없는 보험료는 그저 묶인 돈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수입의 1/5만으로 생활을 꾸려야 한다. 단 한푼의 여유도 찾기 어려운 빠듯한 가계부다 보니 피치 못할 적자가 발생하곤 한다. 유난히 경조사가 많은 달, 새 정장을 사야만 하는 달, 가족들이 돌아가며 잔병치레를 하는 달이면 신용카드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꾸려나간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형편의 부모나 형제를 위해 급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사업하던 오빠가 내 이름으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를 못내고 절절맨다면? 아주버님이 부도가 난다면? 옆지기가 입원하게 된다면? 아버지께서 노환으로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면? 맙소사, 이건 모두 만약의 경우가 아니고,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었다. 우리는 보험약관대출을 받았고, 이어 카드론도 받았으며, 결국 이 빚들을 상환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한도까지 받아야 했다. 지난 3달은 정말이지 악몽같은 하루 하루였다.

이제 간신히 가계수지의 균형을 맞추게 되었지만, 맞벌이의 함정을 읽으니 오싹오싹 뒤늦은 공포가 밀려왔다. 만약 옆지기가 입원비를 후원받지 못했다면, 아버지의 수술비를 작은오빠가 대부분 감당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개인파산을 신청하여 모든 신용을 포기하고 아무 준비없이 집을 내놔야했을지도 모른다. 사치나 풍족과 거리가 먼 우리지만, 여유자금없이 고정비용으로 빽빽히 채워둔 결의서로 인해, 최소한의 생활공간마저 뺏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새삼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유자금을 비축해두려면 집과 아이와 통근차량을 모두 소유하는 게 우리의 분수밖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통곡하고 싶을 정도로 서글프기도 하다. 

미국의 맞벌이 가정이 교외의 주택과 아이가 다닐 만한 학교와 안전한 통근차량을 가지고 싶어하는 걸 부르조아의 욕망이라고 그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전 세계 모든 가정이 가장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복지가 아닌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개인 혹은 가족경제의 난점을 생각하면 작금의 제도에 대한 분노가 부글거리게 된다. 최소한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 발달했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두번째 차를 장만하는 무리를 안 해도 된다고 위안삼을 순 없는 일. 그럼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답은 있는데, 이를 오답이라고, 공상일뿐이라고 떠들어댈 사람들 생각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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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읽어본 가장 실감나게 무서운 마이 리뷰입니다.

조선인 2005-04-2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지적, 고맙습니다. 꾸벅.

인터라겐 2005-04-2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 보니깐 경제적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10억 10억하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들어가보면 열심히 일해서는 실현가능성이 10%도 안된다고 하니...땅투기나 뭐 로또 그런거 아니면 직장인이 평생 가족을 부양하면서 누리기엔 꿈같은 얘기래요... 전 얼마전 남의 돈 빌려서 호화롭게 사는 사람을 실제로 봤어요..로드무비님이 사시던 집의 도망간 집주인얘기가 실제로도 주변에서 일어나더라구요.
남의 돈 빌려서 외제차굴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티하나에 20만원한다는걸 입히고... 더 황당한건 그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이러다 신용불량자 되면 파산신청하지뭐...이거였어요... 식구들 이름으로 충분히 이런 삶을 유지할수 있다나요...
그런 생각을 하는 그 부부도 문제지만 그것에 물들어 가는 식구들과 주변인이 더 문제같더라구요.... 어차피 이렇게 살꺼면 한번 폼나게 살아보구 망하자는...

그래도 희망을 가져볼랍니다...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게 나오겠지해서요...

심상이최고야 2005-04-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군요. 저도 어제 가계부를 쓰며 다음달에 들어갈 비용을 계산해보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에고고....

sooninara 2005-04-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보고 심난해서 잠이 안오더라구요..사는게 정말 힘들죠..ㅠ.ㅠ

2005-04-22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2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4-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찌찌뽕~~
정말 이주의 마이리뷰로 뽑힐 만한 좋은 리뷰입니다.
추천 하나에 땡스투까지 드립죠. :-)
문자 받고 싶으시면 핸드폰 번호 남겨 주세요. ㅋㅋㅋ

로드무비 2005-04-2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3 문자의 미달인.
조선인님, 발마스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면 거의 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이달의 리뷰까지 욕심내 봅시다.^^

2005-04-2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캔디 미니 머신 뽑기랍니다요.^^

메인 화면 우측 하단 박스(인기상품)에도 떠요.


2005-04-2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