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좋아하지만 마로 때문에 밖에서 술 먹는 게 힘들기 때문에 옆지기나 나나 되도록 우리집에서 술을 먹자고 꼬시는 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옆지기의 건강이 안 좋은 터라 집에서 손님 치레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옆지기는 우리집처럼 손님상 차리는 게 다반사인 집이 드문 데도, 음식솜씨나 메뉴가 전혀 늘어나지 않는 내가 경이롭다고 놀리곤 한다. -.-;;

각설하고, 마로 생일날에도 손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제일교포 2세였다. 수암 할아버지와 재미나게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께 선물받은 케이크로 촛불놀이도 실컷 한 마로를 재운 뒤 재빨리 술상을 봤다. 서재지인들의 충고에 따라 카나페와 참기름 발라 구운 육포, 과일안주 준비를 끝내자마자 옆지기와 선배가 손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비장의 무기 양주를 꺼내 손가락만 빨아야하는 옆지기 대신 희희낙낙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아뿔사. 너무 바싹 구웠나? 안 그래도 질긴 육포가 딱딱하기까지 하니 영 꽝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원래 안주를 잘 안 먹는다고 선배가 대신 위로해주었지만, 과일 외에는 거의 안주를 먹지 않는 주빈 눈치 보느라 좌불안석.

어쨌든, 한국어교실 고급과정인 재일교포와 한참 일본어를 공부중인 옆지기와 선배가 각자 겪었던 언어 해프닝을 서로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화기애애. 또 충청도 사람인 옆지기, 경상도 사람인 나, 전라도 사람인 선배, 부모님이 제주도분이라는 재일교포 등의 사투리 이야기까지 나오니 정말 배꼽잡으며 수다를 떨었다.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자, 손님께서 진심을 고백하시는데, 반년만의 한국행이니 소주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다행히 소주도 1병 있었지만, 안주가 마땅치 않아 부랴부랴 골뱅이를 무쳤다. 그러나!!! 흑, 술자리는 새벽까지 즐겁게 이어졌지만, 오늘의 주빈께서는 끝내 골뱅이무침에 젓가락 한 번 안 대시는 것이었다. ㅠ.ㅠ

못내 마음에 걸려 어제 친페이님께 하소연을 했더니, 친절하게도 방명록까지 찾아와 답변을 주셨다.

  일본에서도 골뱅이, 물론 먹어요.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조선인님.
세계에서 가장(?) 생선을 먹는 일본이 골뱅이를 먹지 않을 리가 없어요.
일본에서도 물론 골뱅이를 먹어요.
さしみ(사시미=회, 생선회)로도 먹고, つぼやき(쯔보야키=단지구이?)로도 먹고요. 일식으로는 그 외에 먹는 법은 별로 없지만(내가 생각 나지 않는 뿐?), 어쨌든 일본에서도 골뱅이는 많이 먹어요.
그런데... 저는 이 골뱅이를 싫어합니다. 그 꼬리부분의 쓴 것(이게 뭔지?)이 싫어서요. 옛날에 한 입 먹었을 때의 그 쓰디쓴 맛이 생생해서 그 나선 모양을 보는 것 조차 싫어요.
그 재일 교포 2세분은 골뱅이를 좋아하셨을까?
...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풍습에 의하면 남 집에 가서 음식을 되게 많이 먹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다, 하는 사회적 통념이 있어요. 그리 일반적인 통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남 집에서 음식을 많이 먹으면 "이 사람 일상시 가난하나 보네" 이렇게 보이지 않겠냐, 그런 걸 좀 의식해서요.
우리 재일 교포가 일본사람 집에 가는 기회도 많아서 좀 저도 모르게 그런 "사회통념"이 참재 의식(?)에 있을 순 있어요.
일본 속담에 "武士は食わねど高楊枝 부시와 크와네도 타카요-지 (무사는 제대로 먹지 못하도라도 이제 많이 먹었다는 얼굴을 하여라. 그래야 위엄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것이 있어요.
일본사람의 정신 세계의 한 측면입니다.
물론 그 2세분은 일본 사람은 아니지만, 일본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좀 그런 면은 있었던 것이 아니겠나고 생각되네요.

2005-02-16
Chin Pei (mail)

친페이님의 말씀대로 손님이라 사양한 것인지, 아니면 날로 먹거나 구워먹는 골뱅이를 시뻘겋게 무친 게 잘못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여러 모로 찜찜한 것은 사실. 5월 초에 부부동반으로 다시 놀러오시겠다는 약조를 받아냈으니, 다시 도전해보는 수밖에. 소주 안주로 생선구이를 준비하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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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2-1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 입이 까다로우신가봐요. 신경쓰지 마세요. 원래 안먹던 음식을 먹는것에 아주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조선인님이 만든 음식들이 맛이 없던게 아니라 그 분이 새맛에 대한 도전 정신이 좀 부족한 분이신게 분명해요.. 그리고 술 마실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안주 잘 안먹던데요. 혹시 그분도 그러신거 아닌가 몰라요?

水巖 2005-02-1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와 촛불놀이할 시간은 있었네요. 케이크를 보고 깡충깡충 뛰던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그런데 손님 접대는 쉽지가 않었군요.

perky 2005-02-1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비 참 열심히 하신 거였는데, 서운하셨겠어요.

sooninara 2005-02-1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안주가 제일 무난할것 같네요^^
그리고 일본 사람들..다른사람 엄청 의식하는구나 다시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