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동네에 대법원이 들어선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 건 다른 말로 꽃동네 철거를 의미했다. 아직도 우면산 기슭에 약간의 판자촌과 비닐하우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대개는 아파트와 고급빌라로 변모해 꽃동네의 흔적을 찾긴 힘들다.
이 상전벽해의 공은 참 맞춤한 화재 덕분인데 가장 절정은 중학교때였던 거 같다. 겨울방학만 되면 일주일에 2ㅡ3번은 크고 작은 화재가 있었고, 개학할 때면 꽤 여러 친구들이 이미 전학을 갔거나 몇몇은 화상흉터를 부끄러워 하며 등교했다. 아직 머리도 마음도 크지 못한 친구들은 이미 꽃동네와 원거주민과 신축주민 무리로 갈라져 있었기에, 난 친구들의 화상자국을 애써 못본 척 했더랬다. 가뭄에 콩나듯이 꽃동네 화재가 뉴스에 나면 비닐하우스 난로로 인한 실화로 보도되곤 했지만, 사실 용역깡패들의 방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그저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아 참,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땅주인 중 하나가 '이명박'이다. 참 여기 저기 등장하는 부지런한 인물 되시겠다.
그 시절 기억이 오늘 갑자기 떠오른 건 쌍용자동차 농성장의 화재사건 때문이다. 박근혜씨가 당선되자마자 참 맞춤하게 정신병 경력이 있다는 무직자가 방화를 했다. 사설청소업체에서 비정기적으로 일한다는 사람인데 어쩜 이리 맞춤하게 우발적인 방화를 한 건지 실소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