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아침 출근길에 비상벨이 울렸다.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잽싼 몇 명은 바로 내려 계단으로 달음박질을 쳤고, 사이렌이 계속 되자 자고 있던 사람까지 모두 지하철에서 내려 갈팡질팡하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참혹한 사진이 떠오르고 얼마전 7호선 화재도 있었는데 싶어 나 역시 계단으로 종종걸음을 치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한 명이 장난으로 소방벨을 부신 것이니 안심하고 다시 승차하라는 것.
이런 헛소동을 겪은 게 벌써 3번째다. 지하철 안전대책이 부실하니 초동대처가 늦었니 어쩌니, 공사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진짜 사고인지, 또 누군가의 장난인지부터 판단해야 하니까 승무원도 승객도 주춤거리게 되는 것이다. 월요일 출근길부터 모골이 송연해졌다 허탈해졌다 하는 경험을 해 영 찜찜하다.

2. 이왕 지하철 에피소드를 쓰는 김에 몇 마디 할까 벼르던 얘기를 이것 저것 끄집어내본다. 지난 가을 일이다. 토요일 오후 마로와 지하철을 탔는데 빈 자리가 없었다.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로 앉아 생기발랄하게 수다를 떠는 여고생들 앞에 서있었는데, 마로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말을 걸었다. 딸이 어설프게 배꼽인사를 하는게 재미났는지 숨넘어가게 까르륵 웃고 난리가 났고,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아줌마, 애기가 X라 귀여워요."
미술학원을 하는 오빠가 요새 아이들은 'X라'와 '열라' 두 마디로 모든 형용사와 부사를 대신한다며 한탄한 적이 있었다. 나로서도 "선생님, 이 부분 X라 안 그려져요"라는 말을 들으면 울컥하겠다 싶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3. 며칠 전 일이다. 4호선 동대문운동장부터 자리에 앉아 책을 보자니 요란한 게임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내 옆에 연인 한 쌍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 앉은 아저씨가 화근이다. 소리가 있어야 신명나게 게임을 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정작 본인은 mp3를 귀에 꽂고 있다. 바로 옆자리면 나서기 좋아하는 내가 한 마디 할 수도 있겠다만 두 자리 건너니 가끔 지긋이 노려볼 따름이다. 결국 창동역에서 아저씨가 핸드폰을 닫았을 때, 비록 한 정거장이나마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고맙게 여겼다. 그런데 아뿔싸. 그 옆에 앉아있던 아이가 핸드폰을 넘겨받아 게임을 하는 것이다. 마침 연인 한 쌍은 창동에서 내려 말을 걸어볼 수도 있게 되었지만, 자식임에 분명한 아이 앞에서 아버지에게 핀잔을 줄 수도 없고, 아버지 게임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저한테는 뭐라 그런다고 할까봐 아이를 타이를 수도 없었다. 이런 걸 분해하는 건 나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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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제 이벤트 캡쳐요^^

깍두기 2005-01-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무슨 소리, 난 그럴 때 그냥 넘기면 분해서 잠이 안 와. 그래서 꼭 얘기하지. 소리 줄이시라고...^^

2.마로의 천사같은 얼굴을 보고도 X라 라는 말이 나오다니...물론 칭찬이긴 하지만. 미술학원 하시는 오빠 말씀에 동감입니다. 졸라, 열라 빼면 문장이 안되는 아이들이 많죠. 해송이도 슬슬.....ㅠ.ㅠ

1. 아침부터 놀라셨겠네요. 저번에 온수역에선가 어디선가 불났다고 할 때 저희 친정아버지께서 비슷한 시간에 그쪽에서 전철을 타셨다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같은 노인은 그럴때 꼼짝없이 죽는다'하시더라구요. 진짜 사고가 아니더라도 그런 혼란이 일어나면 노약자는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참, 어떡하란 건지...다 자가용 끌고 다니란 건가....


비로그인 2005-01-1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한 번 쌍문역에서도 연기가 모락모락 난 적이 있었지요. 이걸 표 끊고 타러 들어가야 하는건가 라며 망설이는데 방송 나오더군요. 근처 오피스텔 공사하는 곳에서 분진이 날아들어온 것이니 안심하고 탑승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