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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언젠가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박완서라는 작가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조금은 비슷한 듯 다른 듯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도 있는데 동시대에 나와 동갑내기 동성 작가 심윤경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 행운을 한 열번쯤 자랑한 듯 싶은데, 앞으로도 열번쯤은 더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같은 말을 반복할까봐 꽤나 신경쓰는 편인 나에겐 제법 큰 결심이요 의지다.
또 회고조의 말을 하자면 언젠가 쥴님은 나처럼 나이에 민감한 사람은 드물다는 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속으로 정녕 쥴님은 아홉수마저 쿨하게 넘길 수 있는 능력자란 말인가 감탄한 적이 있다. 남들 다 하는 사춘기를 꽤나 무난하게 넘긴 대신, 스물아홉을 열병처럼 겪어내고 서른아홉은 그야말로 광년이처럼 방황했던 나로선 다른 이들은 어찌 이 미친 시기를 내색없이 이겨내는 묘기를 부리는가 했는데, 나의 행운은 동지를 발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심윤경과 김혜나라는 이름으로!
책 속의 얘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현실이자 나의 몽상이다. 미친 교육열에 중심 못 잡고 방황하는 새언니들도, 한때 내가 공부는 좀 했는데 현재의 나는 왜 이리 초라한 건지 갈피 못 잡는 남편 성민도, 막연한 노후의 불안으로 컴퓨터 기사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걱정하다 애궂게 이를 동생에게 내미는 큰오빠조차도, 빚은 빚대로 욕망은 욕망대로 탕진하면서 한탕의 욕망과 미련을 못버리는 작은오빠조차도 다 나의 현실이다. 이제 내 나이 서른아홉인데 너무 늙지도 젊지도 않은 유부녀다 보니 더 이상의 로맨스는 없고 용써봤자 불륜만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비참한 건지 그나마 위안인 건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첫사랑을 꿈꾸는 소녀도 아니고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남의 일탈을 수다거리로 삼는 게 고작인 것이고, 아주 은밀하게 내가 혜나라면 하는 몽상을 하는 게 최대의 허용치인 거다.
그나마 운좋게 마흔 하나의 나이까지 도달했으나 여전히 만으로 39의 굴레를 염증내고 있었는데, 차라리 이 시간이 확 다 지나가버리고 폐경이나 됐으면 좋겠다며 투덜대다가도 아직은 내 생일이 있는 가을이 아니라 폭염으로 지글거리는 여름이라고 안도하는 이율배반을 스스로 비웃고 있었는데 동갑내기 작가는 어쩜 이렇게 맞춤하게 혜나 이야기를 나에게 내밀었는지 그 용함에 절로 감탄한다. 그리하여 감히 비약하는 건 내가 심윤경을 행운이라 여기듯이 그녀의 사랑 얘기를 알아보는 동갑내기 독자가 있다는 것도 그녀에게 행운일지 모른다는 망언.
* 뱀꼬리: 이 책에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 책표지... 샛노란 색이나 사랑이 달리다의 글씨체는 수긍이 가는데, 밑도 끝도 없는 저 4명의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혜나? 심윤경? 나? 또 다른 39살 동지??? 글쎄... 공감이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