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는 휠체어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20
프란츠 요제프 후아이니크 지음, 베레나 발하우스 그림, 김경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맞벌이부부가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다 보면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아는 척 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한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 불쌍해라. 어린 애가 아침 저녁으로 고생이네." 그럴 때마다 울컥거리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면서 나 역시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앞에 걷던 시각장애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덥석 팔짱을 낀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혼자서 집 근처 지하철 타고 내리는 것쯤은 할 수 있다고, 도와주지 말라고 버럭 역정을 내셨다. 무안하여 얼른 사과를 드리는데, 아저씨가 목소리를 깔며 지팡이로 땅을 두어번 치셨다. "정말 미안한가? 뭐가 미안한지 정말 알아?"

그제서야 내가 그분을 '마냥' 불쌍히 여기는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우리중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불쌍하다고 재단할 권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다른 삶이라고 인정했을 때 훨씬 더 다양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르기트의 다리는 휠체어일 뿐이다. 보도에 턱이 있을 경우 불편한 것은 마르기트 뿐이 아니다. 유모차를 끄는 아기엄마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눈을 가릴 정도로 짐을 잔뜩 든 사람도 불편하다. 하기에 모두를 위해 턱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세상엔 또한 뚱뚱한 사람도 있고, 빼빼 마른 사람도 있다. 운동이나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체질적 요인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체중으로 인해 내 인생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지기는 뚱뚱해서 불쌍하다' 역시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마르기트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가 서로를 그저 별난 존재로 존중할 때, 세상은 더 조화로와질 것이고, 나 역시 보다 많이 신세지고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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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8-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장애인의 날인가? 그땐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우릴 불쌍하게 바라보지 말라며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다는 말을요......그때 많이 느꼈어요. 이 책을 읽고 저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네요.

sweetmagic 2004-08-02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들을 불쌍하게 보는 자신의 시선이 불쌍한 거죠.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눈 왜 달고 다니는 지 몰라요. 차라리 보지를 말지 !!!
추천 ~!!!!!!!

(앗 흥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