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내가 다녔던 회사는 항상 공원을 끼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장충단 공원, 남산공원, 목동공원에 이어
지금은 건물 나서서 주차장만 지나면 바로 월드컵경기장 공원이 이어진다.
어쩌면 무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옮기기 전 다른 회사에서도 제안을 받았었는데,
그 회사는 연봉도 더 높고 직원복리후생도 더 좋지만
왁자지껄한 유흥가 그것도 모텔촌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친정과 멀다는 이유로 그곳을 고사하고 여기를 선택했는데,
저 밑바닥 심리에는 다른 마음이 숨어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중에 그 회사에서 나온 성과금 액수를 듣고 배야 아팠지만
요즘같은 봄날이면 그까짓 돈쯤이야 콧방귀를 뀔 수도 있을 것 같다.
화사한 봄바람에 싱숭생숭한 건 나뿐이 아닌 듯,
늘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던 사무실 사람들이 창밖이 훤히 보이게 올려놓고 있다.
흐드러진 벚꽃과 개나리와 진달래와 산수유와 목련의 향연에
이번주부터는 제법 신록도 어우러지고 있어 가히 눈이 호사하고 있는데
오늘은 결국 참다 못해 우체국 갈 일을 억지로 만들었다.

신입사원은 군심부름 안해서 좋고
나는 공원따라 조성된 벚꽃길을 즐길 수 있어 좋고
우체국 심부름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게도 나는 오늘 하나 부치고 내일 또 하나 부치면 될 것을
홀랑 두 개 다 보내는 우를 저질렀놓고 이제와 사람들에게 기웃거린다.

"혹시 누구 우체국 갈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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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4-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요 저요~~
요즘 풍경이 참 예쁘죠. 낼은 저도 핑계대고 나갈래요.

꿈꾸는섬 2011-04-2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체국 가는 길이 참 좋군요. 전 그제 남편 심부름으로 다녀왔는데 우리 동넨 영 아니에요.ㅜㅜ

조선인 2011-04-20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사진기도 꼭이요~
꿈꾸는섬님, 이궁, 꽃세상이 아닌가봐요. 이렇게 좋은 날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