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께서는 열이 많은 체질이셨다. 하여 계절불문하고 냉장고에 물통과 냉커피통과 냉미숫가루통이 채워져 있었고, 난 초등학교 때부터 냉커피를 훔쳐먹다가 중독이 되고 말았다. 대학교 다닐 무렵에는 하루 십여잔의 커피로도 성이 안 차 인스턴트 커피를 통채 들고 다니며 숟가락으로 퍼먹곤 하였다.
결국 만성위염으로 인해 대학 2학년 때 커피를 끓으라는 엄명을 받았다. 친정어머니는 집에 있던 모든 커피를 버렸고, 나 역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禁커피에 동의하였다. 처음엔 금단증상으로 누가 말을 걸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멍한 상태가 계속되더니, 날이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었다. 禁커피 1주일만에 사건이 터졌다. 전공수업이 끝나고 단짝들과 무리지어 나오는데 그 친구들이 하나같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마시는 게 아닌가? 내가 금단증상으로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아는 단짝들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거 같아 서운한 기분이 들었고, 순간 이성이 툭 끊어졌다.
잠시후 난 과방에서 단짝중 하나가 권하는 담배를 생전 처음 피어보며 켈록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자판기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댔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강제로 과방으로 끌고내려와 날 달래기 위해 커피 대신 담배를 권했고, 이를 내가 서슴없이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난 거짓말 말라며 펄쩍 뛰었지만, 자판기 앞면 플라스틱 덮개가 깨진 걸 보고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禁커피를 포기했다...
지금도 커피를 즐기는 건 사실이지만, 이젠 꽤 자제력이 생겨 오전, 오후 1번씩 2잔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자제력이 실종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 난... 지금 마시는 커피가 몇 잔째인지 알 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