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그녀는 김희애다. 마라톤 코치였던 그의 남편은 얼마전 암투병을 하다가 죽었고, 초등학생 아들과 힘겹게 살고 있다.

세 남자 중 한 명은 공형진이다.  그는 희애 남편의 친구였다.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가 전이를 발견하고 도로 닫았다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더랬다. 친구와 그의 아내는 생각보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희애가 잠깐 매점에 간 사이 친구는 병실에 있던 아내의 사진을 형진에게 보여줬다. 남자가 입원하기 전 사진관에 같이 가 가족사진을 찍었고, 남자의 주장으로 각각 독사진도 찍었다. 남자의 속내는 혹시 자신의 영정사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했기에 티를 안 내려고 더 환한 웃음을 지었더랬다.
"내 마누라 진짜 이쁘지? 나 죽어도 아마 얼른 재혼할 수 있을 거야. 아직도 이렇게 이쁘고 젊잖아. 너가 생각해도 그럴 거 같지 않아?" 
"짜식, 별 소리를 다 한다. 얼른 나을 생각이나 해라. 그 이쁜 마누라 남에게 뺏길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아냐, 걱정하는 게.  희애가 건강하고 착한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평생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할텐데. 너만 좋다면 난 희애를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데?"
"이런 미친 놈. 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 난 너랑 달리 아직 총각이야. 밖에 나가면 나 좋다는 여자가 쭈욱 깔려 있다고. 헛소리 듣고 있으려니 화 나네. 나 화장실 갔다 올 동안 반성하고 있어."
형진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친구 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서둘러 병실을 빠져 나온다. 화장실에 가 숨죽여 울던 그는 문득 그녀의 사진을 들고 나온 걸 깨달았다.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코트 주머니에 액자를 넣은 채 친구의 병실로 향하는데,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희애는 양손에 가득 먹을거리를 사들고 돌아왔다가 그 사이 의식불명에 빠진 남편을 발견했고, 남편은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형진은 여자와 함께 우왕좌왕하다가 귀가를 했고 집에 와서야 여자의 사진을 들고 온 걸 알았다.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 돌려줄 작정이었지만, 친구는 밤새 죽었고, 넋이 나가 우는 희애 대신 장례를 돕게 된다. 사진을 돌려줄 기회를 놓친 형진의 침대 옆에 사진 속 희애는 환하게 웃고 있다. 

세 남자 중 다른 한 명은 누군지 모르겠다. 마라톤 선수인 그는 희애보다 어리고, 짧은 머리이고 다부진 체격이다. 그는 자신의 코치뿐 아니라 가족 모두와 친했다. 특히 코치의 아들이 그를 무척이나 따랐다. 코치가 병원에 입원한 뒤 그는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하게 되는데, 그를 응원하기 위해 코치의 아들이 선물을 사왔다. 인터넷에서 보스턴을 찾아봤다가 눈내리는 사진을 본 아들은 보스턴이 한 겨울일 줄 알고 목도리를 사 왔다. 그리고 선수 시절 아빠의 부적이었다며, 엄마의 사진이 든 목걸이도 함께 들고 왔다. 그 사진은 아직 결혼하기 전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갔을 때 매장 직원이 기념으로 찍어줬던 것이다. 엉뚱한 선물이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받아뒀다가 돌려줄 작정이었는데,  귀국해보니 그 사이 코치가 죽었고, 역시 사진을 돌려줄 기회를 놓친 그는 그 목걸이를 몰래 걸고 다닌다. 

세 남자 중 마지막 한 명은 희애의 친구다. 이 남자는 머리가 제법 길고 덥수룩하다. 과 친구로 지내던 희애가 어느날부터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미처 고백하지 못 하고 군대에 갔다. 그가 제대하기도 전에 희애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기에 자신의 마음을 묻어야 했다. 선을 봐서 결혼했다가 이혼한 그는 아직도 희애를 잊지 못 해 대학시절 희애와 찍은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세 남자는 희애 남편의 장례식을 돕다 알게됐고 함께 삼우재며 사구재며 1주기를 지켜주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점점 의기투합하여 친해진 그들은 가끔 함께 희애의 집에 놀러간다. 각자의 속마음을 숨긴 채.

희애의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즐겨 그림자놀이를 했다. 남편이 죽은 뒤에는 희애가 대신 해주곤 하는데, 희애는 남편만큼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 줄 모른다.
한편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간신히 병원비에 든 빚은 갚았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한지라 희애는 신혼 때부터 살던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자그만 가게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때는 여름이었고, 아무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시름에 빠져 있는데, 부동산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살 사람은 안 오고 부동산 직원만 와서 휘 돌아보고 가는 바람에 희애는 걱정이 태산이다. 저녁 설겆이를 끝내고 멍하니 앉아있는 희애가 안쓰러워 아들은 그림자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희애가 달팽이 그림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몰라 쩔쩔 매고 있을 때 남자 A가 찾아온다. A는 부동산투자회사 사장이고, 직원의 보고서를 본 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매물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A는 촛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의아해하고, 희애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그에게 왠지 당황하여 두서없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달팽이 그림자가 잘 안 만들어지네요. 평소에 늘 촛불을 켜놓는 건 아니구요, 제가 주의를 잘 해서 불 날 염려 같은 거 없어요."
막 촛불을 끄려고 하는데, A가 말없이 달팽이 그림자를 만들어 보인다. 좋아라 하는 아들.
"아저씨, 혹시 사자 그림자도 만들 줄 알아요?"
아들의 요청 대로 이것 저것 그림자를 만들어 보이는 A의 기다란 손가락을 희애는 자기도 모르게 물끄러미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문득 A와 눈이 마주치고 부끄러워 음료수 핑계를 대고 부엌으로 도망간다. 그 사이 아들은 A와 그림자놀이를 하며 아빠 돌아가신 얘기며, 집안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수다떤다.
A는 보고서 내용대로인 집도 마음에 들었고, 수줍음 많은 희애에게도 왠지 마음이 가 집을 사기로 결정한다. 원래는 냉혹하고 계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A지만 희애의 사정을 봐주어 희애가 시세보다 싸게 전세로 그 집에 계속 살게 해준다. A는 차가운 인상의 올백머리이고, 마라톤 선수와 동갑이다.

어느날, 희애의 아들은 학교에서 캠프를 가고, 이를 알게 된 세 남자는 혼자 허전해 하는 희애랑 술을 마시러 간다. 사무실 직원들과 회식을 나왔던 A는 남자 셋과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는 희애를 보며 이유모를 불쾌함을 가진다. 직원 하나가 지나치게 술을 강권하다 옷에 흘리자 더욱 기분이 상한 그는 이를 닦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던 도중, 술을 깨기 위해 화장실 핑계대고 빠져나온 희애를 보게 된다. 혼자 컴컴한 복도 벽에 기대어 달팽이 그림자를 만들어 보고 있는 희애. A는 "잠깐이지만 당신을 오해해서 미안해요"라며 말을 건네고 지나친다. 뜬금없는 말에 놀란 희애. 그 날 이후 A는 희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희애와 A는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 세 남자는 A가 함을 가지고 온 날 그를 맞이하고, 각자 간직하고 있던 희애의 사진을 A에게 주며 결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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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0-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 속의 나는 TV에서 하는 단막극 드라마 '한 여자와 그녀를 찍은 세 장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꿈에 영향을 끼친 건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미장원에서 들은 김희애 이야기, 모 직원이 늘어놓은 이민정과 슬옹이 출연한 드라마에서 발단한 단막극 이야기.

비로그인 2010-10-0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생각.

결혼이, 모든 사랑의 마지막일까요.

ChinPei 2010-10-0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것 조선인님이 생각하신 이야기이세요?
소설가 재능도 있으시네요.

조선인 2010-10-1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 결코 마지막이 아니죠. 단막극임을 양해해주세요. ㅋㅋ
친페이님, 하하하 그게 말이죠. 꿈꾼 거에요. 황당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