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사진을 올리고 싶다만 아직도 6월초 사진 정리중이다. 나도 참 징하다.  

법흥사는 사림 기행 답사와 별개로 들린 곳이다.
요선암에서 워낙 시간을 끌어 때늦은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산골짜장'이라는 간판 보고 들어갔던 곳이 법흥사 바로 아랫자락이었다.
절 코 앞에 중국집을 차린 사연이야 모르겠지만,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손님으로 북적였다.
덕분에 한참을 배 곯은 후에야 짜장면, 짬뽕과 면식할 수 있었는데,
밍밍한 내 입맛엔 좀 많이 짜다 싶었지만, 면발도 쫄깃하고 국물도 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법흥사에 가면 무조건 산골짜장이 필수코스에 낀다니 꽤 유명한 듯 하다. 

각설하고 코 앞에서 건너뛸 수 없겠다 싶어 식사 후 법흥사에 올랐다.
무심히 들른 곳 치고 절이 크다 싶었더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역사가 삼국시대 자장율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이 자장율사일텐데,
옆지기가 직접 함 지고 왔을 때 봉채떡에 절 올렸다고 미신이라 난리쳤던 시부모님들이
손주들 재울 때마다 자장율사 찾는 것 보고 결혼초 조금 심술궂은 마음이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적멸보궁은 적멸보궁인데 사리 모신 장소가 참 특이하다. 



법전에는 부처님도 사리함도 안 계시고 저렇게 방석만 떡 하니 놓여 있고, 뒤로 유리창을 냈다.
유리창에 비친 저 사자산 어드메에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숨겨 놨다는 것인데,
믿음 없는 자의 눈으론 이 전설을 과연 믿어야 하나 싶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산이 부처요, 부처가 산인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증거라면 증거랄까 법전 뒤에는 자장율사가 해탈하신 암자굴도 있고. 



템플스테이도 하고, 특이하게 티베트 만다라전도 있고,
법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기색은 역력한데,
화재로 소실되었던 절을 일제시대에 중건하고 근래에 불사를 올리는 중이라 그런지,
어째 전반적으로 어수선하고 균형이 안 맞아 보인다.
그래도 사자산과 오래 벗한 절이라 수백년된 수목들이 위엄을 더해준다. 





잘 생긴 나무들 보는 재미에 폭 빠져 있는데 보살님 한 분이 일러주신다.
사자산의 기상이 영험하여 일제 시대 때 기운 좋은 금강송마다 도끼질을 해댔다는데,
말뚝질은 알았어도 도끼질 얘기는 또 처음이다.
하여 요리 조리 살펴 보니 정말 밑둥에 도끼 자국 있는 나무가 눈에 띈다. 



아이들이 목마르다고 보채 경내의 찻집에 들어가니 오미자차며 수정과가 차고 그윽하며,
곁들여 나온 말린 대추가 참으로 달아 욕심껏 여러 봉지를 사와 지금껏 먹고 있다. 



애들은 겁도 없이 찻집 보살님들에게 까불어대며 천방지축 헤집고 다니고,
이틀 동안 부지런히 돌아 다녔으니 상이다 싶어 한껏 여유를 즐기는데,
창 밖이 어둑해져 화들짝 놀라 쫓아 나와보니 아직 해넘이는 아니지만 구름이 장관이다. 
오늘은 참 여러 부처님 많이 본다며 옆지기와 농을 섞으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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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09-0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부처님 많이 본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에요~. 부부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니, 정말 멋져요~~~

Arch 2009-09-0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멸보궁이나 진신사리 등등의 말들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저어기 선반 속에 쏙 들어간 해람이가 사랑스럽다는건 확실히 알겠어요. 몸을 작게 만들어서 쏙 들어가 있는거 참 좋아요.

조선인 2009-09-04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세상님, 우리 부부는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이죠. ㅋㅎ
아치님, 저 안에서 나왔을 때 꼴은 정말 가관이었답니다. 머리에는 거미줄 엉키고 온 몸에 먼지 뒤집어쓰고.

순오기 2009-09-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절들이 템플스테이 한다고 공간만 있으면 건물 지어대는 통에 산사의 멋이 사라지고 있어요.ㅜㅜ 나무에 도끼질도 했다니 참 징헌 놈들입니다~
군산사진에 내가 한꼭지라도 찍힌 게 있으려나~ 내 카메라엔 하나도 없으니 군산 갔었다는 증빙이 안되더라고요.ㅋㅋ

같은하늘 2009-09-0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살 아이들의 마음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건지...^^

조선인 2009-09-0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제가 일부러 얼굴 나오게 사진을 안 찍었는데. 이런. 죄송.
같은하늘님, 그러게요. 그 속에는 장난대마왕만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