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해람 어린이집 전달사항을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놀이방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에게 거친 행동도 보입니다.'

마로나 해람이 키우면서 거칠다는 얘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던 터라 옆지기와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도 하고, 마로에 비해 해람에게는 너무 무심했구나 반성도 많이 했다. 생각해보면 최근 애들 앞에서 옆지기와 싸운 적이 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걸까, 해람이가 부쩍 많이 까불게 되었는데 이를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걸까 걱정은 끝도 없었다.

게다가 어제는 해람이가 저녁에 자랑하길 '나랑 희수랑 둘이서 예린이가 만든 집 부셨다'라고 하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나와 옆지기는 해람이를 앉혀 놓고 한참을 타이르고 가르치고 잔소리를 했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라고 결론지어 일단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아침 전화를 드리니 담임 선생님이 아직 출근 전이라 원장 선생님에게 상담 요청을 전해 놓고, 아이들 낮잠 시간 맞춰 외출 허가를 받으려던 참에 연락이 왔다. 선생님은 집에서 뭔 일이 있었냐며 역으로 여쭤오셨고, 우리는 어제, 그제 일 때문에 죄송하고 걱정이 되어 그렇다고 말씀드리는데, '어머, 어머님, 호호호호' 놀랍게도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해람이가 다른 애들에 비해 낯가림도 심하고 혼자 노는 경향이 많아 걱정했는데, 그제는 놀이방에서 소리도 지르고 다른 남자아이들과 거친 몸놀이도 잘 해서 특별히 적었던 거지 문제가 있었다는 뜻은 아니란다. 또 어제는 아이들 놀이활동 중에 블럭을 높이 쌓은 뒤 무너뜨리기가 있었던 거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탁 놓이고 긴장이 풀려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더 큰 반성이 몰려온다.

올해 3월 반도 바뀌고 담임선생님도 바뀌고 친구수도 늘어난 뒤 해람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엄마 아빠에 대한 집착도 심해졌고, 낮잠시간에 오줌 싸는 일도 잦고, 악몽을 꾸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적응하겠지 싶어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해람이가 바뀐 반에 익숙해지는데 거의 반 학기가 걸린 셈인 거다. 그것도 모르고 덮어놓고 애만 혼냈으니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해람, 오늘 저녁은 큰 맘 먹고 한우 사가지고 들어갈게! 뽀뽀도 두 배 더 해 주고 꼭끼도 더 많이 해줄게. 사랑한다, 우리 아들

뱀꼬리)
옆지기와 방금 전 통화를 했다. 옆지기도 안심하는 눈치다.
게다가 문자까지 보내왔다.
'오늘은 부부의 날. 마누라 힘내자. 화이팅
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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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5-2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행이에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해피 엔딩인가요.^^

하늘바람 2009-05-2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저도 읽고 철렁했네요. 결국은 큰 문제 없는 거지요?
저도 지난주 비슷한 일이있었어요.
태은이가 자꾸 친구들을 밀어서 친구들이 운다는 거예요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냐고.
저흰 오히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나 했거든요
왜냐면 자다가 악몽을 꾸는 지 사시나무 떨뜻떨며 울고 불고 할때가 많아서요.
제 생각엔 친구 밀었다고 선생님이 벌을 세운게 아닌가 싶어요
어린이집에 보내다 보니 참 ~여러가지가 걸리더라고요
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조선인 2009-05-2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새 댓글이.
마노아님, 그저 해람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늘바람님, 처음으로 어린이집 다니는 거니까 힘드시더라도 어린이집 놀이시간에 맞춰 방문해 방 밖에서 몰래 관찰해보시는 게 필요할 거에요. 지분거리는 친구가 있어 밀쳐낸 건데 선생님이 못 본 걸 수도 있고, 친구들과 노는 게 익숙하지 않아 놀자고 하는 애들을 밀치는 걸 수도 있고. 아아 쓰다 보니 또 반성이네요. 마로 때는 참 여러 모로 신경 썼는데, 해람이는 완전 방치했으니.

Arch 2009-05-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다.. 뽀뽀 열배로 해주고 해람이랑 더 재미있는 놀이 많이 해요!
그런데 오늘이 부부의 날이었어요? 부럽다^^

kimji 2009-05-2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몽... 어린이집 다닌 지 두어달이 지난 최근에 아이가 자다 악몽을 꾸는지 울기도 하고, 잠꼬대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잠꼬대의 내용은 주로, '내가 다 가질 거야-' , '싫어, 싫어, 싫어', (뜬금없이) '나 운전 안 할래-' 이런 것들.
악몽도 습관이 되는지, 한 번 꾸고나서는 계속 이어져서 혹시나 어린이집에서 문제가 있나 싶어서 슬쩍 운을 떼보니 (아이가 악몽을 꾼다고 어린이집에 무슨 일 있느냐 묻기가 좀 그러하더라구요), 그런 눈치는 없고요. 한동안 아프더니만 기가 약해져서 그러나 싶기도 하고;;
저희 애는, 좋아하는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게 고민이에요. 선생님도 다소 난감해하시기도 하는 모양인데;; (언젠가 페이퍼로 쓰려고 하는 중인데; ) 제 엄마를 닮아, 좋은 건 못 참는 성격인 거 같아서 누구 탓도 못하고. 아무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로 느는 건 걱정과 한탄, 그리고 자기 반성 뿐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5-2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쩌면 조만간 주니어 월 수 금 지역체육센터에서 하는 농구장에 난입할지도 모릅니다.초등 고학년 두 놈(형제)이 주니어를 비롯한 저학년 애들을 농구하면서 그렇게 괴롭힌답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 출동해서 아주 뿌릴 뽑아버릴 예정이랍니다.

조선인 2009-05-2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넵, 부부의 날입니다. 부럽죠?
김지님, 나 운전 안 할래 라니... 세상에 그 어린 아이에게 카트 운전을 맡기시나요? 자전거 운전을 맡기시나요? ㅋㅋ
메피스토님, 이궁 부디 사건사고 기사로 출연하지 마시길.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