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마로 유치원 체육대회였더랬다. 지난 한주가 워낙 힘들었던 터라 속으론 비가 와라 비가 와라 염불을 외었건만 어찌나 날씨가 화창하고 좋던지. 쩝.
마침 이번주에 옆지기 생일이 들어있던 터라 시부모님을 초대했는데, 두 분 다 손주 체육대회는 처음이라며 좋아하셨고, 특히 시어머니는 할머니 경기에 나가 상품을 타는 기염을 토하셨고, 시아버지는 어찌나 해람이를 싸고 도시는지 난 하루종일 거의 안아보지도 못했을 정도였던 터라 뒤늦게서야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워낙 운동과는 담쌓은 나이지만 마로의 성화에 두 차례 어머니 경기에 나갔더랬다. 한 번은 25m 달리기, 또 한 번은 초대형 풍선으로 하는 배구. 달리기의 경우 1,2등을 뽑는 게 아니라 라인 중간에 선물을 2개 놓고 5명 중 줍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이었는데, 운 좋게도 내가 선 라인에 선물이 놓였다. 워낙 빠른 분이 계셔서 하나는 그 분이 순식간에 차지했고, 다른 하나의 선물을 가지고 옆라인 3분이 거의 동시에 내 라인으로 몸을 날렸는데 순간적으로 난 겁을 먹고 피해버렸다. -.-;; 슬라이딩으로 몸을 날린 3분은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까지 벌였고, 그 중 키도 크고 체격도 좋으신 분(이후 MVP)이 기어이 선물을 낚아채는데 성공했다. 그 치열한 광경에 놀란 건 나뿐이 아닌 듯 했는데, 그 다음 차례 달리기에선 심지어 머리끄댕이를 붙잡아 다른 사람이 잡은 선물을 뺏는 분도 계셨다. @.@

일명 '지구를 구해라'라는 이름의 초대형 풍선 배구의 경우 키 작은 내가 대표로 나가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상대팀에 비해 우리팀 어머니의 숫자가 부족해 뒤늦게 차출되었다. 대개의 경우 풍선에 내 손이 닿기 전에 키 큰 어머니들이 먼저 치기 때문에 난 손 들고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순간 하필 나 혼자 있는 곳으로 풍선이 날라왔다. 잔뜩 긴장하여 점프를 해서 받으려는 순간!
그야말로 붕~ 날랐다. 아까의 MVP가 전력을 다해 달려와 공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나와 몸이 부딪쳤나본데, 비록 키는 작지만 몸무게는 꽤나 실한 내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날라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나마 풍선 배구는 우리 팀(백팀)이 이겼고, 시어머니가 나갔던 풍선기둥 만들어 터뜨리기 역시 이겼지만, 부모 참가율이 좋은 홍팀이 거의 연승행진을 달렸다. 특히 줄다리기의 경우 아이들 경기, 어머니 경기, 아버지 경기까지 삼연패를 당하자 마로는 울먹이기 시작했고, 이를 달래기 위해 꿈쩍도 않던 옆지기가 계주 선수로 나섰다. 그런데 왠걸? 워낙 롱다리과인 옆지기야 선생님 말씀대로 '성큼성큼' 수월하게 홍팀과 간격을 만들었는데, 하필 다음 선수가 뛰다가 넘어져서 부상, 또 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서인 행운상 추첨에서도 우리 가족이 아무것도 못 받자 기어이 마로는 울음을 터뜨리고... 다행히 참가상으로 스케치북을 받고 기분은 좀 풀어졌지만 앞으로는 딸래미를 위해서라도 몸을 더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뱀꼬리.
- 당연히 백팀 MVP는 바로 그 MVP다.
- 일요일은 청년회 체육대회였고, 우연찮게도 또 백팀이었는데 우리가 이겼다. 딸래미 입은 그야말로 함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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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1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저언혀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이 기분은.......
한때 정말 잘 달렸었는데 지금은....윽..

홍수맘 2007-09-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우리 부부는 둘다 100M달리기를 20초 이상 하는 운동신경인데...
앞으로 걱정이네요.

조선인 2007-09-1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펠레스님, 님은 격투기는 잘 하시잖아요. 선물은 따놓은 당상?
홍수맘님, 딸래미 얼굴에 실망했다는 표정이 어찌나 역력하든지 흑흑흑

Mephistopheles 2007-09-10 14:48   좋아요 0 | URL
어머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어요..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나약한데요..

무스탕 2007-09-10 15:00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말씀으론 오해를 안했는데요 메피님 댓글보고 믿을뻔 했어요 =3=3=3

조선인 2007-09-11 08:12   좋아요 0 | URL
홍홍 메피스토펠레스님, 무스탕님이 제가 원하는 말씀을 하셨네요. 홍홍홍

BRINY 2007-09-1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영엄마 2007-09-1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운동회라도 후다닥 끝나는 감이 있는데 유치원 운동회에 시부모님도 오시고, 가족이 함께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저는 뭔 종목이든 절대 안 나갈려고 뒤로 빠져버려요. -.-)

조선인 2007-09-1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별 거야 있었겠어요? 포장의 크기로 봐서나 형태로 봐서는 양말이나 인형 같던데.
아영엄마님, 저도 나가고 싶어 나간 게 아니에요. 마로가 계속 울먹거려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