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은 작은댁에 해당하여 명절이면 진천 큰댁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묘한 게 종며느리는 요리조리 수완좋게 일더미에서 빠져나가는데
큰댁의 둘째 며느리되시는 분은 온갖 고생을 도맡아 한다.
이번 설에도 전날 미리 내려가 일손을 거들다 보니
종며느리는 점심상 차린 뒤엔 쏙 빠져나가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는 시어른들 틈에 껴 고스톱.
해람이 때문에 건성으로 일하는 내가 봐도 얄미우니 주야장창 일하는 작은형님 속은 더 시커멓다.
하기에 저녁상 치울 무렵 작은형님이 찜질방 가고 싶다 말씀하는 걸 잽싸게 주워담았다.

늘 작은형님을 안쓰럽게 여기는 시아버님과 아주버님, 옆지기를 하나씩 찔러 지원군으로 만들고,
온갖 아양과 엄살을 동원하여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에게 작은형님과 둘이서 찜질방 가는 걸 허락 받고,
드디어 진천 유일의 찜질방에 간 게 저녁 9시 반.
형님은 모처럼의 해방에 좋아서 벙실, 나도 애들 떼놓고 목욕하는 게 좋아 벙긋거렸는데,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 간단하게 샤워하려고 했더니 어째 물줄기가 영 시원찮았다.
졸졸 거리다 못 해 한 두 방울 똑똑 떨어지는 물 때문에 할 수 없이 탕 물로 비눗기를 씻어내는데
하루 종일 사람이 바글거렸는지 탕 물은 또 어찌나 더러운지.
게다가 너도 나도 물 안 나온다고 웅성거리니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인 아주머니가 쫓아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탱크의 물이 다 소진되어 다시 물이 나오려면 한두시간 정도 있어야 합니다.
찜질방에서 잠시 소일하시든지, 아니면 환불을 해드리겠습니다."

2시간을 종알대고 간신히 허락 받은 외출인데 고작 구정물 뒤집어쓰고 10분만에 귀가.
그래도 착하신 작은형님은 목욕탕 단수 사건 아무나 겪는 거 아니라고 실소하시니,
나도 따라 헛웃음을 날릴 수밖에.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02-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는 날이 장날이였군요..^^ 다음 명절부턴 작은형님과 담합을 해서 첫째형님 잔뜩
일을 떠안게 해버릴 묘책을 간구해보는 건 어떨까요..^^

2007-02-23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7-02-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성이오!!

세실 2007-02-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천 찜질방이라~~ 보탑사 가는 길에 '숯찜질방'은 아니죠? 생긴건 허름해도 찜질효과는 크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얄미운 큰형님 골탕 먹이고 싶네요. ㅎㅎ

조선인 2007-02-2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제가 시집오기 전부터 고착되온 것이라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방안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충성!
속닥님, 너무 좋아요. 댓글 남길게요.
유아블루님, 이왕이면 아이디어도 주세요!!!
세실님, 한밤중에 간 곳이라 이름은 몰라요. 지상 3층 건물로 꽤 크던데요?

전호인 2007-02-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삽질하셨군요, 작은 형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세요.

2007-02-23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3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2-2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안타까워요. 그래도 두시간 동안 밖에서 소일하다가 들어가시지....ㅡ.ㅜ

미설 2007-02-24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큰댁의 둘째 며느립니당-_-; 하는 일은 없지만 맘은 항상 힘든 자리인데 몸까지 힘드시다니 비슷한 입장에서 퍽 안타깝네요.. 어찌 얻은 두시간인데...정말 안타까워요...

조선인 2007-02-26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넵, 노력하겠습니다.
속닥님, 해람이건 거의 없는데, 아주 흐뭇합니다. 히히
또 속닥님, 다시 댓글 달게요.
마노아님, 소일할 곳도 없다는 게 진천의 문제라죠. 흑흑
미설님, 미리 따진 건 아니지만 옆지기가 작은집의 둘째라는 게 무척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