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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4.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날이 장애인의 날인지는 저녁 지하철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처음 알았다. 장애인의 날이 눈에 띈 건 최근 읽고 있던 김원영의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때문인 듯하다.

마침 그날 신문에는 우리나라의 장애관련 예산이 ‘GDP의 1000분의 1’로 OECD 회원국중 꼴찌수준이라는 기사가 났다.

“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19일 2005년도 한국의 장애 관련 예산은 국내총생산의 0.1%라고 밝혔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가입국 가운데 자료비교가 가능한 23개 나라의 평균 1.2%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비중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0%)가 유일했다. ......... 우리나라는 장애연금 수급비율에서도 1.5%로 바닥권이었다.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5.8%로 한국의 4배 수준에 이르렀다. 멕시코(0.7%)를 빼고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없었다. 헝가리가 12.1%로 가장 윗자리에 올랐다. 역시 스웨덴(10.8%), 노르웨이(10.3%), 핀란드(8.5%), 네덜란드(8.3%) 등 유럽 국가들이 선두권을 형성했다.”(한겨레신문, 2010.4.20일자)

김원영의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 뿐 아니라 복지 및 정책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절실하게 느낀 터라 이런 기사가 더욱 와닿은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지하철에서 “안산 어린이집”으로 시작하는 쪽지를 돌리거나 계단에서 바구니를 놓고 푼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동전이든 지폐든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장애인이든 사회적 약자든 이들에 대해 무덤덤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런데 김원영의 책은 한동안 개인적인 동정은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고 국가가 해결해야할 일이라고 애써 무심하던 내게 큰 깨우침과 뉘우침을 주었다. 하지만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책의 초반부에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특이한 질병을 가진 장애인의 서울대 입학 성공기 플러스 알파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왕 쓸 성공기라면 사시합격이든 판사 임용이든 좀더 큰 성공을 보여준 후에 책을 쓰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약간의 비아냥과 함께... 하지만 책의 중간을 넘어서면서 이런 경솔한 생각은 점차, 빠르게 변해갔다. 그가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문제점이 너무나 심각했던 것이다. 그는 그와 함께 장애를 겪고있는 수많은 친구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설익은 마음으로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수 년동안 장애인 문제에 무심하던 나를 조금이나마 일깨워주었으니.

그동안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 회계부정이나 비리 같은 뉴스를 보거나 공지영의 도가니 같은 글을 보고 장애인 문제에 막연한 동정심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내게 이책은 장애인을 어떻게 보고 장애인 문제를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성공한 장애인의 개인적인 성장기나 수기는 아니다. 장애인과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새롭게 하는 입문서이다.

지금도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제목에 있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몸이 가진 욕망과 내 몸에 투영된 운명, 그 모든 것을 쿨하게 받아칠 줄 아는 유쾌한 인간 또는 고상한 척, 성숙한 척하는 인간이 아니라 좀 구차하고 미성숙하더라도 뛰고 싶다면 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남은 생을 뜨겁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누군가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무성적인 존재로 인식당할 때 저 유명한 드러마 주인공 강마에의 대사처럼 “진짜 시련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겪은 척, 뛰어넘은 척, 쿨한 척”하는 대신 “내 몸을 봐라. 내 욕망을 봐라. 나의 짓밟히는 자존심을 봐라”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p.219)

장애인 및 소수자를 보는 시각에 대한 자기반성과 함께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자꾸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돕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우산을 받쳐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공감하는 것임을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구절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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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행복한책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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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제원의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는 “독서의 즐거움을 위한” 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들보다는 일반 직장인들이 바쁜 일상속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책읽는 방법을 소개하는 또하나의 안내서이다. 그에게 이 책을 쓰는 계기를 만들어준 안상헌의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2005.3월>이나 박민영의 <책 읽는 책, 2005.9월>(서문에서 저자는 책이름을 “책속의 책”으로 잘못 적어 책을 찾느라 잠깐 헤맸다) 과 같이, 이 책도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한 또는 시도해볼만한 독서법들이 가득하다. 일부 방법들은 위의 두 책과 겹치는 부분들도 없지 않으나, 이 둘이 발간된 지 5년이나(!) 지났다는 점에서 보다 업그레이드된 다양한 독서법이 나온다는 건 좋은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도 누구나 어떤 책을 골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독서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해주는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즉 다른 책들과 달리(글세 이런 방식으로 쓴 독서 안내기가 전혀 없는지는 모두 확인해보지 않아 확신하기 어렵지만), 저자는 30가지(아, 이전 책 “한권으로 읽는 로마제국 쇠망사”도 30가지 주제로 분류했었는데!!!) 독서법을 소개하고 각각의 독서법에 적합한 책을 한가지씩 골라 자신이 읽어가는 방법을 실증해준다. 그가 다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장점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이....
 

“실제로 책을 읽으며 독서법을 소개하는 것은, 독서법만 알고 실제로 그 독서법에 맞춰 독서는 할줄 모르는 병페를 없애기 위해서다. 훌륭한 독서법은 독서 행위 밖에서 관념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독서행위 내부에서 우리에게 현시될 뿐이다.”(4-5쪽)
 

그리고 흥미롭게도 각각의 독서방법에 따라 선택되는 책이 따로 떨어진 별개의 책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되는 책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첫째 독서법(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책을 읽는다)에서 선택된 강준만의 <지성인을 위한 교양브런치>, 다음으로 두 번째 독서법(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는다)에서 선택된 책은 같은 저자인 강준만의 <행복코드>이다. 세 번째 독서법인 ‘같은 테마의 책을 읽는다’에서는 자연스럽게 행복과 같련된 책으로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선택된다. 

물론 뒤편으로 갈수록 연관관계가 약해지는 부분도 생기기는 하지만 그동안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잘 알지 못했던 신선한 독서방법도 가득히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집중적으로 읽었다는 250권의 도서목록중에는 앞으로 읽어야 할 책 목록으로 삼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책들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피에르 제르마의 <이것이 세상이다>나 <파브르 평전>,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반룬의 예술사> 등은 ‘마이리스트’에 바로 등록해야겠다. 

가볍게 아쉬운점 두 어가지.

24번째 독서법으로 “머리말이 좋은 책을 읽는다”를 소개했지만 정작 본인의 책은 그 인식보다는 조금(!) 우아하지 않은 듯.

그동안의 독서경력을 토대로 오랜 기간 공력을 들인 행복한 책읽기 안내서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다소 과거의 책들을 독서법의 사례로 들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30가지 책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996년판 <채근담>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최근 1년 이내에 발간된 책들이다.

그리고 “행복한 책읽기”라는 제목이 낯이 익은 것은 작고한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때문일 텐데, 제목 차용에 대한 감사함을 어딘가에 표시하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과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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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이 쓴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소개한 책들중 틈나는 대로 읽어봐야 할 책들을 모아 둔다. 

 

 


3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지음, 권혜련 외 옮김, 최재천 감수 / 샘터사 / 2006년 6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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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머니 수난사- 여자보다 강한 어머니들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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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파브르 평전-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 한다
마르틴 아우어 지음, 인성기 옮김 / 청년사 / 2003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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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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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로마 제국 쇠망사 - 한 권으로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나모리 시게나리 엮음, 한유희 옮김 / 북프렌즈(시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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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권으로 읽는 로마제국 쇠망사>는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 동안 모두 여섯 권으로 발간한 대작 <로마제국 쇠망사,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를 기본 텍스트로 알기 쉽게 요약한 책이다. 한 가지 이 책의 장점은 기번의 서술 대상이 서기 2세기(안토니누스 황제 서기 98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동로마제국이 몰락한 15세기까지 1,400여 년의 역사를 담은 반면 위 책은 로마제국의 발전 과정인 공화정 시대(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 즉 초대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전)의 여러 사건들로 서술의 시계를 2백년 이상 확장함으로써 좀더 흥미롭게 로마역사를 개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마제국쇠망사>를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초반 까치글방에서 한권으로 편역된 책을 통해서였다. 그때는 이 한권이 여섯권으로 이루어진 원작의 축약본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중간중간마다 기번의 유장하면서도 강렬한 문체를 발견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따라서 까치글방에서 나온 책과 시게나리의 책과의 관계는 까치글방 책이 원본을 보다 충실히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시게나리의 책은 기번이 서술하지 않은 이전의 중요한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90년대 초반에 이 책이 등장한 것도 아마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고대 로마제국의 몰락을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으리라는 출판사의 예리한 상술이 작용한 측면도 크지 않을까?
 

2. 시게나리 책의 일본어 제목은 원래 <30포인트로 읽는 로마제국 쇠망사>인데 우리말로 바꾸면서 그동안 숱하게 잘 팔리는 책들을 양산해온 <한권으로 읽는.....>으로 한 모양이다. 어쨌든 원제의 30포인트가 글 글자크기의 30포인트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큰 글씨로 썼다는 의미에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이기는 할 텐데, 인간적으로(!) 30포인트면 책이 아니라 파워포인트용 크기로서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아닌가 했었다. 그런데 책의 목차를 다시 살펴보니 딱 3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포인트가 글자크기가 아니라 주제 또는 요점이었던 것이다. 이런 허망한...... 편견의 무서움을 이런 사소한 곳에서 다시 깨닫는다. 
 

3. 시게나리의 책은 구성과 내용면에서는 기존의 원작(민음사)과 축약본(까치글방)에서 찾을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번역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일부 발견되는 것 같다. 특히 이 책이 이미 2008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30포인트로 읽어내는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13쪽) “공화정 시대는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시작되어 로마 제정 전까지 482년간 지속되었다.”  

--> 아마 공화정시대가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전 27년(509-27=482년)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즉위 이전까지의 기간일 텐데 이 경우 “아우구스투의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시작된 로마 제정 전까지”로 표현해야 할 듯

(57-59쪽)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삼두정치를 하기 위해 시집보낸 율리아가 그의 여동생(57쪽)인지 딸(59쪽)인지, 아니면 여동생과 딸을 모두 시집보낸건지 헛갈린다.
--> 아마 여동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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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폭력사회 -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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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프스키의 책은 처음 접하기 때문인지 서술 방식이 우선 약간은 낯설다. 역자의 말대로 조프스키의 스타일이 논의의 배경이나 개요 없이 바로 주제로 파고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폭력이라는 눈살찌푸리고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주제를 사회적, 문화사적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역자에 의하면 저자의 낯선 문체 스타일은 <리바이어던>을 쓴 토마스 홉스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사회현상인 폭력과 함께 폭력과 연관된, 아마 모든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현상들을 포괄하여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폭력과 관련하여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은 “무기, 학살, 고문, 불안, 파괴, 도주” 등으로 이는 목차에서 그대로 발견된다. 또한 저자는 폭력과 관련한 현상을 폭력의 주체의 시각 뿐 아니라 객체 혹은 대상의 시각에서도 동시에 분석하고 있다. 물론 폭력의 대상이 사물일 경우(사물들의 파괴 장)에는 이러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목차>
질서와 폭력/ 무기/ 폭력과 격정/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

저자는 폭력의 발생과정과 배경을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우선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거나 단합하려는 이유는 신체상의 고통 또는 폭력의 경험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타인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끝임없이 규정과 규칙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 질서나 지배가 “괴수의 촉수처럼” 삶과 자유를 억압하는 또다른 폭력이 된다. 아마 이는 질서나 안전에 대한 대가로 개인의 자유를 일부 희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닮고 있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안전의 원칙>의 시각과도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질서는 다시 소요와 학살자들의 축제 속에 종언을 고했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폭력은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지배했다. 폭력은 혼돈을 마들고, (혼돈을 어렵사리 극복하고 만들어낸) 질서는 폭력을 만든다. 이런 딜레마는 풀어낼 길이 없다. 질서는 폭력에 대한 불안에 기초하여 스스로 새로운 불안과 폭력을 만든다.”(p.13)

질서와 폭력을 정의한 후에 저자는 각 장별로 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후 장을 읽으면서 나타나는 특이한 점은 첬째, 저자의 폭력 사회에 대한 분석방식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익숙함은 <감시와 처벌> 등과 같은 미셸 푸코의 저작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푸코를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의 주제인 감시, 처벌, 감옥, 통제(지배) 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근대사회를 감금사회, 관리사회, 처벌사회, 감시사회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그런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사상이 곧 지배의 사상이다. 칼은 말할 것도 없고 책과 성서 그리고 성직자 계급도 질서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p.25) 같은 문장은 푸코에게서도 발견함직 하지 않은가?


둘째는 고문, 학살, 사형집행, 파괴 등의 현상들이 일상에 또는 언론이나 영화 등을 통해 너무나 많이 노출된 때문인지 장별로 읽어 나갈 때마다 다양한 이미지나 책들이 끊임없이 연상되어 머리를 어지럽힌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건 한 권의 책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다양하게 접목시키고 반추해보는 행복한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무기”라는 장에서는 총, 칼, 대포 등의 도구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자체도 무기로서 분석하고 있는데, 몸 자체가 무기인 가장 극한 상황으로는 영화 “진주만”에 등장하는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의 모습이나 아랍지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자살 폭탄테러가 자연히 연상된다.
“폭력과 격정”의 장에서 질 드레의 기사도의 시대의 최후의 노(老기)사를 언급할 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된다.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과 “학살”이라는 장을 지날 때는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과 80년 광주의 학살현장이, “고문” 장에서는 역시 80년대 정치적 고문의 숱한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이 끝없이 떠오른다. 물론 저자는 “고문이란 총체적인 상황이다. 폭력은 희생자의 육체뿐만 그의 자아와 정신세계까지도 점령한다.”(p.139)고 우아하게 사회학적으로 정의한다. 또한 “구경꾼” 장에서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결투장면이 읽는 내내 본문과 겹친다. “구경꾼은 역겨움과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격렬함에 사로 잡힌다. 폭력의 격렬함은 감각과 귀, 눈, 영혼을 단번에 점령한다.”(p.147)에서도 그렇지만 러셀 크로우가 거인과의 대결후 관중들의 죽이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그를 살려주자 그를 칭송하는 관중들의 눈치를 보며 거인을 살려주기로 하는 장면은 본문과 그대로 겹친다. “환호하는 다중 자체가 파괴하는 힘이다. 처음에는 폭력이 관객을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관객이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 낸다. ....... 행위자는 구경꾼과 닮았고, 구경꾼도 행위자와 닮았다. 행위자는 구경꾼의 집단의지를 구현하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긴다. 이제 진정한 살인 집행자는 개별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구경꾼 집단이다.”(p.167) “그러나 결투장의 진정한 주권자는 황제가 아니라 관중이었다. 황제라 하더라도 다중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p.170) 물론 영화에서는 크로우가 다중의 요구에 역행함으로써 다중의 마음을 더 강하게 사로잡는다.

셋째는, 저자의 개념 정의나 설명은 때로는 특별한 세부 설명없이 다양한 비유로 압축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역자의 말과 같이 “시적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사물들의 파괴”란 장이 특히 그렇다.

“파괴는 특별한 형태의 행동 양식이다.
사람들은 자기 앞을 가로막는 사물을 부수고 없앤다.
파괴란 빈(혹은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앞뒤고 접근 통로를 열어준다.
파괴는 반동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바로 한계를 뛰어넘는 도약이다.
.......
파괴는 일체의 주어진 것을 무력화한다.
파괴는 무엇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파괴 앞에서는 존재했던 것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된다.
파괴는 생산과 산출을 철저하게 뒤집는다.
......
그러나 결국 파괴란 대립 자체이다.
그것은 세상을 인위적인 변형물로 만들고자 한다.
파괴의 입장에서는 사물의 속성보다는 실체와 실존이 더 중요하다.
..........
파괴는 교체를 빚어낸다.
파괴는 시간의 지속에 대립한다.
.......
파괴의 눈으로 보자면 사멸이야말로 가치있는 일이다.
파괴자들은 세상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
폐허란 불안전한 파괴의 산물일 뿐이다.
.....
파괴는 역사에 대항하는 행위이다.
파괴는 미래나 새로운 시작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는다.
......
파괴는 본성상 자신을 총체화하려고 애쓴다. .....
총체적 파괴란 사물을, 그것의 물질적 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의미까지도 가차없이 부수는 것을 말한다. ......
총체적 파괴란 하나의 행동을 공허나 무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pp.28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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