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소외집단 - 서양 중세사 총서 3
제프리 리처즈 지음 / 느티나무 / 1999년 8월
평점 :
품절


역사라고하면 으레 지배계급을 위주로 한 정치사가 떠오른다. 그도그럴 것이 정치적 지배자나 영웅들에 의해 역사의 전환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한 국가에서 이들의 지위는 정책을 결정지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대중 혹은 민중의 역할이 결정적인 역사의 추진력이라해도,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어서 뚜렷히 단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눈을 돌려 정치적 지배자의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기존 역사학의 한계를 과감히 극복하고자 하였다. 일상의 역사, 심성사, 미시사 등이 그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역사학적 방법론이며, 이미 많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이 책 '중세의 소외집단'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온 책이 아닌가 보여진다.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지배계급 혹은 지배계층보다 소외된 사람들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통해 중세의 후미진 구석 혹은 일상적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집단 즉 중세시기 소외된 사람들은 종교적 이단자 나병환자 마녀 창녀 유대인 등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들에 대한 판별기준이 현대와도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에게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은 다름아닌 종교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순수한 종교 그 자체라기보다 종교와 연계된 계급간의 이익과 상호 충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의 지위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사회구조적 올가미로서 종교의 영향력은 일반 대중이 극복하기엔 너무도 벅찬 것이었다. 20세기 중반 매카시즘적 마녀사냥 역시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중세의 종교적 권위를 대신한 것이지만, 그 본질은 동일한 것이 아닐까 한다.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희생양을 선택했다는 점, 종교 사상적 이데올로기를 그들에게 덧씌움으로써 이성적 사고의 틈을 주지 않았던 점이 너무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의 책 3
장노엘 로베르 지음, 조성애 옮김 / 이산 / 199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노엘 로베르의 '로마에서 중국까지'는 서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단길에 관한 역사서적이다. 중국 문명권에 근접한 우리들이 비단길에 대해 가진 막연한 동경은 중국을 떠나 로마로 향하는 길이다. 그 경로는 비단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나는 중국 상인들의 꿈이 서린 곳이며,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문화가 찬연히 꽃을 피운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단길에 대한 기대와 동경은 이 책의 서두를 읽는 동시에 사라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서양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 있어서 비단길은 로마를 떠나 중국을 향하는 경로이며, 진기한 서구의 보석을 품고 먼 길을 떠날 대상들의 희망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비단의 나라를 꿈꾸며 훗 날의 풍요를 위해 위험천만한 장삿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돈황석굴의 발굴을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나기 전까지, 비단길의 역사는 한낱 역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아시아의 유목민들의 볼 품없는 이동경로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돈황석굴의 여러 유물들은 로마와 중국을 잇는 비단길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해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서구와 동양이 만나는 문명의 가교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위대한 과거의 자취를 추적해보는데 목적이 있는 책이지만,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비단길의 서구적 의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칸의 제국 -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이산의 책 13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조너선 스펜스는 예일대학의 석좌교수로서 중국학의 거장이다. 그는 방대한 자료와 지식을 토대로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중국학 연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칸의 제국' 역시 스펜스의 신선한 접근방식이 돋보이는 그의 역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칸의 제국'의 저술 의도는 부제에서 엿보이듯이 서양인의 인식을 통해 중국을 바라보려는데 있다. 때문에 연구의 대상을 중국에 한정시킨다기보다, 중국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의식구조에 더 초점이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을 보는 서양인의 의식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는 약 50권에 달하는 중국관련 서적이다. 거기에는 마르코폴로 이래 중국을 방문한 여행가, 마테오리치와 같은 선교사,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의 사상가, 골드스미스나 펄벅 등의 소설가, 해방구에 들어가 모택동과 인터뷰한 에드가 스노우 등의 저널리스트, 닉슨과 함께 1972년 방중한 헨리키신저와 같은 외교관 등 폭넓은 인물들의 기록에 토대하고 있다. 이들의 고정관념과 생각을 통해 스펜스는 서구의 중국관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변모해가는 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또한 이들의 중국관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오류가 무엇에 기인한 것이며, 향후 중국과 관련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가를 넌지시 비추고 있다.

이책의 마지막 장 '12.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천재들'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으로 저자의 결론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스펜스는 천재적 작가들인 카프카, 보르헤스, 칼비노의 소설을 통해 서구의 중국관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자 시도한다. 그것은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시간이 뒤얽힌 공간 즉 미지의 영역 그 자체로서, 중국은 지금도 신비의 베일을 벗지 않은 그 무엇이며 앞으로도 그러한 신비가 벗겨질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호기심과 모험심을 밑천으로 그 광대한 대륙을 탐험해온 사람들에 의해 중국의 베일이 벗겨져 왔듯, 지금도 여전히 마르코폴로와 같이 순진무구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모험가들을 대륙은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람시 - 두레사상가선서 3
주세페 피오리 / 두레 / 1991년 7월
평점 :
품절


안토니오 그람시는 다룬 저서들이 봇물터지듯 나오고 있다. 그중 '그람시의 옥중수고'가 얼마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바 있다. 옥중수고는 그람시의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체계화한 것으로서, 이탈리아 내부의 문제로부터 해외 자본주의적 질서의 문제점 등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인이자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로서 그람시의 이론체계는 다소 난해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그를 좀더 잘 알기 위해 주세페 피오리의 '그람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매력은 기존 그람시의 이미지 즉 이론가이자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보다 그의 인간적인 감성을 해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혁명 앞에서는 굴하지 않지만, 사랑 앞에서 언제나 나약하며 변덕스러운 그의 인간적인 면모야말로 혁명가로서의 그람시를 돋보이게 한다. 이론가로서의 그람시가 난해하게 느껴지거나, 혁명가로서의 그람시가 너무도 경직되게 와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역시 나약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친근감이 와닿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현대사의 라이벌 - 역비의 책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 1991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전개방식은 참으로 흥미롭다. 마치 사기열전처럼 인물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되, 당대의 라이벌을 설정함으로써 그들의 경쟁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흥미로왔던 것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주제로 한 부분이었다. 두 인물은 한국전쟁 직전만 하더라도 외견상 사이가 좋았고,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하자, 이 두 사람이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선 전쟁실패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켜야만 했다. 김일성의 숙청은 이런 이유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남로당의 이승엽 임화 이강국 등을 겨냥했지만, 그들의 대부격이었던 박헌영에게도 결국은 손길이 뻗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대의 유명한 좌익 이론가가 박헌영과 여운형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여운형은 어떤 분야의 지도자로서도(특히 체육계) 어울릴 법한 인물이지만, 박헌영은 정치가 외의 어떤 지도자로서도 어울릴 법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일성에 대해 평가하자면 여운형과 비슷한 스타일의 지도자였다. 그는 비록 전쟁의 실패로 인해, 숙청이라는 무리수를 선택해야 했지만 누구보다도 좌우익간의 협력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이 30대 초반의 나이에 북한의 정계에서 가장 유력한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민족대동단결을 호소했던 정책에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