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사 - 개정판
이상신 지음 / 신서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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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내용의 방대함에 놀랐었다. 서양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역사서술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저자의 성실성에 대한 경이로움에서였던 것이다. 근현대의 역사서술 방식이 실증주의에 근거한 것이라든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회경제사적 서술이 한때 유행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익히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고대와 중세의 역사서술방식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알길이 없었고 매우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고대의 역사서술방식에 대해 신화적이고 영웅주의적인 서술과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와 같은 엄격한 실증주의적 방식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소 허황되지만, 역사와 신화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같은 작품이 말하자면 고대의 역사서인데 다소 황당무게한 내용도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약간이나마 생활상의 추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세의 역사는 '역사학 자체가 신학의 시녀'라 간주되었을 정도로, 철저히 기독교에 종속된 상태였다한다. 역시 종교와 학문간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던 듯 싶다. 고대 중세인들이 세계를 정말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았더라면,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실증주의 논리주의를 발견하게 된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인식의 전환이었을까? 실증주의에 기반한 서술방식이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도 상식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만약 고대인이나 중세인들이 현대의 역사책을 본다면 아마도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다소 황당무개하다고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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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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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이면서도 균형이 잡혀있는 서중석교수의 역사관은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해방 후 한반도의 민족국가건설과정에서 전개되었던 다양한 운동가운데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좌익과 우익의 협력에 의해 자주독립의 민족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 전망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좌익이나 우익 어느 한 쪽의 배타적인 정부수립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분단으로 귀결된 좌우의 대립상에 대해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우익계열의 분열정책은 더욱 반민족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좌익의 노선이 백퍼센트 올바르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가장 현명하고 민족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편은 좌우의 협력, 그 이상의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군정기에 있었던 여운형 김규식 중심의 좌우합작운동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성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만은 않고 있다. 미소군정의 진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순수한 힘 단결된 힘만으로도, 충분히 독립된 민주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우익과 미군정의 방해정책 그리고 좌익의 배타성에 의해 분단으로 초래되고 말았다. 통일의 한가닥 희망을 보여주었던 좌우합작운동의 실패는 우리의 역사에서 정말 아쉬운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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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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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감격! 진화론에 관련된 과학서적을 읽고서 이렇게 감동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마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클릭이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한이래, 이 책이야말로 유전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난해한 부분도 있었지만, 치밀한 실험에 의한 검증과 예리한 추리력으로서 이토록 놀라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유전자의 본성은 아주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기적인 유전자의 범주는 한 개체에 소속된 동일 유전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개체에 함유되었을 지라도 동일한 기원과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 역시 같은 범주로 포괄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도킨스는 이러한 몇가지의 단서를 근거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타적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동일한 속성을 가진 유전자의 번성을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이 이타적이어야만 유리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도킨스는 비둘기의 사례 혹은 전쟁 등과 같은 적절한 비유를 제시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저자의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된다해도 이 책의 위대함은 결코 반감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놀라운 추리력 그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이미 평판을 얻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격 한편에 씁쓸함이 남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이타성을 단지 이기적인 유전자의 본성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인간의 존엄과 신성성에 대해 진화론이 반기를 들고 있다할 지라도 정말 흥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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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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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역사의 가장 의미있는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문제로 고민하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려 고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단호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얼마전 시중에 범람했던 책들인 '()()역사 100장면'하는 식의 책들이 다분히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목적을 두고 선정적인 사건위주로 구성되었다면, 이 책은 철저한 실증과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깊이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절대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의 대중화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온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사실대로 쉽게 쓰는 서술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근현대역사의 의미있는 장면을 선정해서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의미있는 사건이란 좋든 나쁘든 미래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일제 강점시기를 예로 든다면, 우리민족을 규정하고 있는 분단현실에 일차적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현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투철한 역사관점과 인식에 근거하여 과거의 사실을 실증적으로 규명함과 동시에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통일과 같은 우리민족의 더나은 전망을 제시한다는 건 역사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에 틀림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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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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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전적으로 믿을만한 것이며, 진보하는 것이고 그 진보야말로 과거의 업적을 토대로 한다는 것 만큼이나 자명한 진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수 십년동안이나 머릿속에 쳐박혀 있던 편견에 다름아니었다. 하지만 그 편견은 너무도 믿을 만한 것이어서,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떨쳐내기 힘든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문명은 끊임 없이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것이 과학에 토대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진보적 과학관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아닌가?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그 진리에 대해 전혀 회의하고픈 충동이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상과학의 정립, 이후 소수의 반론이 제기되고 결국엔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게 되면서 과학의 혁명의 발생,동시에 기존의 정상과학이 새로운 과학으로 대체된다는 쿤의 학설은 너무도 놀랍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러한 형식적 반복이 계속 된다는 논리야말로 과학은 상대적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쿤은 대표적인 예로서 과학적 혁명과도 같았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들고 있다. 이 두가지 학설은 천동설과 뉴턴의 고전역학을 와해시킨 혁명적 이론이었는데 당시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한다.

과연 쿤의 논리가 정확하다면 오늘 날의 기술적 발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뉴튼의 고전역학이 부분적으로 부합되는 측면이 있었던 것처럼 자연과학에 기초한 공학의 발전 역시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자연과학적 세계관가 물질문명에서의 기술적 측면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괴리된 차원의 문제일까? 쿤의 훌륭한 학설과 논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들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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