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말한다 1
제주일보4.3취재반 / 전예원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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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폭발했던 사건의 진상이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 진실이 규명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좌익 공산주의자들과 폭도들의 폭동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힘들었던 것은 다분히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기인하고 있다. 즉 냉전시기 남북간의 대립상황 속에서 좌익주도의 대중적 항쟁은 공산주의의 폭동 정도로 왜곡되거나, 군경찰과 우익단체의 무자비한 진압은 체제의 수호를 위한 정당방위의 차원에서 옹호돼온 것이다.

그러나 남북화해의 무드가 시작되면서 제주 4.3사건의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반공주의 역사학이 극복됨과 동시에 진보적 실증주의적 소장학자들의 대두로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사건자체가 좌익주도로 전개되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억압돼온 제주도의 지역적 특수성, 군경찰과 우익단체들의 제주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 행동 따위가 복잡하게 얽혀 결국은 시민들 역시 좌익의 노선에 공감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익의 탄압이 강도를 더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남북현대사의 축도판이라 할 수 있다.

제민일보는 사건들의 편린을 수집하고 생존인물들의 증언을 녹취하는 등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바로 이 책 '4.3은 말한다'가 나오게 된 것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늦게나마 역사의 진실이 바로잡히고 피해주민들에 대한 배상이 가시화되었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점점 진보하게 있다고 생각되고, 역사의 진보가 통일을 향한 고난의 여정에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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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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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선생은 한국 진보진영의 버팀목으로 오랫동안 한국의 역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그의 역사의식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실증 즉 객관적 검증을 근거로 진보진영의 방향설정과 접목시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신독재 시절, 정권에 야합하지 않고 지조있는 처신을 보여온 행위는 역사학자로서의 실천적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책 역시 역사의 진보를 전제로 한국근대의 다양한 발전 방향을 - 비록 실패했을 지라도 - 추적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연구가 아닐까 한다.

이미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 대학생들의 역사학 텍스트로서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다는 점 등등이 이 책의 대중적 검증과 신뢰를 입증하지만, 더욱 중요한 가치는 올바른 역사관의 함양에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근대화는 다양한 분파에 의한 정치모델 도입의 각축장이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록 일제의 강점에 의해 그 모든 시도와 이상이 좌절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역사적 의의는 전혀 축소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패를 되새김으로써 미래를 향한 역사의 진보에 더나은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은 현재적 의미에서 곱씹어 보아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학 갑신정변 의병운동 계몽운동 등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절대권력에 대한 민중의 해방을 지향했던 한국근대의 민중운동의 양상은 그 후에 일어날 다양한 대중운동의 선차적 경험이자 근원적 힘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민중운동에 대한 다양한 양상을 고찰하고 더나은 이상을 제시으로써 통일시대의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진해야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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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 - 북한농업체제의 형성을 중심으로
김성보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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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김성보선생은 역사학계의 괄목할만한 북한학자이다. 북한의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반제반봉건 혁명의 성격을 띤 것으로, 2차대전 후 식민지 국가들의 해방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된 토지문제의 해결방식이었다. 그것은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국가에서 지주착취 문제의 해결을 위해 토지의 무상몰수와 무상분배 방식을 법제화한 형식이었다. 계급투쟁의 한 형식으로서 북한의 토지개혁은 기존의 착취관계를 타파하는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대다수의 빈농들이 중농이나 부농으로 상향조정될 정도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빈농의 대다수는 그대로 빈농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착취와 지주의 착취 등 봉건적 착취형식은 거의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한편 이러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보수적 학자들은 지주착취가 국가착취의 형태로 전환했다고 북한의 혁명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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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관계 1945-2000
이종석 지음 / 중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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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그동안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돼 왔다. 지리적 근접성과 유교 및 한자문화권에 공동으로 소속돼 있다는 문화적 유사성이 양국간의 심리적 거리를 단축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이 자본주의 체제를 대변하는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양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대만과는 외교관계가 지속되었지만, 체제가 다른 중국 본토는 우리의 인식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원함 속에서도 우리의 반 쪽인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동맹을 넘어 혈맹관계로까지 발전했다.

남북의 화해무드가 일기 시작하면서 공산된 현대중국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시대적 흐름아래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개방정책이라든지 중국시장의 잠재성 또한 그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자극해 왔다. 이러한 실리적인 관점이 중국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인 역사적 관계 즉 냉전 이후의 양국간 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이다.

1949년까지 계속된 중국의 내전기에 북한이 중국을 지원한 점, 한국전쟁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한 사실 등은 양국을 혈맹관계로까지 발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냉전적 반공관에 사로잡힌 전후세대에 의해 중국에 대한 남한의 역사서술이 많이 왜곡되어 왔지만, 이제는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저술로 왜곡된 중국관을 바로잡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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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밤 - 서양 중세 사람들은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장 베르동 지음, 이병욱 옮김 / 이학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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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밤이란 테마를 통해 중세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밤이란 긴 실타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때로는 긴장감을 조성하고 때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끔 조율한다. 이 작품은 서구에서 오래 전에 싹튼 미시사의 전형으로서, 너무도 사소한 밤(night)이란 소재를 통해 중세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셜록홈즈가 우연히 발견한 종이조각 - 아주 사소한 것 - 을 통해 사건을 실마리를 풀어나가듯,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또한 모렐리가 작품 속의 사소한 징후를 통해 작품의 진위를 감정하는 것도 동일한 방식이다. 장 베르동 역시 밤이란 일상의 소재를 통해 중세사회의 구조 및 중세인들의 인식구조 등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먼저 저자는 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로부터 접근한다. 즉 어둡고 불안하며 공포스러운 밤에 벌어지는 일탈현상인 폭력 절도 강도 강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예상할 수 있듯이, 다음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그러한 일탈현상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가의 문제이다. 중세인들이 어둠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어떤 조명술을 개발했으며 경비를 강화하고자하는 등의 인위적 시도들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들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저자는 밤의 공포에 대한 중세인들의 인위적 대응이 한계에 달하면서, 신에 의존하는 종교적 승화의 세련된 형태를 지향했다고 지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견지에서 그것은 몹시 비합리적인 방식이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중세인들의 의식구조 속에선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한다. 과학기술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밤의 공포에 체념하기 보단, 내일의 빛을 기다리며 신에게 의존하는 태도야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정전으로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는 현대인의 밤은, 과학기술에 의해서도 밤의 공포가 여전히 미해결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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