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키노도 출퇴근에 쫓기다보니 알라딘에 책 주문하는 거 외에는 들어오기가 쉽지 않네요

근데 저번에 한 이벤트가 저의 무성의함이어서인지 아무런 댓글이 없네요-.-;;

이벤트상품은 다음번으로 넘겨야 할 듯...상품이 넘 허접했나,,,

한분이라도 댓글을 달았더라면 전부 다 드릴려고 했는데.....

다음번에 어떻게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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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5-03-06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새각하실 필요없어요^^ 저의 잘못인걸요..다음번에 좋은 이벤트를 마련해야 겠네요^^;;
근데 요즘은 일요일 아니면 시간이 안나서 그게 문제네요.바빠서 좋긴 하다만 알라딘을 찿기가 쉽지 않네요.고마워용..효주님^^

야간비행 2005-03-06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하려고 했는데 막 개학하고 그러니까 집에 밤에 와서 잠자기 바빠가지구.. 컴퓨터도 맘대로 못해요..ㅠㅠ흐엥 키노님 죄송해요ㅠㅠ다음번엔 꼭 할께요......ㅠㅠ

키노 2005-03-1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주님 감사^^ 야간비행님도 고맙...
 
장르 만화의 세계 살림지식총서 120
박인하 지음 / 살림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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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서 지은이는" 장르 만화는 만화와 독자가 만나는 교집합에 위치한다.하지만 우리는 애써 이 장르 만화의 존재를 무시해왔다.장르의 다양한 의미와 만화에서 장르의 특별한 의미,그리고 장르 만화로 만화가 존재하며 재생산되는 모습을 정리하고 싶었다.이 책은 그 첫 걸음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문화의 다른 영역과 달리 만화에서 장르가 가지는 의미와 그러한 장르의 구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창작물들과 달리 우리는 만화에 대해서만 유독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그러한 시선의 변화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지은이는 이러한 만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과 그에 따른 만화에서의 장르의 무시는 만화라는 창작물이 하나의 문화적 매체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만화에서 장르는 수용자의 반복 체험을 통해 특정한 의미체계를 구성하고, 이 특정한 의미 체계는 수용자의 기대감을 만들어내고,장르 만화의 서스펜스를 즐기게 합니다.이처럼 장르 만화에서 만화를 소비하는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장르만화의 출발점이자 끝이고 장르만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인이 됩니다.

우리 만화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6,70년대의 어린이 잡지를 통한 만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80년대의 여러 종류의 만화잡지들이 생겨나면서 독자층도 연령대별로 확산되고 '만화도 사서 본다'는 식의 생각이 형성되면서 차츰 만화의 정착을 이루는가 싶더니만 도서대여점이 생겨나면서 한창 망울을 피우려던 만화시장은 또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고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점들은 장르만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지은이는 만화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들이 먼저 장르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연구를 통한 문제를 적시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다보니 장르만화는 불완전한 정착을 하게되고 이는 제작,판매,평가시스템의 왜곡을 낳게 하였으며 우리 만화의 유통,마케팅에서의 고질적인 병폐를 낳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화시장이 침체하게 된 원인의 선,후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만화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나 이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장르만화라는 것을 언급하기도 전에 우리 만화시장은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지은이의 말대로 무엇보다도 만화를 제작,유통시키는 쪽에서의 이러한 문제점들에대한 철저한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지 무조건 독자들에게 만화를 보아달라는 식의 감정적인 대응은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많지 않은 분량의 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르만화에 대한 지은이 나름대로의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진 독창적인 책으로 우리가 여태 간과하였던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다만 지면관계상 언급되는 만화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와 SF만화에 대한 많은 지면의 할애와 같은 지면 분배의 균형감각이 모자라는 듯합니다.아마 이는 이 책이 지은이의 원고를 초안으로해서 재작성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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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이 시작되자마자 세계 패션 업계는 떠들썩했다. 물론 마크 제이콥스가 새롭게 선보일 우아한 룩을 기대하는 많은 루이 비통 팬들의 광적인 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올해로 1백50주년을 맞이한 루이 비통이 과연 어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지에 세계인들의 촉각이 모아졌기 때문. 루이 비통을 사랑하는 만큼 패션 디자이너, 프레스, 패션 기업, 패션 피플,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올해는 그만큼 흥분되고 기대되는 해인가 보다. 1954년 처음 매장을 연 이후 전 세계에 3백20여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지금까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다양한 가방을 내놓은 루이 비통. 그들이 지켜온 장인정신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Father & son of Vuitton
'1854년에 설립된 파리의 트렁크 제조사, 루이 비통'. 파리 샹젤리제에 위치한 루이 비통 매장에 새겨진 이 문구가 바로 루이 비통의 시작을 말해준다. 1854년 처음 매장을 열고 1860년 파리 아니에르에 첫 작업장을 열 당시부터 루이 비통은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1821년 스위스 근처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14세가 되던 해 마들레인 근처에 위치한 포장 회사에 들어가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 무렵 유럽엔 철도가 건설되고 증기 기관차가 바람의 도움 없이도 뉴욕까지 횡단하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또한 마차에서 벗어나 자동차의 시대가 열리기를 고대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시간이 느리기만 했던 몇 년 전과 달리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경제라는 개념에 조금씩 눈을 떠가던 이 당시, 행운의 여신은 루이 비통의 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나폴레옹 3세의 황후가 된 유제니의 여행 가방을 꾸리는 큰 임무를 맡게 된 것만 봐도, 그리고 상류층의 트렌드 리더였던 그녀를 좇아 많은 부호들과 귀족들이 비통에게 새로운 트렁크를 주문하기에 바빴던 것만 봐도 그 당시 그는 매우 운 좋은 사내였다. 물론 밀려드는 주문으로 쉴 틈 없이 보낸 30대에 그는 결혼해 가족을 이루기도 했다. 루이 비통 부부는 성공적인 트렁크 사업으로 벤돔에서 멀지 않은 루 노브 데 카푸친느에 첫 매장을 오픈하고, 나무 틀로 짜인 트렁크에 가죽 대용의 유용한 방수 가공 천을 개발하는 등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1858년 쥐색의 고급스러운 트리아농 캔버스로 만들어진 트렁크가 탄생한다. 이 사각형의 트렁크는 지금도 아니에르 작업장에서 생산되는 비통의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전문적인 가방 브랜드라는 것이 생소하기만 했던 1880년대, 루이 비통은 카피를 막기 위해 베이지와 갈색이 교차하는 바둑판 모양의 다미에 캔버스를 고안하는데, 1896년 그의 아들 조르주 루이 비통이 별과 꽃, LV의 규칙적인 프린트가 가득한 모노그램을 개발한 걸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도 닮았다. 이들은 기술이 아닌 마음을 트렁크에 담았기 때문. 그러나 루이 비통의 영화도 잠시, 1870년 프랑스-트로이센 전쟁과 파리 혁명으로 루이 비통은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다시 출발점에 선 루이 비통 가문. 루이 비통 부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다시 도전했고, 앞으로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전쟁 후 수에즈 운하와 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탄생하고, 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한 루이 비통 부자는 이 시기에 여행에 유용한 의상 트렁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조르주 루이 비통은 16세부터 작업장에서 견습공으로 모든 과정을 배웠다), 옷걸이와 작은 서랍, 소품을 넣을 수 있도록 칸막이를 넣어 완성된 사각형의 의상 트렁크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어느 장소에서나 편하게 짐을 풀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완벽한 동행자였기에 루이비통 가문에 또 한번 영화를 안겨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루이 비통을 럭셔리 브랜드로 이끈 결정적인 진보는 그 후에 찾아왔다. 바로 루이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네 개의 꽃잎과 원, 마름모꼴의 별 모양(별 모양은 아버지 루이 비통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LV와 교차된다)을 프린트한 모노그램을 개발한 것. 루이 비통이 현재의 패션 제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모노그램 백 말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르주 루이 비통은 여행 가방에서 영역을 확대하여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백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24년 짐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기폴(Keepall)'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모노그램 캔버스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방수 처리된 모노그램 캔버스가 너무 단단했기 때문에 작은 사이즈로 만들기에는 실용적이지 않았다. 1959년 비통 3세인 가스통 루이 비통에 와서야 부드러운 모노그램 캔버스를 개발하여 작은 가방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지각은 대중의 감각이 변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행의 필요성이다. " 루이 비통이 여행에 동행할 수 있는 트렁크를 제작했듯이, 현재 비통가를 이끌고 있는 5대째 후계자 패트릭 루이 비통은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의 디자인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것이 루이 비통의 정신과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온 중요한 열쇠라고 말한다.

 
new century of Vuitton
1970년, 베이비 붐 세대들이 20대가 되어 주체성을 확립하게 된 이 시기는 더 이상 하이 클래스나 디자이너, 브랜드가 패션을 주도하던 룰이 지켜지지 않았다. 전적으로 패션은 개인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지고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었던 것. 이런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어릴 때 엄마가 들던 모노그램 백은 올드한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심벌처럼 여겨졌고, 신세대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갈망했다. 루이 비통은 이런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조금씩 추가했으나 베이지와 브라운의 딱딱한 디자인으로 신세대들의 감각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롭게 론칭한 브랜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루이 비통은 아시아라는 또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중에서도 매해 고도 성장을 거듭했던 일본은 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개척지로 여겨졌고, 외제라는 것이 신분 상승을 위한 표시기로 활용됐던 이 당시, 일본 분위기와 맞물려 루이 비통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또다시 성공을 예감했다. 심지어 1977년에는 일본에서 밀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서 론느 벨리에 있는 생 도나와 사라 두 곳에 새로운 작업장을 세울 정도. 우리나라 역시 일본 못지않게 많은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곳이어서 루이 비통의 성장은 다른 브랜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후 매장은 루이 비통의 발전과 함께 열두 개로 늘어났고, 새로운 디자인이 부재했던 루이 비통은 고객의 변화에 발맞춰 1985년 긴 골을 판 에피 라인과 어떤 프린트도 가미하지 않은 심플한 모양의 타이가 라인을 론칭했지만 침체되어 있던 루이 비통을 변화시키진 못했다. 결국 루이 비통은 1987년 모에 헤네시와 합병을 결정하고 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로 이름을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을 감행한다. 이때부터 LVMH로 이름을 바꾼 루이 비통은 예전의 영화를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1996년 모노그램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일곱 명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모노그램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핸드백을 디자인해줄 것을 의뢰한 루이 비통. 아젤딘 알라이야, 마놀로 블라닉, 로메오 질리, 헬무트 랑, 아이작 미즈라히, 시빌라,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로 구성된 선택 받은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발한 핸드백을 디자인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루이 비통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파리 센 강의 왼쪽에 위치한 상 저먼 데 프레를 바라보는 위치에 모노그램 1백 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다. 그러나 루이 비통이 현재의 지위를 탈환한 데는 마크 제이콥스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다. 1997년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된 LVMH는 21세기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을 얻게 됐고, 루이 비통은 1백50년 전의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며 과거와 교류하고 있다. 시간을 초월한 루이 비통의 정신과 앞을 내다보는 마크의 예리한 통찰력이 있기에 더 이상 루이 비통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출처;ⓒmarieclaire 글/김미숙(마리끌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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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2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님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텅빈 '타임 스퀘어'에 홀로 남은 톰 크루즈..이 영화는 이처럼 꿈과 현실을 오가며 극을

전개해나가는데 누구나가 한번쯤은 이런 꿈을 꾸죠^^;;

감 독
카메론 크로우 (Cameron Crowe)    

출 연
톰 크루즈 (Tom Cruise) .... 데이빗
페넬로페 크루즈 (Penelope Cruz) .... 소피아
커트 러셀 (Kurt Russell) .... 닥터 커티스
카메론 디아즈 (Cameron Diaz) .... 줄리
제이슨 리 (Jason Lee) .... 브라이언 셸비
자니 갈렉키 (Johnny Galecki) .... 피터
진 캐롤 (Jean Carol) .... 뉴욕의 여자
 
각 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Alejandro Amenabar)    
카메론 크로우 (Cameron Crowe)    
 
제 작
톰 크루즈 (Tom Cruise)    
폴라 와그너 (Paula Wagner)    
 
음 악
낸시 윌슨 (Nancy Wilson)    
 
촬 영
존 톨 (John Toll)    
 
편 집
조 헛싱 (Joe Hutshing)    
 
미 술
캐서린 하드윅 (Catherine Hardwi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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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가 헥토르에게 기어와 그의 다리를 잡았을때 파리스를 쫓아온 메넬라우스를

칼로 찌르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다분히 신중심의 영화라기보다는 가족중심의 이야기임

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후반부에 헥토르의 시신을 찿기위해 아킬레스를 찿아간 프리암이

그의 손에 입을 마추면서 "난 방금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했네. 난 내 아들을

죽인 자의 손에 입을 마추었지"라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강한 형제애와 부성애를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감 독
볼프강 페테르센 (Wolfgang Petersen)    
 
출 연
브래드 피트 (Brad Pitt) .... 아킬레스
에릭 바나 (Eric Banadinovich) .... 헥터
올란도 블룸 (Orlando Bloom) .... 파리스
다이앤 크루거 (Diane Kruger) .... 헬렌
숀 빈 (Sean Bean) .... 오디세우스
브라이언 콕스 (Brian Cox) .... 아가멤논
피터 오툴 (Peter O'Toole) .... 프리암
브렌단 글리슨 (Brendan Gleeson) .... 메넬라우스
새프론 버로즈 (Saffron Burrows) .... 안드로마체
줄리 크리스티 (Julie Christie) .... 세티스
줄리안 글로버 (Julian Glover) .... 트리오파스
 
각 본
데이빗 베니오프 (David Benioff)    
 
제 작
게일 캐츠 (Gail Katz)    
볼프강 페테르센 (Wolfgang Petersen)    
콜린 윌슨 (Colin Wilson)    
 
음 악
가브리엘 야레 (Gabriel Yared)    
제임스 호너 (James Horner)    
 
촬 영
로저 프랫 (Roger Pratt)    
 
미 술
나이겔 펠프스 (Nigel Phelps)    
 
기 획
브루스 버먼 (Bruce Berman)  
 
특수효과
닉 데이비스 (Nick Davis) 
 
의상
봅 링우드 (Bob Ringwood)

편집
피터 호네스 (Peter Ho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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