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비디오 찾아 황학동에 가다
사라져가는 그 공간에 가다
2006.10.02 / 허지웅 기자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보고, 청계천 황학동이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전국에 유통되는 비디오가 한 번쯤 반드시 거쳐 가야했던 부가판권시장의 황금어장 황학동. 옛날 비디오를 찾아 그곳을 다시 찾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청계천 황학동은, 더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니면 순서를 바꿔 가을 겨울 봄 여름 언제 찾아가더라도 정수리와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로 어김없이 차오르던 찝찔한 땀내가 기억 너머에서 불쑥 떠올랐다. 이 정체불명의 더위에 대해선 TV프로에 출연해 청계천 복원사업이 서울 도심의 열섬현상을 없애줄 거라며 적외선 지도와 도표를 곁들어 설명하던 안경잡이 박사조차 끝내 설명해주지 못했다. 번번이 거리 위에 깔려 있던 차분한 먼지안개와 노란색 셀로판지를 덧대어놓은 것 같은 풍경까지 시야에 들어오자 내가 비로소 황학동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언뜻 둘러본 3년 만의 황학동은, 상당히 정돈됐다고나 할까. 어떤 록 스타를 무척이나 닮았던 시장의 선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가로 잡히고 세로 잡히고 칸을 나누고 줄을 그어 '개선'된 청계천의 도로 한 가운데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어 인조인간 로봇 마징가Z를 연상케 하는 12만 톤 검은색 물길이 관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마징가Z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150마력짜리 모터펌프 4대가 없으면 주저앉는다 했다. 인생을 통틀어 이곳이 아니면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진귀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손수레 가득 싣고 행인을 유혹했던 노점상들의 행렬은 공룡처럼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당황스런 3년 만의 재회

풍경이야 어찌됐든, 오늘 내 목적은 추억의 옛날 비디오를 찾는 거다. 한때는 하루에 세 번 찾을 정도로 안방 같았던 황학동을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는, 어쩔 수 없는 다소간의 죄의식을 억누르며 오래 전의 단골이었던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2층에 위치한 그 비디오 가게는 아직 밀레니엄이 도래하기 전 시가 5만 원 상당의 희귀 비디오였던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0, 강범구)를 단돈 3천 원에 속여 산 기억 탓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황학동엔 그런 낭만이 있었다. ‘3일 전에 죽었던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문구로 기억되는 <괴시>는, 굳이 상도를 어겨가며 어렵게 구했던 과정만큼 즐거운 영화는 아니었다. 전혀 중국사람 같지 않은 중국배우와 전혀 한국사람 같지 않은 한국배우가 등장해 해충을 없애는 첨단 과학기계가 시체를 되살려내는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는데, 어째 뭔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이다 싶었더니 <Let Sleeping Corpses Lie>(1974, 조지 그루)의 토시 하나 안 틀린 완전 표절작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 지난 장마 동안 단 한 번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짙은 곰팡내와 피사의 사탑 마냥 쌓여 있어 기침만 해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비디오테이프 무더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내일 당장 홍수가 밀어닥치는데 방주에 시동 걸 열쇠를 잃어버린 노아의 눈빛을 한 사장이 나를 발견했다. 한때의 단골을 전혀 기억 못하는 눈초리다. 좀 섭섭한데. “황학동 비디오 시장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는데요, 잠깐 말씀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뭐야 이 자식, 하는 눈초리로. “망했어. 다 망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런 소리 할 거면 나가. 요 옆 가게도 있고 저 옆 건물 1층에도 있는데 왜 2층까지 기어 올라와 지랄이야. 심난해 죽겠는데.” 순간 얼어붙었다. 어마마, 티끌만치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 창피한 일이지만 눈물까지 찔끔 지려버리고 말았다.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와 거리 위에 우두커니 섰다. 이토록 격렬한 반응이라니. 어쩌면 <괴시>를 헐값에 산 것에 대한 때늦은 천벌인지도 몰라. 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늘이라도 우러러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TV광고로 기억되는 주상복합단지의 반쯤 만들어진 마천루 그룹이 황학동 하늘 구석구석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한창 공사 중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물 한 가운데에는 사기분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후 적법한 분양공고가 있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부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난 언제쯤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나. 그러고 보면 죽네 사네 하면서도 아파트 한 채씩은 꼭 가지고 있단 말야. 판교 신도시 2차 분양 이후에는 용인이 뜬다는군. 은평 뉴타운이 민간 분양보다 평당 95만 원이 비싸다던데, 그럼 서민은 다 죽으란 말이냐, 야 다 나와, 뭐 이런 어른스런 생각을 거듭하다 마주오던 행인의 어깨에 밀려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한민국 모든 비디오는 황학동을 거쳤다

복원된 청계천 물길 주변의 난간에 기대 눈앞에 펼쳐진 상가들을 바라봤다. 청계천 황학동 시장은 일반적으로 황학동 삼일 아파트 13동부터 24동까지 펼쳐진 상가 건물들과 그 주변 풍물시장을 일컫는다. 아파트는 뭐고 상가는 또 뭐냐고 묻고 싶겠지만 아파트인 동시에 상가 건물로 허가를 받은 터, 그러니까 여기 삼일 아파트나 종로 3가 세운상가, 낙원상가가 모두 주상복합건물의 원조인 셈이다. 삼일 아파트 머리 꼭대기로 닭 벼슬처럼 치솟아 오른 새 주상복합단지의 건설현장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황학동 시장은 여러 가지 중고물품과 도매상권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떨쳐왔다. 1990년대 중반, 주말이면 진귀한 구경을 하기 위해 서울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노점상과 상가들 모두 인파로 몸살을 앓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황학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어쨌든 복잡한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지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황학동 시장이라 하면 그건 그저 ‘비디오 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소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황학동 비디오 시장은 한국 영상물 부가판권 상권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비디오는 그 삶이 계속되는 한 반드시 황학동을 한 번쯤 거쳐야했다. 날마다 새로 등장하는 신간 비디오들이 황학동에서 전국 비디오 대여점으로 뻗어나가고, 몰락한 대여점의 중고 비디오들이 황학동으로 돌아와 헐값에 다시 대여점과 개인 고객에게 팔려나간다. 바로 이 중고 비디오야말로 황학동의 묘미라고나 할까, 혈혈단신 서울에 똬리를 틀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 나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중고 비디오를 찾아 황학동을 찾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비디오 대여점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시시껄렁한 영화들을 여의도 공원 비둘기만큼이나 발에 채이게 발견할 수 있는 황학동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잭 스패로우의 카리브 해였다. 고전 한국영화나 B급 공포영화, 고전 한국공포영화면 더 좋고, 그런 필살의 비디오들을 찾아 먹색 봉지에 쳐 넣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개운했으며 어떤 시리얼을 먹지 않아도 호랑이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그 시리얼을 먹으면 성욕이 감퇴되고 정자 수가 준다는데, 진짜일까? 아무튼 그렇게 비디오를 사들고 오면 어김없이 피시통신에 접속해 “나 오늘 이런 저런 비디오 구했다, 부럽지?” 따위의 글을 올려놓고 저 혼자 좋아 킥킥대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나만큼 지독히 할 일 없는 인사가 답글을 달아 축하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추억은 그만두고 일 해야지, 하는 맘에 발을 뗐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황학동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비디오 상점 ‘비디오 여행’으로 향했다. 삼일 아파트 18동 2층에 자리한 가게다.

“황학동 장사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비디오 여행’의 남진수 소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살가운 반응에 코끝이 시큰하다. 먼저 간 가게에서는 문전박대에 욕만 듣고 쫓겨나왔다 하니 “그런 건 기자님이 이해해줘야지. 진짜로 망했는데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 그럼.” 하신다. 비디오 여행은 비슷한 이름의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는 관련이 없다. 198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됐다. 비디오테이프 도소매 및 비디오 대여점 신규개업, 폐업관리로 시작해 2000년 들어서부터는 DVD 총판까지 병행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청계천 최고 아니냐고 물었더니 손 사레를 치며 대한민국 최고라고 강조하신다. 그냥 자랑은 아닌 것이,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손님들이 꽤나 드나들며 불황을 무색케 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에 비디오 가게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하고 묻자 팔짱을 끼며 자못 심각하게 말씀하시길 “처음엔 한 30여 군데 넘게 있었는데 IMF 지나면서 20개로 줄어들고, 이번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노점상들이 전부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쫓겨나면서 또 반으로 줄어버렸어. 그나마 신 프로 다루는 매장은 5군데 정도밖에 안 돼. 복개작업 이후에 공기는 좀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럼 뭐하나. 장사치들이 장사가 잘 돼야 행복한 거지. 여기가 도깨비 풍물시장이라는 게 다 노점상들이 있어서 가능한 감투였는데, 이제는 노점상 구경하러 왔다 비디오 구입해가는 손님들도 없고, 그저 주말에 청계천 구경하러 왔다 곱창이나 먹고 돌아가는 가족들밖에 없어. 그래서 요 앞에 먹자골목만 성황이지 다른 데는 업종 안 가리고 전부 망했어.”

유사 이래 황학동 시장을 지배해온 것은 돈, 시장논리였다.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따라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 누구네 아들, 누구네 조카, 사돈 팔촌의 조카의 동서,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 출신, 그리고 그 출신의 아들과 친구들이 주름잡는 한국 주류사회와는 달리 황학동만큼은 돈의 논리로 일어서고 쓰러지고 재기해왔다. 그랬던 황학동이 이젠 개발논리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제는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생겼다. 황학동 시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모조리 다 철거될 예정이다. “우리 머리 위로 주상복합건물 짓고 있잖아. 개천복원에 방해돼 노점상들 내보내고, 이젠 우리 차례인 거지. 아직 시에서 공식적으로 통보가 내려온 건 아닌데, 조합 쪽으로 해서 다 얘기가 전달됐어. 청계천에서 장사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뭐.”

삶과 생존의 문제가 왔다갔다하는 와중에 옛날 비디오 찾는 미션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해, 라지만 결국 한쪽 구석에서 몇 개 테이프를 골라내고 말았다. <고무인간의 최후>와 <네온 익스프레스> <악마의 씨> 그리고 <마견>. 한국 비디오업계의 눈부신 작명 철학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 피터 잭슨의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를 <고무인간의 최후>로,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악마의 씨>로, 그리고 사무엘 풀러의 <화이트 독>을 <마견>으로 바꿔 대중성과 오락성을 고루 겸비한 제목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묻는다면 <화이트 독>을 곧이곧대로 <백구>라고 했을 때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긴장감이 떨어졌을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배드 테이스트>라고 하면 언뜻 감이 안 오지만 <고무인간의 최후>라 했을 때는 도대체 고무인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매우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으로 인해 비디오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피터 잭슨은 한국 비디오업계에 감사해야 한다. 싸구려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잘 만든 좀비영화 <네온 익스프레스>는 <네온 매니악>(1996, 조셉 맨자인)의 제목을 좀 더 그럴싸하게 바꿔놓은 것인데,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하물며 한국시장에 버젓이 출시돼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한국 비디오 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랄까.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지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보는 비디오들

동대문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오는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삼일아파트 15동 2층의 ‘젊은 남자’. 이 비디오 가게는 과거 김기영의 <화녀 82'>를 구입한 곳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랑 같이 간 사내는 보지도 않을 비디오 10편을 4천 원에 구입해 녹화용으로 쓰며 “이것이 IMF 시대를 살아가는 사나이의 진정한 삶의 지혜”라고 자랑했었다. 내부 정경은 진열대의 비디오와 포스터들이 좀 더 낡고 희미해졌음을 빼면 3년 전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마지막으로 손님이 드나든 지 꽤 됐음을 알 수 있어 사장님에게 말을 붙이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결국 애꿎은 <총알탄 사나이>를 집어 들어 1천 원을 건네며 겨우 몇 마디 나눠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 망했다”는 반종섭 사장님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단다. “올해까지 상가들을 다 비우고 나가야 하는데, 장지동으로 옮겨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세금자료나 기타 여러 가지를 종합해 시 차원에서 결정한 소수의 선택받은 인원들이 갈 수 있는 거잖아. 아직 장지동에 상가건축도 안 들어갔는데 뭐. 들어가도 문제인 게, 청계천처럼 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장사가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성남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지동까지 누가 비디오를 사러 가나. 이젠 전부 끝난 거지. 끝.” 사장님은 아무래도 몇 편 더 샀으면 하는 눈치지만, 그냥 가게를 빠져나왔다.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느릿하게 짓눌린 과거의 공기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린 과거를 목격하게 되면 사람은 흔히 도망치기 마련이다. 딱히 비겁해서라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영화가 많기로 유명한 삼일 아파트 21동 1층의 ‘무비월드’를 찾았다. 한쪽 구석의 최신영화 DVD를 제외하면 매장 사 면과 가운데 선반 모두가 비디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가게다. 한국 고전영화를 찾는다면 황학동 무비월드나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지하 ‘청춘극장’을 찾는 것이 별 대단스럽지도 않은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임강우 사장님은 “손님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고전 한국영화를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며 과거의 명성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상식임을 확인시켰다. 주로 40, 50대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이곳도 과거만큼 많은 고전영화를 보유하고 있진 않다. 이젠 더 이상 한국 고전영화 비디오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중고도 나오질 않다보니 여기 있는 비디오들이 다 팔리고 나면 그걸로 끝인 거야. 지금 보고 있는 그 비디오들이 기자선생 인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들일 수도 있어.”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와 신상옥의 <여수 407호>, 장일호의 <성형미인>, 그리고 전조명의 <서산대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형미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성형미인>이나 박암의 대머리가 눈에 선한 <서산대사>의 비디오는 다른 데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쇠사슬을 끊어라> 같은 경우는 비디오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작품이다. 황학동 시장이 한참 잘 나갔던 90년대까지만 해도 10만 원은 족히 받았을 이 비디오는 현재 4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일사-나치 친위대의 색녀> 류의 컨셉과 정통 탈옥영화의 장르적 특성, 그리고 한국적 신파 감성이 묘하게 버무려진 <여수 407호>는 곰털처럼 많은 신상옥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나 같은 어둠의 아이들이 특별히 더 좋아했던 작품이다. 한쪽에서 왕지징의 <헬로강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홍콩의 유관위 류의 강시영화보다 대만의 헬로강시 시리즈를 더 좋아했던 나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우와! 라든가 이햐! 라든가 오호! 라든가, 뭐 이런 탄성들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이 비디오들이 전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져버리고 말았다. 왜 지상 위에 모든 것들은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기 전에 한 발 먼저 사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아 이 짓궂은 인생이란. 어리석은 인간이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총체

“다운로드족들을 모조리 감방에 집어 쳐넣어야” “높은 가격에 DVD 출시해 판매율 낮추고, 그나마 수시로 할인 행사하는 바람에 소비자 우롱하는 DVD 제작사는 공중 폭파시켜야” “13장을 3천 원에 파는 이 따위 비디오들, 차라리 모조리 불 싸질러 버려야지”처럼 어느 정도 과격하거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외침도 있었지만, 3년 만에 찾은 황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차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뭔가 부조리하다는, 개발도 좋고 발전도 좋지만 그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디서 개발하고 발전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없다. 그 스스로가 20,30년 동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아왔으니 니들이 정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그러마하는 것일까. 황학동에서 동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길,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사라져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황학동 같은 공간은 세상사에 너무 밝아져버린 나 같은 인간에게 잠시 잠깐의 추억과 애잔함, 애틋함 따위를 안겨주고 사라질 만큼 너그럽거나 유약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터질 듯이 차올랐다.

다시 황학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삼일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색이 그대로 드러난 구닥다리 아파트의 고르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소름>에서 광태가 살던 미금 아파트가 떠올랐다. 그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초현실적이다. 옥상에 올라 황학동을 바라보니 저 멀리 종로의 빌딩숲에서부터 여기 황학동 상가를 양분 삼아 그 위로 뻗어 자란 듯한 주상복합빌딩 공사현장까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그건 현실이었다. 그제야 황학동에 올 때마다 느꼈던 사시사철 더위의 원인을 깨달았다. 사람 표정보다 더 빨리 그 모습을 바꾸는 서울, 그 서울의 한복판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우직한 표정으로 잡아 쥐고 지켜온 삶의 힘. 난 그 위대한 힘의 열기를 느꼈던 것이다. 황학동이 그립다.

사진ㅣ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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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승부터 발랄까지, 추석음악 7선
2006.09.29 / 김영 기자 

매년 돌아오는 긴 연휴. 한편 즐겁지만 한편으론 지루하다. 책과 만화, 영화와 TV 특별 프로그램을 선별해 ‘추석나기 올가이드’라는 이름으로 반복 소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많은 장르의 아이템 중에서 꽉꽉 막히는 도로 위에서든 집안 방구석에 틀어 박혀서든 간편히 즐길 수 있는 것은 역시 음악. 며칠 전 발매된 따끈한 신보부터 몇 달 전 깜빡 놓치고 지나간 음반까지, 올해 발매된 숱한 음반을 뒤져봤다.

추석용 음반을 떠올릴 때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고민에 부딪힌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의 특성상 말랑말랑 다정한 선율을 고를 것인가, 무료한 나날을 충전시켜줄 상큼하고 신나는 리듬을 선택할 것인가. 팻 매스니와 브래드 멜다우의 듀오 앨범 <Matheney Mehldau>는 그런 고민과 상관없이 무조건 추천할 만한 음악이다. 재즈의 깊이를 껴안는 동시에 재즈의 자유로움을 누릴 줄 아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두 연주자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굳이 음색을 가르자면 가을용 서정에 가까울 터. 그러나 연륜과 패기를 자랑하는 이 두 명의 재즈 뮤지션은, 센티멘털리즘으로 치장된 달콤한 재즈와는 거리가 멀다. 팻 매스니 특유의 촉촉한 기타와 브래드 멜다우 특유의 부드러운 연주가 어우러지는 장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즈에 뿌리를 두었으되 장르를 훌훌 벗어나 제 색깔을 찾아가는 또 한 명의 뮤지션이 있다. 상반기를 겨우 넘긴 지금이지만 성급함을 무릅쓰고 ‘올해의 목소리’로 손꼽을 만한 코린 베일리 래의 동명 앨범 <Corinne Bailey Rae>. 데뷔 앨범 한 장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다. ‘소울풀한 노라 존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노라 존스와의 비교마저 찬사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역량 있는 보컬이다. 재즈와 포크, R&B와 소울, 팝의 감성을 황금비율로 섞은 음악은 기교를 줄이고 서툰 모방을 없앤 그녀만의 목소리에 썩 잘 어울린다. 대중성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다들 말은 쉽게 하지만 쉽게 이르지는 못하는 경지에 이 소녀는 이미 올라 있다. 더구나 가을, 재즈 보컬이 절로 그리워지는 철이다.

그러나 가을 서정이 아무리 짙어져도, 올해 한국의 음악팬들은 여름의 흥분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8월 열렸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처음 만나는 3일간의 잔치를 통해 지우기 힘든 도취를 선사해줬다. 헤드라이너로 나섰던 스트록스와 프란츠 퍼디난드, 블랙 아이드 피스의 공연도 훌륭했지만 뜻밖의 발견은 세컨트 스테이지에 섰던 제임스 므라즈. 페스티벌 덕분에 4년 전 나왔던 제임스 므라즈의 데뷔 앨범 <Waiting for My Rocket to Come>까지 올해 라이선스 발매됐다. 미국식 록을 토대로 삼긴 했으나 이 청년의 머릿속에는 음악의 장르 구분이라는 게 본디 없어 보인다. 포크와 재즈, 팝과 힙합, 일렉트로니카에 보사노바까지 왕성히 끌어들이는 혼성 모험가. 그런데도 가사는 어찌나 애틋하게 가슴을 저며 오는지, 그의 방향을 가늠할 길이 없다. 므라즈의 이름이 각인됐다면, 작년에 순서를 바꿔 국내 발매됐던 2집 <Mr. A-Z>까지 챙겨 보는 것도 좋겠다.

펜타포트의 추억이라면 플라시보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여름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그들의 공연이 훌륭했는지 아닌지, 그런 건 사실 중요치 않다. 무려 10년을 기다렸다. 플라시보는 동명 데뷔 앨범 <Placebo>(1996)로 단숨에 영국음악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10년 동안 천천히 세계를 중독 시키며 퇴폐와 상실의 늪으로 청자들을 이끌었다. 그런 카리스마를 확인하는 자리는 거기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억을 지우기 않기 위해, 또는 그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올해 봄 발매된 플라시보의 <Meds>를 더욱 곱씹는다. 10년 동안 잘 숙성된 플라시보표 음악이 가득하다. 추석 직전에는 10주년 기념 앨범 또한 발매를 계획하고 있다 전한다.

하지만 10년쯤의 음악 인생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가 있다. 반세기를 음악과 함께 살아온 드문 뮤지션들에게 음악은 곧 삶이다. 노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월드뮤직의 대모와 대부인 세자리아 에보라와 베보 발데스만큼 음악의 변방에서 제 힘으로 선, 힘 있는 뮤지션은 드물다. 두 거장은 모두 올해 모두 새 앨범을 발표했다. 매번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그들의 신보를 기다리지만, 그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젊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카보 베르데 출신으로, 한 많은 나라와 한 많은 생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녹여내는 노년의 뮤지션 세자리아 에보라의 <Rogamar>는 애수와 희망이 교차하는 바닷가의 노래를 들려준다. 들을 때마다 눈이 젖고 다시 들을 때에는 마음이 출렁인다. 쿠바음악의 생생한 전설 베보 발데스는 이제 나이가 아흔에 가깝다. 평생을 피아니스트로 살아왔지만 피아노 솔로 앨범은 그조차도 이번이 처음. 베보 발데스의 <Bebo>는 쿠바 재즈의 고전들을 가져오면서 쿠바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17개의 트랙이 하나같이 빛나고 모두가 정교한 보석과 같다. 월드뮤직이 낯선 이라도, 이들을 놓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컴필레이션 앨범 <아가미>는 올해 발매된 앨범 중, 가장 훌륭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장 새롭고 주목할 만한 시도다. 젊은 뮤지션 정재일이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은, 2000년대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튀어 나온 민중가요 모음집이다. 70, 80년대의 한 많은 시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피 끓는 노래들이 지금, 한대수, 이적, 윈디시티, 스윗소로우, 전제덕 등 다양한 뮤지션들의 입을 통해 불려진다. 참여한 이에 따라 곡에 따라 편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돌출 행동이 많아질수록 우리 음악계도 풍성해질 수 있다. 추석과 민중가요의 조합이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징검다리 휴일이 끼어 어느 때보다 기나긴 연휴라면 고정관념을 깨볼 여유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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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5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 철학자이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사색하는 것을 그치지 않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스토아 철학은 '자연과 일치하는 생활'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시조일관 신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이 명상록은 다른 책들과 달리 자신에 대한 성찰기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면에서는 너무나 숙명론적이고 퇴폐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이는 다른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닌만큼 자신에 대해 그만큼 혹독하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기의 필사본에는‘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라는 그리스어 제목이 붙여져 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인만큼 처음부터 목차 순서에 따라 굳이 읽을 필요없이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책을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대제국의 황제이면서도 언제나 사색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심성을 닦은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네 위정자들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우리들 개개인에게도 아우렐리우스가 던지는 물음과 대답은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온다. 생을 가볍게 볼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견딜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 것은 여하한 것도 인간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야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미덕을 타인의 활동에서 찾으려 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각 속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이해깊은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찾으려 하는 법이다."라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자신에게 닥친 일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낙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생활하여야 한다는 당연명제의 울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하게 들려온다.

여타의 다른 철학자들이 어려운 말을 빌어 훈계조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반면,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아주 진솔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오늘날과 같은 고도 물질문명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의 글들이 읽혀지고 우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한다.

힘들거나 지치거나 아니면 잠시 나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든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어도 좋을 살아있는 지침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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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 레이더 2 : 판도라의 상자 - [할인행사]
얀 드봉 감독, 안젤리나 졸리 출연 / 엔터원 / 2007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툼 레이더에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디오게임에서 보여주는 라라와 안젤리나 졸리가 거의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에 부응하여 안젤리나 졸리는 여성판 인디아나 존스의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하였다(물론 다소 과장된 듯한 몸짓과 표정연기는 흠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말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특유의 관능미와 액션으로 스크린을 압도하여 관객들의 넋을 빼놓은지 얼마되지 않아 또 다시 2탄인 판도라의 상자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주인공인 라라역의 안젤리나 졸리를 제외하고는 감독도 얀 드봉으로 교체되는 등 1편과는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려는 제작사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1편에서의 사이먼 웨스트와 달리 얀 드봉은 좀 더 장대한 스케일과 액션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영국과 중국, 아프리카의 케냐 등을 종횡무진하며 고난도의 액션을 보여준다.

또 하나 2편에서는 새로운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그건 다름아닌 라라의 로맨스를 곁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밀정보국 요원이었다가 배신 행위로 구금생활을 하는 옛 연인 테리(제럴드 버틀러)를 등장시켜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안젤리나 졸리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의 전개상 조금은 어색하다.

액션 블록버스터답게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들의 눈을 잡아두기 위해 쉼없이 액션을 펼친다. 하지만 그 액션씬들이 특별히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파편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스토리 구조상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안젤리나 졸리가 가진 섹시미를 부각시키다 보니 주인공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연민이나 애착이나 고뇌는 볼 수 없다. 다만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자체가 가지는 미덕에 가장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무슨 고차원적인 철학을 읊으려한다면 시간을 들여가며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라고 무조건 철학적이거나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뤼미에르가 영화를 제일 처음 만들었을때도 SF가 아니었던가^^;;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즐거우면 충분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려는 얀 드봉 감독의 연출력과 안젤리나 졸리의 건강미가 영화적인 흠이 있지만 눈요기거리로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최근에 만들어진 타이틀이라 그런지 화질이나 사운드는 액션씬을 즐기기에 더없이 훌륭하며, 서플도 영화적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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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소폰의 거인, 존 콜트레인 대표작 10선

1967년, 4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색소폰의 거인 존 콜트레인은 재즈사가 기억하는 대가들 중 하나다. 1955년,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멤버로 가입한 존 콜트레인은 주류 재즈 무대에 등장하며 얼마 후에 맞게 될 무한한 비상을 위한 치열한 연주 내공을 쌓아간다.

그로부터 10년, 존 콜트레인은 짧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화로 남게 된다. 쉬츠 오브 사운드(Sheets of sound)라 명명된 스피드와 테크닉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 연주 기법, 재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놓은 그의 클래식 쿼텟 (Classic Quartet) 을 통해 존 콜트레인은 모던재즈의 가장 찬란한 분수령을 일궜다.

이런 가공할만한 음악적 성과에 더해 존 콜트레인은 '재즈 정신'(Jazz Spirit)의 표상이기도 했다. 1960년대 초, 공민권 운동으로 대변되는 흑인 민중들의 아우성을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승화해 낸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1964) 은 무한 자유의 예술 재즈를 통해 억압과 차별로 얼룩진 흑인 사회에 찬란한 서광이 되 주었다.

올해 9월 23일은 존 콜트레인 탄생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짧지만 굵었던 그의 발자취를 지금 소개하는 10장의 대표작을 통해 찬찬히 음미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한다.



1. Lush life(1957) -Fantasy/Prestige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늘을 벗어난 존 콜트레인의 독자적인 음악성이 감지되는 작품. 유창하고도 감성 짙은 테너 색소폰의 울림을 선사한 앨범은 발라드 연주 'Like some in love' , 'Lush Life'로 모던 재즈사의 위대한 출발을 감행한다.




2. Blue Train (1957) -Blue Note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그의 유일한 작품이자 모던 재즈계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칭송되는 작품. 진한 여운을 발하는 대곡 'Blue Train' 하나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빛난다. 50년대 후반, 주류 재즈계의 콜트레인 돌풍을 예고한 앨범 'Blue Train'은 향후 10년간 이어질 존 콜트레인 신화의 신호탄이었다.




3. Soultrane(1958)-Fantasy/Prestige

국내에 처음으로 라이센스로 소개된 콜트레인의 앨범. 'Lush life'에 이어 레드 갈란드(p)와 폴 체임버스(b)의 공력이 진가를 발휘하며 하드 밥의 열기를 뿜어낸다. 종횡무진 리듬의 생기로 넘실대는 'Russian Lullaby', 'You say you care' , 사랑스런 발라드 연주 'Theme for Ernie'가 귀에 아른거린다.




4. Giant Steps(1959)-Antlantic

같은 해 마일스 데이비스가 발표한 문제작 'Kind of Blue'에 비견될 모던 재즈의 위대한 발자취다. 파격적인 대우로 소속사를 아틀랜틱으로 옮긴 존은 코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파격적인 즉흥연주를 창조해낸다. 타이틀 곡 'Giant steps'는 코드를 여러 겹 쌓아올린듯한 음의 장관을 그려낸 존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며 훗날 음의 덩어리, 이름 하여 '쉬츠 오브 사운드(Sheets of sound)' 로 명명된다.


5. My favorite thing(1960)-Atlantic

대중적인 레퍼토리로 포진되며 지금껏 가장 사랑받는 존의 걸작. 그가 작곡한 아름다운 발라드 연주 'Everytime we say goodbye'가 주목받았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소개된 사랑스런 연주 'My favorite thing'은 싱글로도 커팅되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도 올린다. 당시로선 5만장이란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은 그가 본격적으로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를 소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6. Avant-Garde(with Don Cherry; 1960)-Atlantic

프리재즈 운동의 기수였던 트럼펫터 돈 체리와 협연한 존 콜트레인의 프리 재즈 신고작. 모던 재즈계의 파란을 일으킨 색소폰주자 오넷 콜먼과 그의 친구들을 향한 오마주격인 이 작품은 향후 프리-아방가르드로 변모해 갈 그의 음악성을 예고해줬다. 앨범은 대중성 부재라는 취약성으로 인해 녹음된 지 6년이 지난 1966년에서야 발매됐다.



7. Afric/Brass(1961)-Impulse!

맥코이 타이너(p), 엘빈 존슨(dr), 지미 개리슨(b)로 구성된 존 콜트레인 클래식 쿼텟(Classic Quartet)의 실체를 드러낸 임펄스! 레이블 데뷔작. 재즈야말로 흑인성의 진정한 발현이란 나름의 고민을 야심차게 표출한 앨범은 아프리카 리듬과 인도 라가 선법을 소개하며 이전 그의 작품서 접할 수 없었던 실험적 사운드로 가득하다. 다양한 관악기가 이합 집산되며 장엄한 스펙터클을 발하는 'Greensleeves'는 앨범 중 단연 백미다.


8. John Coltrane & Duke Ellington(1962)-Impulse!

재즈 스탠더드 본연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킨 걸작. 거장의 반열에 등재된 듀크 엘링턴과 젊은 대가 존 콜트레인의 협연은 'In a sentimental mood'를 통해 재즈사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승화된다.





9.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1962)-Impulse!

재즈 보컬리스트와 협연으로 꾸며진 그의 유일한 작품. 크루너(Crooner)의 대사 자니 하트만과의 만남은 재즈 발라드 연주의 전형을 제시했다. 'My one & only love', 'Autumn Serenade'등 포근하게 감싸는 가을빛 재즈 발라드의 진수를 담은 존의 히트 앨범 중 하나.




10. A Love Supremes(1964)-Impulse!

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재즈로 구현한 존 콜트레인의 음악성의 분수령. 아울러 공민권 운동을 통한 흑인 사회의 아우성을 표출한 4부작 컨셉 앨범. 재즈를 통해 흑인 음악의 본령 가스펠의 심오함을 담아내는 'A love Supremes'는 재즈의 영역을 뛰어 넘어 아프로 아메리칸 뮤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추대되고 있다.



  2006/09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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