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언제나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새벽같이 열람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러왔다. 참고서가 아닌 책을 보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주객전도의 상황. ‘공부방’이 아닌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규모는 작지만, 특별한 다섯곳의 도서관을 찾아갔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도자기를 굽고, 공원을 산책하며, 만화책에 파묻힐 수 있는 곳.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도약 중인 신나는 도서관, 즐거운 도서관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책 테마파크

책을 들고, 미술품 한번 보고, 숲 향기 한번 마시고

이용시간: 10: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분당선 서현역에서 내려 119, 1500-2, 1005-5, 3, 22, 17, 3-1번 버스 이용
이용문의: 031-708-3588, www.snart.or.kr

겨울의 공원은 소슬하다. 잎을 떨군 나무들, 차갑게 굳어진 흙바닥은 가슴속까지 시리게 만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1월의 주말, 분당 율동공원의 공기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뽀얀 입김으로 가득하다. 손을 꼭 잡은 연인에서 느긋하게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까지 방문객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공원 속 공원이 있다. 책 테마파크, 성남문화재단의 운영 아래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곳은 설치미술가 임옥상, 건축가 승효상, 시인 김정환의 합작품이다. 책을 의미하는 각 나라의 언어들이 표지판처럼 세워진 ‘바람의 책’을 통과하면, 건물의 한면 전체에 훈민정음을 새겨넣은 거대한 조형벽이 손님을 맞이한다. 벽면 옆으로는 건물을 감싸는 산책로이자 책의 역사를 그림과 문자로 새겨넣은 ‘시간의 책’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엄마, 여기 아톰도 있어!” 벽화를 더듬으며 신이 난 아이들이 재잘대는 사이, 부모들의 카메라 셔터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렇다면 정작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굽이굽이 꺾인 미로를 빠져나가면 ‘공간의 책’, 말 그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등장한다.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책을 쌓아놓고 문자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도서관 풍경과 다를 바가 없지만, 공간의 분위기만큼은 색다르다. 분홍빛 꽃을 틔운 나무, 천장 곳곳에 자리한 색색의 말풍선들은 이색 카페를 연상케 한다. 책을 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건물 밖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광경도 특이하다. 뒤를 따라가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서관 뒤편의 잔디밭은 한가로이 앉아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기린, 자동차 등 다채로운 조형물 사이에 돌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김정환 시인의 자작시가 꼼꼼히 새겨져 있다. “일반적인 도서관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책을 주제로 한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박봉석 사서의 말처럼 책 테마파크는 도서관, 미술관, 공원이 한데 어우러져 화음을 빚어내는 공간이다. 매서운 날씨에 움츠려들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면, 얼음조각 교실(1월27~28일) 등 겨울에만 가능한 이벤트도 더불어 선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마음의 양식도 쌓고 나만의 취미도 살리고

이용시간: 09: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서대문 독립공원 내
이용문의: 02-360-8600, www.sdmljalib.or.kr

미담을 소개하는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한번쯤 들어보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진아라는 이름에 “그게 누구야?”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이 더욱 많지 않을까. 2003년 어학연수차 미국에 가 있던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의류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 이상천씨는 딸을 기리는 뜻으로 도서관 건립 사업에 50억원을 기부했다. 그 돈이 씨앗이 되어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이진아씨의 25번째 생일인 2005년 9월에 탄생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딸을 위해 만든 도서관이란 어떤 모습일까. 눈이 채 녹지 않은 서대문 독립공원을 관통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니 붉은 벽돌의 아담한 건물이 나타난다.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이진아씨의 모습을 담은 벽화다. “책 좋아했던 딸을 그리며, 가슴에 묻는 대신 영원히 살리기로 결심하다”는 아버지의 글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안내 데스크에 마련된 책자를 펼쳐드니 빼곡하게 들어찬 문화 프로그램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레스쿨, 과학놀이 등 유아 프로그램을 비롯해 도예, 컴퓨터 등 성인 강좌까지 모양새가 여느 문화센터 못지않다. 개관 당시 9개반으로 출발한 문화 프로그램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57개반으로 늘어났고, 8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이정수 팀장의 말을 빌리자면,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열이 높은 지역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강좌를 수강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일반 열람실을 없애고 자료실의 기능을 강화한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면, 4층 종합자료실에 앉아 책장을 넘겨보자. 독립공원을 향해 활짝 트인 창밖 풍경은 눈의 피로를 씻어주는 작은 청량제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의 집

옛날 만화부터 유럽 만화까지

이용시간: 09: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
이용문의: 02-3455-8331, www.ani.seoul.kr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다시 침묵. 서걱대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사법고시라도 앞둔 것일까. 하지만 웬걸, 자그마한 도서관을 가득 메운 것은 갓 열살을 넘겼을 법한 꼬맹이들이다. 아이들을 몰아의 경지로 몰고 간 것은 다름 아닌 만화책. 책장 사이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조리 점령한 아이들은 양반다리를 한 채 초밥왕과 개똥이를 만나는 중이다.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안에 자리한 만화의 집은 이름 그대로 국내외 만화책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둘리와 도우너, 또치가 손짓하는 입구를 지나 1층 도서정보실에 들어서면 3만여권의 만화책이 손님을 반긴다. SF, 무협, 추리, 로맨스 등 장르별로 꼼꼼히 분류된 ‘장서’들을 읽는 것은 물론 무료. 문을 닫기 전까지 한권이라도 더 보겠다는 각오로 무장한 아이들은 잡담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 열독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만화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성인이라면, <13> <리드뱅> 등 일반 서점이나 대여점에서는 접하기 힘든 유럽 만화들이 무엇보다 반가운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공짜 만화로 충분히 배를 채웠다면 소화도 시킬 겸 계단을 올라가보자. 벽면을 장식한 <마린 블루스> <파페포포 메모리스>의 주인공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전시실이 나타난다.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부담스럽던 아래층과는 대조적으로 전시실은 시끌시끌 높낮은 목소리들이 넘쳐난다. “엄마, 얘는 외계인이야?” “진짜 웃기게 생겼다~.” 캐릭터 모형에 바짝 달라붙어 눈을 빛내는 아이들도 신이 났지만, <소년세계> <어깨동무> 등 옛날 잡지를 앞에 두고 “이게 엄마가 어렸을 때 보던 거야?”라며 은근한 향수를 표하는 어른들도 흥이 오른 눈치다. 남산 언덕의 만화세계에 입장하기 위해선 잊지 않고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물리도록 만화책을 보기 위한 마음의 준비, 그리고 신분증.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정(情)으로 통하는 도서 사랑방

이용시간: 09: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내린 뒤 1215번 버스 이용, 홍릉초등학교 앞 하차
이용문의: 02-960-1959, www.L4D.or.kr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인간 세상 생겨났다네~.” 한복 의상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목소리를 뽐낸다. 15명의 아이들이 3개월 동안 연습해온 뮤지컬 <삼신할망>을 마침내 선보이는 날, 객석은 공연을 보러온 아이들과 어른들로 꽉꽉 들어찼다. 어린 배우들이 입을 모아 합창을 선보일 때마다 박수와 함께 플래시가 펑펑 터져나온다. 한껏 달아오른 공기가 콘서트장 부럽지 않은 이곳은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의 시청각실이다. 청량리2동 홍릉공원 옆에 자리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은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개관한 지 이제 반년 남짓이지만, 회원 수만 1만2천명에 일일 방문객이 3천여명에 이른다. 자그마한 신생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도서관을 잠시라도 둘러본 이라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사람이다. 이우정 관장과 17명의 사서들은 “무섭고 딱딱한 도서관이 아닌 친근한 도서관”을 목표로 “백화점 수준의 서비스”를 보여주자는 의견을 모았다. 쉽게 사서를 찾을 수 있도록 유니폼을 맞추어 입었고, 사무실이 아닌 각층에 나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우선 업무로 삼았다. 뮤지컬 공연처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음은 물론이다. 사서들과 함께 도서관의 얼굴을 이루는 것은 지역 어르신들.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원이 되어 운영하는 도서관의 공기는 따뜻하고 편안할 수밖에 없다. “사서들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어르신들은 도서관에 자주 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는 김정규 사서의 이야기는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이 지역사회와 맺고 있는 끈끈한 관계를 말해준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도서관. 그곳에는 책의 향기만큼이나 진한 사람 내음이 가득하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동화 놀이터

이용시간: 09: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도보로 5분 소요
이용문의: 02-3451-0800, www.nlcy.go.kr

“봄비가 내렸습니다.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습니다.” 소곤소곤 동화를 들려주는 어머니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는 아이. 여느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24시간을 채우고도 모자랄 이야기보따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 역삼동 옛 학위논문관 자리에 들어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책의 놀이터다. 부모의 손을 잡거나, 또래끼리 무리를 이루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은 어린이 자료실. 동화책과 그림책이 모자람없이 준비되어 있는 까닭도 있지만, 공간 자체가 아이들의 몸에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은 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마룻바닥, 동그랗게 배열된 테이블, 낮고 넓게 만들어진 서가와 발 받침대 등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섬세한 배려가 묻어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인 ‘그림책 나라’가 별도로 마련된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근처에 이사온 뒤 매주 한두번은 꼭 도서관을 찾는다는 소연이 어머니는 “책의 종류가 다양하고 보관 상태도 좋다”며 “애가 도서관에 가자고 하도 졸라서 요새는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어린이 자료실 맞은편의 외국 아동 자료실은 성인들에게도 매력적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 각국 동화책들이 서가를 장식한 가운데, 자료실 한편에서는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외국문화여행’이 진행 중이다. 현재 여행의 목적지가 된 곳은 터키. 전통 민담집부터 <내 이름은 빨강>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낯선 세계의 안내서로 마련됐다. 파트너가 되어줄 아이가 없다 해도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림책을 놓고 투닥대는 아이들의 정겨운 소음이 귀를 간질이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동화 속 세계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줄 테니까.

글 : 최하나
사진 : 오계옥  
사진 : 서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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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커즈와일의 미래예측 <특이점이 온다> 외
2007.02.02 / 편집부 

30년 후면 나도 사이보그?
레이 커즈와일의 미래예측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 보인다. 종이자료를 디지털화한 ‘커즈와일 읽기기계’를 발명해 시각 장애인에게 새 세상을 열어줬던 발명가 커즈와일은 인간의 육체인 뇌를 디지털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뇌 속 기억도, 뇌가 느끼는 감성도 모두 디지털로 완벽히 포획된다는 것.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사이보그도 곧 등장한다. 나노로봇을 이용해 심장을 수선하고 뇌도 재이식하면서 수명도 무한갱신된다. 그 시점은 100년 후도 아니고 2040년. 물론 이런 미래예측들엔 최신 과학정보에 근거한 꼼꼼하게 논증이 뒤따른다. 커즈와일은 검증된 미래학자다. 1985년 저서에서 “1998년이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것”이라 예언했고 이는 1997년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대결에서 컴퓨터 딥블루가 승리하면서 입증됐다. 1990년대 중반 세계가 월드와이드웹으로 연결된다는 예측도 현실이 됐다. 그러나 이번 책의 주장들은 워낙 급진적인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 책”이라는 지지에서 “특이점 세일즈맨”이라는 비판까지 반응이 다양하다. 2005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블로깅 많이 된 책’ 13위는 이런 논란을 반영한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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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7-02-0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일까????
 
영화 속 월드뮤직
Various Artists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은 대부분 가요 아니면 서구의 팝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미 음악이나 동구권, 더 넓게는 아프리카 음악을 들으면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각 나라마다 자국의 전통적인 음악이 있어 그 종류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인데도, 문화적 경제적으로 서구 중심의 사회가 되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귀는 한쪽으로만 열려있어 음악적 편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서서히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국제화와 더불어 서구권 중심의 문화를 벗어나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와 같은 배경에는 영화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였다고 하겠다. 영상매체가 가져다 주는 자극은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그 영상과 함께 흐르는 음악의 청각적인 자극도 한몫한 것이다.

이 앨범은 월드 뮤직을 표방하고 있지만, 위와 같이 영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듣는데는 큰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이라는 느낌보다는 영화의 배경음악 정도로 느껴진다. 

1번째 트랙의 Prologue(Tango apasionado)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동성애를 담았던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에 수록된 피아졸라의 곡이고, 2번째 트랙의 Libertango는 샐리 포터의 ‘탱고 레슨’에 수록된 곡으로 이 또한 피아졸라의 곡이다. 요요마가 첼로로 들려주고 있는데 색다른 느낌이다. 14번째 트랙의 I Am You도 탱고 레슨에 나오는 곡인데, 감독인 샐리 포터가 직접 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다.

3번째 트랙의 Forbidden Colours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 수록된 곡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곡은 솔직히 월드 뮤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다고 하겠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들려주는 전자음악은 일본적인 사운드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장 대중적인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으니 말이다.

4번째 트랙의 Raquel은 스크린의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 수록된 곡으로, 바우라는 아티스트가 기타와 까바낑요로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영화적인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서정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5번째 트랙의 Veinte Anos는 로드 무비의 대가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 수록된 곡으로,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음반자체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는데, 이 앨범에서는 베보 발데스의 피아노 연주와 디에고 엘 시갈라의 마치 막걸리와 같은 걸쭉한 보컬로 들을 수 있다.

6번재 트랙의 Besame Mucho는 영화 ‘위대한 유산’에 삽입된 곡으로 이미 워낙 유명한 곡이라서 월드 뮤직이라기 보다는 그냥 팝송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곡이다.

7번째 트랙의 Alfama는 빔 벤더스가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화인 ‘리스본 스토리’에 삽입된 곡으로, 포르투갈의 파두 음악의 대가인 마르데두스 밴드가 파두 특유의 처절하다 못해 서글픈 감정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

8번째 트랙의 Platna Milosc (In The Death Car)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에 수록된 곡으로 고란 브레고빅 특유의 집시적인 스타일이 잘 녹아 있는 곡으로, 익살맞은 사운드가 아주 매력적인 곡이다.

9번째 트랙의 Por Que Te Vas (까마귀 기르기)는 까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까마귀 기르기’까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영화 자체도 접하기 힘들뿐더러 그 사운드트랙도 구하기 힘든데, 귀중한 음원을 이 음반에 수록하고 있어 무척 반가운 곡이다.

10번째 트랙의 Cuore Matto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에 삽입된 경쾌한 깐소네 곡으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곡 같았는데 우리나라의 펄 시스터스가 번안해서 불렀다고 한다.

11번째 트랙의 Tous Les Garcons Et Les Filles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에 삽입된 곡으로, 프랑소와즈 하르디의 샹송이 6, 70년대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프렌치 무드 팝이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프랑소와즈 하르디도 그런 아티스트들 중의 한명이었다.

12번째 트랙의 Maria Elena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에 수록된 곡으로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당시 극중에서 장국영의 춤장면과 함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던 곡이다.

13번째 트랙의 Oblivion은 ‘엔리코 4세’에 삽입된 곡으로, 파블로 지글러의 연주로 들려주고 있는데, 피아노와 현악이 강조되어 다분히 프렌치 무드 팝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 이채를 더하고 있다.

15번째 트랙의 So Nice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 삽입된 곡으로, 보사노바의 고전인 'Samba de Verao'의 영어 버전으로 엘리안 엘리아스의 보컬이 마치 호아오 질베르토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다.

16번째 트랙의 From Within는 라틴 재즈 뮤지션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칼레 54’에 삽입된 곡으로, 미셀 까밀로 트리오의 열정적인 연주가 뮤지션들의 치열한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17번째 트랙의 Falsa Baiana는 피나 토레스 감독의 ‘맛을 보여드립니다’에 삽입된 곡으로, 16번째 트랙의 From Within과 달리 브라질의 디바 Gal Costa가 유려한 보컬로 사람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해준다. 

수록곡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라틴 음악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음반이 월드뮤직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 속에 쓰인 월드 뮤직을 엄선하다보니 그래도 우리들에게 많이 소개된 영화들이 라틴 영화들이다보니 자연히 음악이 편향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월드 뮤직을 흡수하기가 편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세계 각국의 음악과 접해보는 것도 색다른 사운드를 체험하게 되는 좋은 음악듣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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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OK Computer -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선정한 100대 음반 시리즈 90]
라디오헤드 (Radiohead)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라디오헤드(Radiohead)하면 영화 ‘씨클로’에 등장하던 Creep이 떠오른다. 흐느적 거리는 톰 요크의 보컬로 인해 영화가 주는 이미지를 아주 잘 표현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터너티브가 전 세계를 휩쓸던 때에 발표된 곡이라 그들을 얼터너티브 밴드로 알고 있었지만, 이 앨범 OK Computer를 통해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엎게 된다. 한마디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한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운드를 선사하고 있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이전부터 추구해 온 어둡고 우수에 가득찬 듯한 노랫말과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데, 특히 톰 요크가 뿜어내는 가성과 비브라토, 조니 그린우드의 기타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그리고 수회에 걸친 반복 녹음으로 인한 풍성한 사운드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몽롱함을 넘어 아찔함마저 느끼게 한다.

첫 번째 트랙의 Airbag은 강한 기타 리프와 드러밍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루브한 느낌을 주는 Dub 스타일의 곡이며, 2번째 트랙의 Paranoid Android 남미풍의 어쿠스틱 기타와 드러밍이 마치 보사노바 리듬을 연상시키는데, 얼터너티브 사운드로의 전환이 특이하다. 콜린(베이스)은 DJ Shadow와 비틀즈의 혼합을 기도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운드의 변화의 폭이 심한 것 같다.

3번째 트랙의 Subterranean Homesick Alien은 2번째 트랙의  Paranoid Android와 달리 단순하면서도 간명한 형식을 취한 곡이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사운드에서 오는 신선함이 이러한 곡 구성의 단순함마저 커버해 버리고 있다. 그런데 제목이나 가사만으로 이 곡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몸으로 느낄 뿐이다.
 
4번째 트랙의 Exit Music은 바즈 루어만이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엔딩에 쓰인 곡으로, 감독이 보내준 편집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절망적 현실에서의 도피를 이야기하는 사운드는 영화적 이미지와 매칭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5번째 트랙의 Let Down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감성적인 가사로 앞선 트랙들에서 들려준 조금은 자극적이고 강렬한 사운드에 비해 다소 누그러진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오히려 그러한 곡 분위기에서 배어나오는 강렬함은 앞선 트랙들의 곡 못지 않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가사를 한번 음미해볼만 한 곡이다.

6번째 트랙의 Karma Police는 톰 요크과 코러스가 만들어내는 우수에 찬 듯한 분위기에 어쿠스틱 악기가 가진 자연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려 곡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전체적인 사운드를 받쳐주는 피아노의 울림이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아주 매력적인 곡이다.

7번째 트랙의 Fitter Happier는 피아노 반주에 얹힌 로봇 나래이션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의 곡으로, 스페이스 사운드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8번째 트랙의 Electioneering은 펑크 스타일의 곡인데, 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사운드가 어떤 고정된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표현화고자 하는 것들을 다양한 사운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고 하겠다. .

9번째 트랙의 Climbing Up The Walls는 가장 라디오헤드적인 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 곡으로, 가성으로 전달되는 톰 요크의 보컬과 사운드가 휘몰아치듯이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은 가히 압권이라 하겠다. 특히 현악파트를 활용하여 사운드를 풍성하게 함과 동시에 우울하고 어두은 면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9째 트랙의 격정적인 사운드는 10번째 트랙의 No Surprises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맑고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음계가 있는 종인 클록켄스필을 사용하여 소녀취향적인 사운드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고저없이 평이하게 전개되는 사운드는  포크 락을 연상시킨다.

11번째 트랙의 Lucky는 읊조리듯 들려오는 톰 요크의 보컬과 코러스, 그리고 독특한 조니의 기타사운드가 사람을 매우 나른하게 만들어 버리는 곡이고, 12번째 트랙의 The Tourist는 마지막 곡이어서인지 톰의 보컬이나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죽죽 늘어지는 느낌을 주며, 공간감을 적극 활용하여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앨범의 제목과 곡들을 보고는 미래의 묵시록적인 사운드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라디오헤드가 빍히기로?원래 완성한 했지만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의 제목이 앨범의 제목이 된 것이라고 하며, 이는 베이시스트인 콜린이 마음에 들어해서 타이틀이 되었을 뿐이지 SF적인 의미는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들으면 “왜 이리 우울하고 어둡지?”라고 생각하지만 듣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사운드에 푹 빠져 있음을 보게 된다. 보통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의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왠지 모르게 끌려들어가게 되는 매력, 아니 마력을 가지고 있다. 얼터너티브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락씬에 등장한 그들이, 지금 얼터너티브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시점에서도 대중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어 내고 있는 것은 시류에 부합하여 어느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만의 실험정신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일렉트로니카가 만들어 낸 다양한 음악적 사운드와 록이 가지는 저항적이면서도 파워풀함을 오케스트레이션과 적절한 조합을 통하여 독창적이면서도 라디오헤드적인 신선함을 가져다 준 성과가 집대성된 음반이 바로 이 앨범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누구에게나 “OK”라는 동의를 얻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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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음반이죠. 왜 활동이 뜸한가 모르겠어요. 요새 뭐하는지. 내한공연도 한번 안오고.

키노 2007-02-0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곧 좋은 음반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사랑해 파리 - 황성혜의 파리, 파리지앵 리포트
황성혜 지음 / 예담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프랑스, 파리 하면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가 언뜻 떠오른다.
어릴적부터 누구나가 파리에 대한 환상 아닌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파리라고 하면 왠지모르게 멋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파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지은이가 파리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통해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인? 파리가 내 애인이잖아.”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로 지은이는 파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면에서는 지은이의 주관적이고 맹목적인 파리 사랑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가 조선일보 정치부기자를 거쳐 주간조선에서 몸을 담고 있는 기자여서인지, 글 전체의 내용은 무미건조하면서도 아주 객관적인 냄새가 많이 배어나온다. 일반적으로 여행에세이는 당사자들이 겪은 일들을 자신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일반적인 여행에세이류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지은이는 파리의 명소들과 음식, 그리고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활기넘치고 약동적인 파리를 그리는가 하면, 그랑제콜, 스타벅스, 히잡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파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학연문제, 맹목적인 미국에 대한 반감,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모습등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객관성을 잃고 있지 않다.

어느 사회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애인이 파리라고 하면서도 애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여줄 정도로 애인, 파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레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여태껏 숨쉬고 살아오던 곳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나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진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랜 여행이든 아니면 짧은 여행이든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진 곳은 유난히 애착이 가는 곳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한다.

“낭만이라구요? 그런 것 없어요. 몽마르트는 경쟁심과 질투심만 이글거리는 곳이죠. 실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손님들도 금세 알아보고 외면해요. 살기 위해 기를 써야 해요.”
낭만은 그들의 일상을, 공연 작품 보듯이 구경하는 우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었다(본서 제50쪽 참조)

라고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가 보는 것의 이면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보는 이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또 다른 나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이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 곳이 이 책에 등장하는 파리든 아니면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동네이든 말이다. 내 마음 속의 파리를 찾아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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