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 고정관념 Q 9
폴 발타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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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9. 11.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의 자살테러행위로 인해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건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먼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김선일이 이라크에서 알카에다에게, 샘물교회 교인 2명이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까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테러사건으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고 더욱 굳어졌으며 심지어 이슬람 혐오증을 유포시키게 된다.

아랍어로 ‘신에게의 복종’을 의미하며 유대교와 기독교의 뒤를 이어 세 번째 계시종교인 이슬람은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서 법이자 윤리이며, 심지어는 생활 방식까지 규제하는 그야말로 생활 그 자체다. 그런 이슬람이 어떠한 연유로 인해 현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일까. 이는 이슬람이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은이는 이슬람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통념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와 같은 통념이 형성된 배경과 동인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의 모습이 그들의 모습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는 무함마드를 부인한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하여 ‘이슬람 사회는 근대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라는 내용까지 총 19개의 주제에 관하여,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 이슬람의 문화와 사회, 이슬람과 현대의 세계라는 3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슬람에 관한 통념들이 아무런 근거없이 우리들에게 주입되어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은이는 테러리즘은 극소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소행일 뿐이고, 8세기부터 13세기 동안 아랍-이슬람 문명의 공로로 인해 유럽 르네상스가 빛을 보게되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시대가 변하면서 이슬람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인 경직성, 부동성, 불관용의 총체가 결코 이슬람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일단 등장하는 단어들부터 생소한 것들이 많고 이슬람에 대한 역사와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은 관계로 지은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개략적으로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는 그 문화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이 갖추어진다 하더라도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서브노트처럼 정리된 내용만으로는 이슬람의 전부와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서에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보충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이슬람과 꾸란에 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사전적으로 해두었다면 좀 더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에 소개되는 글만으로 이슬람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고 보기에는 힘이 들지만, 이 기회를 통해 이슬람이라는 문화가 가지는 새로운 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된 배경에 대해서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열린 마음으로 문화를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 국제화 시대. 이제 우리 주위에서도 아랍인들과 이슬람 문화를 접하는 것이 그리 생경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모두 화합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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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가 고정관념 Q 8
빅토르 퀘페르맹크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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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대인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수전노, 매부리코, 랍비,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시오니즘, 중동분쟁 등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들을 직접 경험하고 얻은 것들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것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나의 사고를 형성하게 된 것들이다. 고정관념인 것이다.

유대인만큼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도 없을 거라고 본다. 아마 이는 전 세계 인구의 1.5%가 채 안되는 유대인이 세계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정치 등 다방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해서는 머리가 비상하고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나다는 좋은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유대인 박해라는 역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유대인은 어떤 민족이었을까.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가 유대인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생각에서 우리가 유대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진정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앞부분에서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고대 불어에서부터 경멸적인 어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도에게는 금지되었던 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수전노나 돈벌이에 악착스러운 사람과 동의어가 되었고 19세기 중반 반유대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유대인이라는 말에 들어 있던 경멸적인 어감이 한층 더 강해졌으며, 그와 더불어 유대인이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 경멸적이며 모욕적인 말들이 새롭게 파생되었다고 한다.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 계기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하여 ‘유대인로비가 존재한다’는 내용까지 총 17개의 주제에 관하여, 유대인의 역사, 유대인의 특성과 전통, 유대인의 사회와 경제라는 3개의 장으로 나누어, 유대인에 관한 몇몇 통념들이 멋대로 꾸며낸 것이며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유대인에 관해 가지고 있던 통념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간추려 잘 정리하고 있다. 여러 개의 주제에 대해 짤막짤막하게 설명하여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점은 있지만, 어떤 설명에서는 너무 간단하지 않나 할 정도로 축약되어 있어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번역서이다보니 지면상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이왕이면 번역자가 유대인에 관련된 역사를 기본적인 내용으로 미리 설명을 해주면 글을 읽는데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한다. 주제별로 다루어지다보니 깊이 있는 내용보다는 여기저기 내용들이 중복되고 흩어져 있어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되는 글들이 전적으로 옳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생각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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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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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고등학교 영업수업시간부터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당장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회적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해년마다 영어 조기 유학이나 영어 사교육으로 엄청난 비용이 지출된다는 점을 논외로 하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형식상 독립국가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미국의 실질적인 영향 아래 놓여있는 식민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견 과격한 주장같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인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20세기를 휩쓸던 식민주의 논의가 21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재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여기서 탈식민주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탈’이란 접두어는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외형적인 독립과 국가건설만으로 식민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신식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와 다국적 기업의 자본의 힘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최근의 이라크 침공)과 외교력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인 현 시점에서, 영어 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은이는 식민주의로부터 탈식민주의 그리고 현재의 신식민주의에 이르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식민지배자들은 타자화 전략을 통해 타자에 대한 상투적이며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별 저항없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상처와 고통을 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저항담론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도 아니었던 한국에서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의해 영어를 배우려는 것은 영국과 미국의 헤게모니에 순응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런 예속화는 지금도 진행 중으로(본서 제49쪽 참조), 그런 측면에서 저항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저항은 패권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가강 강력한 힘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배자의 입장에서도 타자(약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윤리학을 정립하는 것이 요청된다고 한다(본서 제91쪽 참조).

지은이는 위와 같은 논의와 더불어 탈식민이론가들인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에 대한 이론들을 짧게 소개하고, 디포우, 조지 오웰, E.M. 포스터 같은 영문학 작품에 스며있는 탈식민주의를 고찰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적은 분량의 문고본에서 이들이 이야기한 방대한 내용의 주장들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 정리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아닐까 한다. 위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지은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론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측면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왜 탈식민주의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이 얇은 책은 나름대로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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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 -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1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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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아주 뿌듯하게 생각해 왔고,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주위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고, 국제결혼이란 것도 생소한 것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무언지를 한 번쯤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 철학이 혼재하는 사회,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대.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혼돈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유럽에는 극우적인 양상을 보이며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일부 과격분자들이 보이는가 하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날선 대립을 보이고 있다. 가깝게는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한국의 모습을 찾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만 한국적인 것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문제다. 그만큼 우리는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고, 너무나 당연시 생각해 오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 정작 한국의 정체성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국악이니 한옥이니 하는 것들을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은이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 대해 냉철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정체성의 성격에 대해서 논한다. 지은이는 정체성은 단순한 외양과 정신의 합으로는 설명이 될 수 없는 형이상학의 고차원적인 문제로서 우리는 여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외양이나 정신으로 접근하다보니 그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정체성은 자세나 태도를 뜻하는 주체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며, 한국의 정체성은 계속 변하는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집단의 정체성임을 강조한다. 한국이란 집단의 정체성은 한국이란 집단이 갖는 여러 분야의 공통된 특성에서 찾을 것을 제안하고, 지금 현재 한국의 정체성을 가장 확고히 보장하고 있는 것은 한글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여태까지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외양이나 정신으로 접근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양이나 정신도 어느 것이 한국적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물음이 남는다는 점에서 이것만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논하기는 힘들다.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생각한 것은 이를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고, 한국의 정체성을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것처럼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2장에서는 세계화, 글로벌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과연 그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지은이는 세계적인 것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린다. 세계적이란 말은 추상적이며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것이란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의 문제는 실체가 없으므로 그 말이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는가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는 결국 미국화의 위장 명칭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보편성의 기준은 미국이며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곧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언급한 것처럼 보편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과연 미국이 세계적인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표준이 거의 모든 나라의 표준이 되어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 수 있을까. 힘으로 유지되는 보편성이 과연 정당한 보편성이 될 수 있을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이 짧아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많은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볼 문제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의 정체성 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논한다. 지은이는 한국의 정체성 판단의 기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고유성과 창조적 수용을 언급하면서, 고유성은 시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의 문제로 일정 수준의 미나 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며, 창조적 수용의 기준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 여부라고 한다. 그리고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본다면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미국에서 비롯되었던 일본에서 비롯되었던지 간에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단 우리의 것이 될 자격이 있고, 대중의 지지와 호응이 있다면 이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만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면 일응 이는 또 다른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행에 민감한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할 뿐이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다. 아직 이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만큼 앞으로 많은 논의와 합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등장한 것인만큼 우리의 모습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지은이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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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 (개정증보판)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4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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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원제는 Freak와 Economics의 조합어인 Freakonomics다. 일단 제목 자체에서 예사로운 책이 아니란 걸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제학 책과는 구분을 짓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책제목이다. 그 주역은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더브너이다.

그래프나 수식이 등장하는 일반 경제학 책들과는 다르다. 대신 지은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조사한다. 지은이가 조사한 데이터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의도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의 숨겨진 이면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 속에 숨겨진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던지는 주제는 기존의 그 어떠한 경제학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주 기발하고 독특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던져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고전경제학에서 보여지는 이론들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가지일 뿐이다. 파격적인 질문인만큼 그 결론도 아주 신선하고 재기넘친다.

시험성적을 조작하는 교사와 시합에 져주는 스모 선수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제학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센티브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닮은 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가 보여주는 행태분석에서 정보가 가지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약 판매상의 재정분석을 통해 성인이 되어서도 마약 판매상이 어머니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며 이에 대한 사회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내용인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줄였다는 부분에서는 기발하다못해 너무나 어이없는 결론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지은이가 보여준 방대한 데이터 분석은 지은이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에게 총과 수영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부모가 지어준 아이의 이름은 아이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라고 하는 기발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쏟아내며 우리들의 상식과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

지은이가 위와 같은 상상을 불허하는 기발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데이터 못지 않게 사회를 바라보는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경제학이 보여주던 수식과 이론을 거부하고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의 이면에 숨겨진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윤리학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대표한다면, 경제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세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경제학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위와 같은 다양한 질문들을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일정한 주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저 손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라도 넘겨 읽으면서 지은이의 기발한 생각에 동참을 하면 된다.

그렇게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보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건져 올린 진실은 아무리 복잡한 사회 현상이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과 정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물을 한 쪽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경제이론 틀 속에서만 움직일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난해한 이론과 수식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형성되어 온 경제학적인 지식을 쌓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현실경제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해주는 이야기도 좋을 것 같다. 지은이의 탁월한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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