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체성 -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1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아주 뿌듯하게 생각해 왔고,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주위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고, 국제결혼이란 것도 생소한 것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무언지를 한 번쯤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 철학이 혼재하는 사회,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대.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혼돈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유럽에는 극우적인 양상을 보이며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일부 과격분자들이 보이는가 하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날선 대립을 보이고 있다. 가깝게는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한국의 모습을 찾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만 한국적인 것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문제다. 그만큼 우리는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고, 너무나 당연시 생각해 오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 정작 한국의 정체성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국악이니 한옥이니 하는 것들을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은이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 대해 냉철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정체성의 성격에 대해서 논한다. 지은이는 정체성은 단순한 외양과 정신의 합으로는 설명이 될 수 없는 형이상학의 고차원적인 문제로서 우리는 여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외양이나 정신으로 접근하다보니 그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정체성은 자세나 태도를 뜻하는 주체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며, 한국의 정체성은 계속 변하는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집단의 정체성임을 강조한다. 한국이란 집단의 정체성은 한국이란 집단이 갖는 여러 분야의 공통된 특성에서 찾을 것을 제안하고, 지금 현재 한국의 정체성을 가장 확고히 보장하고 있는 것은 한글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여태까지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외양이나 정신으로 접근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양이나 정신도 어느 것이 한국적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물음이 남는다는 점에서 이것만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논하기는 힘들다.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생각한 것은 이를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고, 한국의 정체성을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것처럼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2장에서는 세계화, 글로벌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과연 그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지은이는 세계적인 것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린다. 세계적이란 말은 추상적이며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것이란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의 문제는 실체가 없으므로 그 말이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는가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는 결국 미국화의 위장 명칭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보편성의 기준은 미국이며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곧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언급한 것처럼 보편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과연 미국이 세계적인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표준이 거의 모든 나라의 표준이 되어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 수 있을까. 힘으로 유지되는 보편성이 과연 정당한 보편성이 될 수 있을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이 짧아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많은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볼 문제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의 정체성 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논한다. 지은이는 한국의 정체성 판단의 기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고유성과 창조적 수용을 언급하면서, 고유성은 시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의 문제로 일정 수준의 미나 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며, 창조적 수용의 기준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 여부라고 한다. 그리고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본다면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미국에서 비롯되었던 일본에서 비롯되었던지 간에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단 우리의 것이 될 자격이 있고, 대중의 지지와 호응이 있다면 이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만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면 일응 이는 또 다른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행에 민감한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할 뿐이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다. 아직 이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만큼 앞으로 많은 논의와 합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등장한 것인만큼 우리의 모습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지은이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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