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은 너무 피곤해서 버스에 앉자마자 멍을 때리며 창 밖을 응시했다.
거의 종점 가까이에서 타므로 항상 앉아 오는데 몇 정거장이 지나
어떤 남자분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귀에 거슬리는 큰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청 큰 숨소리군!' 잠이 들락말락하며 생각했다.
듣다보니 호기심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숨 간격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내가 한 번 쉴 때 옆 남자분은 3번을 쉬었다.
'내가 복식호흡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나?, 내가 이상한건가? 이 남자가 이상한건가?'
라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며 피곤으로 지친 머리를 휘저었다.
이윽고 내릴 곳이 되어 발이 보도에 닿자마자 언제 이런 생각을 했었냐는 듯이
'건널목으로 건널까?, 지하도로 건널까?'라는 사소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요즘은 버스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책을 보고 있으니 항상 시선이 밑으로만 향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까닭에 사람의 하체만 기억하게 될 뿐이다.
정열적인 빨간 바지에 빨간 반짝이 운동화로 기억되는 노년의 부인과
깊은 바다 색깔의 바지에 꽃자주색 페디큐어를 바르신 중년의 부인이 옆자리에 앉았다.
중년의 부인은 아들이 둘인데 32살, 29살이라 결혼할 때가 되었다며
딸이 없으니 딸 같은 며느리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년의 부인이 "딸 같은 며느리는 있을 수 없어요."라며 그런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그 뒤부터는 책은 읽는 시늉이고 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데,
이럴 때는 '책을 백날 읽으면 뭐하나?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아닌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직접 경험보다는 간접 경험이 많으니 과연 쓸모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연히 우울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