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물심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원숭이나 돌고래가 지능이 높다거나, 반려동물이 주인과 교감을 나눈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동물들을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동물들의 충격을 다스리는 법을 다루고 있다.
가슴아픈 이야기가 많아서 읽다가도 손을 멈추고 가끔 멍하니 생각하게 된다.
관심이 없어 잘 몰랐는데 아마존에 검색해보니 요즘 이 분야가 뜨는지 상당히 많은 책이 나와있다.
어쨌든, 코끼리와 관련된 부분을 읽다가 생각난 일화.
아주 오래오래오래전에 인도여행을 갔을 때, 자이푸르라는 곳에 갔었다.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내 인도고행(?)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꼈던 곳이 타지마할과 자이푸르였다.
자이푸르에서는 사막 낙타 투어도 유명하지만 코끼리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서 전망좋은 경치를 보는 곳이 있다.
(너무 오래되어서 자세한 지명은 기억 안나고...디카도 없었던 시절 -_-;;)
친구랑 나는 무려 코!끼!리!를 타본다는 생각에 잔뜩 신이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코끼리라니. 코끼리라니. 동물원가서 어린이용 조랑말 타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코끼리가 다리를 구부리는 것보다 인간이 코끼리 키에 맞추는 것이 간단하므로 -_-;
코끼리 등에 탈 수 있을만한 높이로 대기하는 장소를 마련해놓았다.
표를 사고 기다리고 있자니 남산만한(진짜 남산만한) 코끼리가 다가와서 얌전히 섰다.
코끼리 한 마리에 운전사 1명 + 승객(?) 4명, 이렇게 총 5명이 타게 되어있었다.
운전사는 코끼리의 목부분에 타고, 승객은 양쪽 등에 2명씩 대롱대롱 매달려야 했던 것.
당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친구랑 나랑 운전사 이렇게 3명만 타고 언덕을 올라가게 되었다.
등에 기어올라가서 자리를 잡자 드디어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있는소리 없는소리 다 지르면서 무서움 반 + 신기함 반으로 마구 오두방정을 떨었다.
(일단 타보면 생각보다 훨씬 높다. 코끼리니까. -_- 그리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양쪽으로 미친듯이 흔들린다)
낑낑대며 얌전히 언덕을 올라가던 코끼리는 갑자기 뭔가 눈에 띄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 거렸다.
바로 그 때! 운전사가 손에 들고 있던 쇠막대기로 코끼리 머리를 퍽! 치는거였다.
그러자 코끼리가 푸후후우우우~ 하고 침을 약 10리터;;쯤 튀겨주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쇠막대기 끝은 90도로 꺾여 송곳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고
운전사가 친 부분은 코끼리 머리가 아니라 정확히 말해 코끼리의 얼굴과 귀가 만나는 곳,
즉 인간으로 치면 귀에 연필 꽂을 때 연필이 걸리는 부위였다.
미친듯이 흔들리는 코끼리 등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그 부분을 살펴보았더니
얼마나 그 부위를 때리고 또 때렸으면 코끼리의 그 두꺼운 가죽이 다 벗겨져서 분홍색 속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송곳같은 막대기로 수백번, 수천번 같은 부위를 찍어내린 결과 겉가죽이 다 해졌던 것.
피부를 벗겨내고 속살을 훤히 다 드러내 놓았으니 이제는 힘들여서 세게 찍을 필요도 없이 가볍게 퍽 내리치기만 하면
자동으로 코끼리가 살을 찢는 고통을 느끼고 말을 잘 듣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때린 곳 또 때리고, 또 때리고..."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여행 전부터 마구 기대하던 코끼리 타기는 끔찍한 경험으로 바뀌었고
친구랑 나는 코끼리가 제발 한눈을 팔지 않도록;;;; 기우뚱거리면서 빌고 또 빌었다.
코끼리가 귀를 얻어맞으며 고통에 찬 침을 뿌려댈 때마다 허겁지겁 우산을 펴서 막아가면서...
그렇게 해서 결국 언덕 위까지 올라갔고 과연 그 위의 경치는 절경이었다.
코끼리를 매질해가면서 올라간 그 언덕에서 사진도 찍고 V자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인도에서의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도 술자리에서 수다떨만한 몇 개의 에피소드만 남게 되었고.
얼마 전까지도 그 코끼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책을 집어들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아마도 그 코끼리는 세상을 떠났겠지만
죽는 날까지 과연 그 귀의 상처가 아물 날이 있긴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