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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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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신발 네 개는 각각 누구의 신발일까? ^^)
이 책은 꼭 리뷰를 쓰고 싶어 번역판이 나왔나 찾아보니 무려 지난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제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살짝 스포일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A long way down이라는 원제는 정말 꼭 들어맞다 못해 딱이다 딱이야 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삼류 로맨틱 코미디 제목같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부터
전철역에서 떨이로 파는 촌스러운 영어회화책 같은 "진짜 좋은게 뭐지?"까지,
그동안 닉 혼비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어찌나 수난을 당했는가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평범한 제목과 표지만도 감지덕지하여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ㅠ_ㅠ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로 너무나 다른 네 사람.
미성년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모든 것을 잃은 아침 TV쇼 사회자.
좋게 말하면 발랄, 나쁘게 말하면 네가지 없는 방황하는 젊은 아가씨.
일평생 식물인간인 아들만을 돌보며 살아온 중년부인.
음악이 좋아 밴드를 결성했지만 결국 이도저도 다 잃은 미국청년.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서로 사는 세계가 달라 만날 일도 없었던 이 네 사람이
'자살미수'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괴상한 일들을 벌여나간다.
목차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보통 주인공 한 사람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각양각색인 네 사람의 관점에서 지루해질 틈 없이 펼쳐지는데,
마치 옴니버스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천양지차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네 사람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으니 꼭 네 가지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닉 혼비만의 유쾌한 유머와, 톡톡 튀는 대사들(주로 불량 소녀 제스의 입을 통해 표현되지만),
뭔가 기묘하게 뒤틀려있는 나사빠진 등장인물들은 여전하다.
분명히 자살 이야기인데...죽음까지 생각할만큼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엉뚱하고 웃긴거야? 으흐흐..
낄낄대며 읽은 부분이 많았지만 정말 무릎을 쳤던 구절은
"동성애라는건 꼭 올림픽같잖아?
고대에 성행했다가 자취를 감췄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부활했고 말이야." ^^;;;
아! 정말 닉 혼비 말고 그 어느 누가 동성애를 올림픽에 비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닉 혼비의 책 중에서 상위권으로 꼽고 싶은 책이다.
그동안 처참한 표지디자인과 황당한 제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닉 혼비 러브러브!'를 외쳤던 수많은 닉 혼비 팬이라면 더욱 필독 중의 필독.
P.S. 하나 덧붙이자면, 예전에 하이드님이 말씀하셨듯이, '유령 자살 구조대'와 어딘가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남녀를 합해 네 명의 주인공, 자살. 이라는 공통 주제.
두 작가가 무슨 텔레파시라도 통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