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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역시 황석영이다. ‘실천’의 문단과 ‘민중’의 현장에서 ‘황구라’로 통했던 황석영의 글발, 말발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양파를 까듯 개발독재시대 한국 현대사의 속살을 벗겨내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기점으로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물 군상들을 통해 개발시대 욕망과 치부를 드러낸다. 민초들은 상상도 못했을 요악(妖惡)한 현대사의 능선을 따라 마치 기인열전을 하듯 친일파, 밀정과 군인, 밤의 여성, 개발업자와 조폭들, 개발의 꿈에서 밀려난 하위자들을 독립된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저 삼십 여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 가쁜 여정과 엄청난 에피쏘드들을 단순화하고, 이를테면 꼭두각시, 덜머리집, 홍동지, 이심이 등등처럼 캐릭터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형 같은 캐릭터들은 남한사회의 욕망과 운명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가고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드러나게 하면 어떨까.”
저자의 의도는 적중한 듯 보인다. 꼭두각시 인형극처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단순화해 캐릭터화하고, 독립된 캐릭터들을 등,퇴장 시키면서 서로 인과관계를 갖도록 한 구성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입체적인 독서라고나 할까. 독자들은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듯한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십 권의 장편을 한 권의 단편으로 응축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전광석화같은 이야기 전개에 넋을 읽고 읽다보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 있다.
허나 답답하고 분하다.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야만의 역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삶의 바탕과 내용이 어디서, 어떻게 기인한 것인지 맞닥뜨린다면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무지는 분명한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