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고 부끄러운 그리스도인(고전15:19, 34)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전15:19


  저는 부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 돈이 없어 불편한 일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나 돈 없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부끄럽진 않습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하루를 흠 없이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소망 없이 살아가는 것, 이 세상의 가치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부끄럽고 불쌍한 일입니다. 영적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돈을 더 모으고 사회적 지위를 더 끌어 올리고, 억지로라도 공부시켜서 자식들을 남들보다 좋은 학교 보내려고 하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부끄럽고 불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돈도 많이 모으고, 지위도 올라가고, 자식들도 공부를 잘 한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온통 관심이 여기에 쏠려 있고, 우선순위에서 신앙의 본질이 뒤로 밀려 있다면 부끄럽고 불쌍한 일입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고전 15:34


  정말 부끄러운 것은 어떻게 돈을 더 벌까, 어떻게 더 높아질까, 어떻게 자식들을 남들보다 좋은 학교에 보낼까에 대해서는 매일 생각하고 고민하고 묵상하며(?)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생을 획득한 사람들이며 천국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이 다가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에 헌신하고, 매일 매일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덜 중요한 일에 애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고 부끄럽고 불쌍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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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다루신다


  다윗은 죄도 없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고, 고통과 억울함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누구 보아도 사울을 처치할 이유는 정당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부하들은 명령만 내리면 바로 사울을 죽이겠노라고 강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울은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질투에 가득 차 있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무능한 왕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상황에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가 죽든지 할 것이다.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삼상26:10-11

 

  다윗은 악할지라도 사울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다루실 것이므로 자기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다루심을 기다리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사울이 있습니까? 무능하고 못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힐 때,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도저히 존경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를 곤경에 빠지게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합니까? 그는 나의 상관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부모나 배우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우리는 내 손으로 끝장을 보고, 내 손으로 그 사람을 끌어내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은 하나님이 다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속상해하고 마음이 피폐해지고 답답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다루실 것을 믿고,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임금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궁지에서도 나를 건져내어 주실 것입니다” 삼상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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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백(행24:14-16)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은 변호사 더둘로를 고용하여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고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행24:5)

 

  결국 바울은 예수믿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셈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소자들과 벨릭스 앞에서 변론을 하게 되는데, 그 변론은 바울의 신앙고백이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총독님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행24:14)

 

  둘째로, 자신이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데, 나를 고발하는 이 사람들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장차 있으리라는 것입니다”(행24:15)

 

  셋째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영원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림낌없는 양심을 지키며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행24:16)

 

  바울의 위대한 삶과 사역은 이와 같은 신앙고백과 자기정체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거리낌없는 양심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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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반 믿음의 글들 129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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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신자'란 '초신자'란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깨달아 진정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자'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저자의 새신자에 대한 정의는 신선하고 예리하다. 결국은 모든 신자를 새신자로 부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있는가? 그러나 얼마나 새신자가 되어야 할 헌신자가 많은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더 많이 알고 깨달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새신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열었다.

  이 책은  아주 기본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수없이 들어왔던 주제들이다. 그러나 저자의 깊은 영성과 예리한 성경이해, 명료한 해설은 수없이 들어왔던 주제의 반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재시작하도록 도전한다. 군데 군데에 자의적이고 무리한 성경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청빈한 삶의 모범과 영적 깊이는 이 모든 결점을 덥고도 남는다.

  이 탁월한 신앙생활 안내서는 초신자뿐만 아니라, 새신자가 되고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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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8-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철 목사님 책이군요. 저도 너무 헌신자가 되었어요. 다시 새신자가 되고파요^^ 이 책도 일단 보관함에 들어갑니다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양장) 믿음의 글들 176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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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참 여러 번 읽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도 나고, 하루에 한 장씩 깊이 읽으며 한 달여 동안 경건의 시간을 했던 기억도 나며, 강의 준비를 위해 여러번 들쳐 보았던 기억도 난다. 내가 삼독 사독을 해댄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존 스토트의 책들도 재독이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이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 작가 특유의 감각을 가지고, 탄탄한 문학성을 바탕으로, C.S 루이스는 영적세계를  쉽고 재미 있고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그의 영적 깊이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았던 그가 회심 이후 경험한 신앙의 세계가 그만큼 확실하고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영적 통찰력'에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명료하고 생생한 문체로 그려낸 영적 세계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사탄의 존재와 활동과 영향력을 간파하지 않고서, 성숙한 신앙을 갖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누구나 C.S루이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C.S 루이스의 모든 책은 재독, 삼독의 가치가 있다. 영성과 문학적 표현력, 인간과 세계이해에 엄청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책은 더더욱 통찰력이 깊다. 제안하기는,이 책을 재미 있다고 단번에 읽지 말고, 한 장 한 장 곱씹어 읽고 묵상하며 신앙생활에 응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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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8-0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습니다.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님을 통해서 좋은 신앙 서적을 많이 소개받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즈 2005-09-26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읽고 싶어지군요. 담았다가 읽어봐야 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