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참으로 영광스럽고 자부심이 넘치는 신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이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엄연히 세상 속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지만 당연히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야 하며 다른 구성원들이 겪는 모든 문제를 함께 겪어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견뎌내야 할 현실은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렵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세상은 우리를 결코 가만 놔두질 않는다. 유혹하고 위협하고, 심지어 조롱하고 핍박하기까지 한다.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려면 세상을 간파하고 세상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절실하다.
음란하고 죄 많고 믿음이 없는 세대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막 8:38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막9:19
예수님은 당시의 세대를 “음란하고 죄 많고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규정하셨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세대에게만 국한되는 현상이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도 여전히 음란과 죄가 넘쳐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만 연결해 보라. 음란과 죄가 넘실거리는 현장을 어렵잖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예수님의 책망은 어떤가. 믿음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주님의 탄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교회가 넘쳐나고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정작 주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만나보기 힘들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음란과 죄로 가득하며,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만 놔두질 않는다. 깨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음란과 죄에 휘말려 믿음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12:2
신약성경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가르친다. 어떻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막12:24
우리가 잘 못 생각하고, 잘 못 판단하고, 잘 못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에 잘 못 생각하고 잘 못 살아간다. 방향도 없고 기준도 없다. 음란과 죄에 휩쓸려 간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대의 풍조를 간파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며, 그 안에 믿음이 있을 리 없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나도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악하고 음란하고 믿음 없는 세대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면 우리는 성경을 열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는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 있고, 삶의 바른 방향을 정할 수 있으며,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관계장애의 시대
에이즈나 암도 무서운 병이지만 현대의 가장 무서운 병은 관계 장애이다. 육체의 질병은 자신만 죽지만, 관계 장애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심지어 제 삼자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장애는 우울증과 자살율과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줄어들고 있으며, 진관계(眞關係)의 부재로 인한 사회 병리 현상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관계 장애자들이 의외로 많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울리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하고, 친구가 되지 못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하소연을 여러 관계에서 많이 듣게 되는 이유이다.
신앙은 관계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며,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친구가 되고, 서로 사랑해가는 과정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관계 장애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만일 본인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주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점검해야 하며, 주님과의 관계가 어렵다면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제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마16:12.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마17:13
제자들은 주님과의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막혀 있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제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들었고, 그 때마다 주님은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며 한탄하셨다.
오늘날도 주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영적 관계 장애에 처해 있는 제자들이 적지 않다. 주님과 의사소통하지 않는 제자들은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기 힘들다. 반면에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며 자신을 알아가고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관계 장애를 극복해 갈 수 있다. 주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회복해 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관계는 의사소통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서 깊어지고 성장한다. 주님과 원활하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원활하게 관계를 맺어간다. 이를 위해서 성경을 읽고 깨닫는 훈련,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훈련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깨달아 순종하고 그 열매를 맛보며,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관계는 성장하게 된다.
부실공사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마7:24-27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이 쉽게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일정량 이상 더 쌓아올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왜 성장하지 못하고, 조그만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가? 왜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기초로 여기지 않고 10년, 20년 동안 교회에 나온다고 한들, 그의 삶이 변화되고 성장할 턱이 없다. 10년, 20년 교회에 붙어있기도 힘겨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초로 튼튼하게 박혀 있지 않으면 삶의 기준이나 원칙은 세워질 수 없을 것이고, 삶의 기준과 원칙이 없으면 되는 대로 살게 될 것이며, 되는 대로 살다보면 삶도 신앙도 세속의 비바람에 쉽사리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생존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도인
싱가폴에 가면 피어스 레저바라고 하는 정글이 있는 야외공원이 있다. 그 공원 한 편에는 특이한 푯말이 하나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 푯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곰에게 먹이를 주면 벌금 1만 싱가폴 달러”
1만 싱가폴 달러는 우리 돈 약 700만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도대체 왜 곰에게 먹이를 주면 이토록 많은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 관광객 한 명이 안내원에게 질문을 했다. “왜 곰에게 먹이를 주면 이토록 많은 벌금을 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안내원은 “여기는 야생 동물원인데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데 익숙해진 곰들이 스스로 먹이 찾는 능력을 상실해서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죽은 곰들을 공원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푯말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곰이 스스로 먹이 찾는 능력을 상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스스로 말씀을 열어 영적 양식을 찾아 먹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도 죽을 수밖에 없다. 설교자가 던져주는 말씀을 받아먹는데 익숙해져서, 스스로 말씀을 열어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오래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기생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스스로 말씀을 찾아 먹고 성장해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유기(遺棄)된 특권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롬5:1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엡2:13
우리는 이미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구원은 엄청난 사건이다. 완벽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 특권을 활용하지 않는다. 너무나 큰 손실이다. 엄청난 부자를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면서도 배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치며 굶어죽어 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미련한 짓이란 말인가.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언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받고, 삶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고, 위로를 받고, 평화와 은총을 받아낼 수 있다. 더 이상 특권을 유기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