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staff님에게 댓글을 달고 내 기억을 못 믿겠어서 민음사 '죄와벌' 1권의 3부를 다시 읽었다. 


1. 라주미힌은 술에 완전히 취했으며, 두냐(아브도치야의 애칭) 와 악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라주미힌은 이례적으로 흥분해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를 집에다 데려다 주던 반시간 전만 해도 스스로도 의식했듯 쓸데없이 수다만 떨어 댔지만, 또 이날 저녁에 술을 죽도록 많이 마셨지만, 그럼에도 기운이 펄펄 넘치고 기분도 거의 상쾌한 편이었다. (중략) 그는 두 여인과 함께 서서 그들 둘의 손을 꼭 잡고 그들을 설득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놀라울 만큼 노골적으로 풀어 놓았으며 더욱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그랬겠지만, 말을 할 때마다 거의 매번 그들 둘의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정말 꽉 쥐어짜듯이 움켜쥐었고 그러면서 전혀 쑥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아브도치야 로마노브나를 집어삼킬 듯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은 손이 너무 아파서 이따금씩 그의 큼직하고 울퉁불퉁한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채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더 움켜쥐며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2. 술에 취해 완전히 맛이 간 라주미힌은 두냐의 손에 키스하고 싶다고 땡깡을 부린다. 


  "그렇다고요?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당신은 정말...... 정말......" 그는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선과 순수와 이성과...... 완벽의 본원입니다! 손을 좀 주십시오. 제발요...... 어머님 손도 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두분의 손에 키스하고 싶습니다. 지금 무릎을 꿇고서!"

  그러고선 보도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었는데, 다행히도 마침 아무도 없었다.



3. 불행히도 다음날 모든 것이 기억나 괴로운 나머지 벽돌을 부수는 라주미힌


  이튿날 7시가 지났을 무렵 잠에서 깬 라주미힌은 뭔가 켕기고 심각한 기분이었다. (중략) 그는 어제의 일을 아주 작은 세부사항까지 전부 기억했으며 자기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어떤 느낌을 받았음을 깨달아 갔다. (중략) 가장 끔찍한 기억은 그가 어제 '천하고 추하게' 굴었다는 점인데, 비단 술에 취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두냐의 처지를 이용하여 그 처자가 버젓이 앞에 있건만 바보처럼 성마른 질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녀와 약혼자 간의 관계나 여러 정황은 물론 숫제 그 사람 자체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약혼자를 욕한 것이 문제였다. (중략) 이쯤 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주먹을 힘껏 휘둘러 부엌의 페치카를 내리쳤으며, 자기 손에도 상처를 내고 벽돌도 한 장 부숴 버렸다.



4. 라주미힌이 약혼자가 준 것으로 생각했던 물건은 목걸이가 아니고 시계다.

(목에 걸려 있었던 것만 기억나서 목걸이로 착각) 


그녀는 가느다란 베니스 체인에 끼워져 목에 걸린 멋진 에나멜 금시계를 보며 이렇게 외쳤는데, 그녀의 차림새에 지독히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약혼자의 선물이군.' 라주미힌은 생각했다.


  "너는 전혀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있어! 조시모프가 간다고 너까지 그냥 가냐. 가지 마...... 한데 몇시지? 12시인가? 너, 시계 한번 근사하다, 두냐! 왜 또 다들 입을 다물고 있어? 계속 나만, 나만 얘기하고......!"

  "이건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선물이야." 두냐가 대답했다.

(중략)

  '그러니까 약혼자가 준 선물이 아니었구나.' 라주미힌은 이런 생각이 들었고, 왠지 기뻤다.



5. 석영중 교수의 '죄와 벌' 강연

주말동안, 강연 들으면서 아주 잘 잤다. 석영중 교수님 목소리 듣다보면 안 졸리다가도 깊은 잠으로 빠질 수 있다. 

어찌나 열심히 잤는지 이번 주말 내내 들었는데 아직도 1부를 온전히 못들었다는.

https://tv.naver.com/v/658439

https://tv.naver.com/v/658469


6. 석영중 교수님이 연재하신 '맵핑 도스토옙스키' 중 제일 재밌었던 회차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297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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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작년 불행한 사건이 연거푸 일어나 스스로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어, 유쾌한 책을 찾다가 읽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러시아 혁명 후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된 로스토프 백작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 백작이었던)이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인 수양 딸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선하기 때문에 심각한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응당 찾아오기 마련인 내적 고통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근데 너무 즐겁고 유쾌하게만 읽어서 그런지 책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누군가 읽는다면 물론 추천은 하고 싶지만 말이다. 


  난 미국 사람들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동경에 항상 의구심을 품어왔다. 특히 그들이 영국 왕실에 대해 보이는 관심과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데, 아니 미국을 식민 통치했던 나라 왕자 공주를 그렇게 환장하고 좋아하고 싶나? 싶은 거다. (심지어 영국 왕자들은 죄다 대머리에  동화 속 왕자님처럼 잘생기지도 않았잖아.) 이게 얼마나 이상한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왕실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보면 될 것이다. 


  내가 뜬금없이 왜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책이 특이하게도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에이모 토울스가 썼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과거 러시아에 대한 미화와 막연한 향수가 두드러진다. 미국이 한때 러시아와 박 터지게 경쟁했지만, 역사에 있어서 만큼은 러시아에 큰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미국 사람이 쓴 소설답게 결국 주인공이 고국 러시아를 배반하고 미국으로 탈출하긴 하지만.


  오래전 신문에서 어떤 프랑스 건축가가 중국에 거주하며 쓴 글을 옮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프랑스 건축가는 중국이 도시 개발을 위해 청나라 때 지어진 (서양인이 보기에 멋진) 건물을 하루에도 몇 채씩 파괴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가끔 우리나라에도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서양 백인들 많으니까.. 아마 같은 맥락이겠지.


  그런데 난 솔직히 서양인들이 동양에 있는 멋지고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게 참 웃기다. 정작 자기네들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남의 나라에 가서 온갖 약탈과 파괴와 학살과 강간을 일삼았으면서, 중국이 자국에 있는 청나라 건물을 불도저로 밀고, 우리가 조선시대 목조 건물을 다 때려 부수는 걸 왜 그렇게 안타까워하느냔 말이다. 하여튼 1세계 서양 것들은 하나같이 다 재수가 없다. ㅋㅋㅋ 이렇게  또 역시 사람은 서양 책만 읽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겨본다.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난 조국의 과거에 대해 미련도 동경도 없고 매력도 전혀 느끼지 못함을 확인했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 수도 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무렵 우리나라는 여자를 동물과 사람 중간쯤으로 취급하던 시기였으므로 더더욱 싫다.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립지 않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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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 책 정말 좋았다. 아무래도 서양 소설에 익숙하다 보니, 중국 고담에서 유래한 소설들이 실린 이 책에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다 보니 모든 작품이 다 재밌었다. (특히 난 한자 바보라 한자 하나하나 찾아보는 게 좀 힘들었다. ㅜㅜ) 내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독서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도 하고 앞으론 동양권 책도 많이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다짐대로 안될 확률이 높지만.


  제일 좋았던 작품은 '제자'. 공자 이야기라면 다 지겨울 줄 알았는데 웬걸. 재미도 있고 여운도 길었다. 긴 시간 공자의 옆에서 수양을 한 수제자이지만 끝내 어린이다운 순수를 간직했던 인물 '자로'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이릉'에 등장하는 '소무'도 좋았다. 고국인 한나라로 돌아갈 기약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항복하지 않고 오지에서 들쥐를 잡아먹으며 유배생활을 이어가는 '소무'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사람이 죽도록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는 것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사람을 버티게 해줄 것인가. 나같은 경우는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편인데. '소무'는 아마도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기다렸으리라... 추측해본다. 

  작년에 힘들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을 했는데, 결국 유산했던 일이 생각나는 바람에 '소무' 이야기 읽다 혼자 전철에서 울었다. 울면서 위로도 받았기 때문에, 나에겐 참 시의적절했던 책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작가가 식민지 조선의 용산에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그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당시 생활상의 묘사가 인상깊다.

  이 책이 너무 좋아 나카지마 아쓰시 책을 더 찾아읽으려고 보니 작가가 30대에 요절하는 바람에 '산월기'에 실린 소설이 그의 소설의 거의 전부인 듯 하다. 아쉽다. 더 살았으면 더 좋은 소설을 많이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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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가 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와 작품의 수준 이런 거 다 떠나서 일단 그의 소설은 너무 재미있다. 이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을 미천한 내가 이제서야 제대로 완독을 하였는데, 세상에 역시 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긴 소설이 어떻게 한 시도 빠짐없이 재밌을 수 있는지.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절친 라주미힌이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예감하는 장면인데, e-book이라 찾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읽어보려고 어렵게 찾아서 적어둔다.


  라스콜니코프는 복도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뛰어나올 줄 알았어." 그가 말했다. "저들에게로 돌아가. 저들과 함께 있어 줘...... 내일도 저들 곁예 있어 주고...... 항상 그래 줘. 나는 ...... 올지도 모르겠군...... 그럴 수만 있다면. 잘 있어!"
  그러고는 손도 내밀지 않고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대체 어딜가? 왜 이래? 아니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안이 벙벙해진 라주미힌이 중얼거렸다.
  라스콜니코프는 한 번 더 걸음을 멈추었다.
  "이걸로 영영 끝이야.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묻지 마. 대답해 줄 것이 전혀 없어...... 나한테 오지도 마. 내가 이리로 올 테니까...... 나를 좀 내버려 두고, 저들은...... 내버려 두지마. 내 말 알아듣겠어?"
  복도는 어두웠다. 그들은 램프 옆에 서 있었다. 잠깐 동안 그들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라주미힌은 평생을 두고 그 순간을 기억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불타오르는 듯 집요한 시선이 순간순간 강렬해지는가 싶더니 그의 영혼을 의식을 꿰뚫어 버렸다. 라주미힌은 갑자기 몸서리를 쳤다. 뭔가 이상한 것이 그들 사이를 지나간 것 같았다...... 어떤 생각이 암시처럼 스쳐 갔다. 뭔가 끔찍하고 흉악한 것이, 갑자기 둘 다 이해할 수 있을 법한 것이...... 라주미힌의 얼굴이 망자처럼 창백해졌다.


  소냐갸 돌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걸어 나오는 나사로가 등장하는 성경 구절을 읽어주며 라스콜니코프에게 광장 바닥에 입을 맞추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라고 말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왜 작가는 나사로가 걸어나오는 장면을 인용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아마도 소냐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면 주님이 그를 용서해줄 것이고, 한번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이 라스콜니코프도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고 혼자 이해했다. 너무 단순한 해석일 수 있지만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을 발표할 당시 일개 소설가 주제에 감히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러시아 기독교 관계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하긴, 소설 속에서 소냐가 성경을 안 읽었다면 감동은 엄청 반감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기독교 관계자들도 너무 웃긴 게, 도스토예프스키만큼 독실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도 없는데 그거 조금 인용했다고 공격을 하다니. 참내. 


  소설과 전혀 상관없지만, '죄와 벌'을 읽고 내 소설 인물 중  이상형 1위가 '전망 좋은 방'의 조지에서 라주미힌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라스콜니코프를 도와주려고 의욕도 없는 사람한테 자꾸 번역하라고 일감을 주고,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노상 활달한 라주미힌이 참 피곤했는데 읽다 보니 그가 너무 착하고 귀엽고 진심으로 여자를 위하고 사랑할 줄 아는 남자라서 좋아졌다.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아브도치야를 보고 첫눈에 반한 라주미힌이 아브도치야의 목에 걸려 있는 비싼 목걸이를 보며, 저것은 그 부자 약혼자라는 사람이 준 것이겠지...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하다가, 가정 교사로 있던 귀족 집안의 부인이 준 것이라는 걸 알고는 속으로 기뻐하는 장면이나 길을 걷다가 아브도치야 생각이 나자 갑자기 골목을 막 내달리는 장면을 보며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심정을 별 거 아닌걸로 어쩜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한 가지, 집안 사정 때문에 거리의 창녀가 된 소냐에 대해 작가가 전혀 불순한 의도를 갖지 않은 점이 참 신기했다. 가끔 남자 작가들 책 속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화가 날 때가 많은데,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여자 인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너무 길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진 않아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역시... 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가. 그의 소설 중 안 읽은 게 더 많으니 내가 그의 팬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하여튼 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다.

  '죄와 벌' 읽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2014년 독일 왕복 이후로 내 인생 다신 장거리 비행은 없다 결심했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못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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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2-13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라주미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 참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진짜 생각해볼 만한 인물입니다. 읽을 때는 그냥 스윽 지나갔었는데요. 와우, 눈 좋으세요!
저도 장거리 비행은 로또 맞아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기 전까지는 절대 안 할 겁니다. 아주 질려버렸습니다. 여태 출장 가라고 할 때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끝까지 도망다니다 어쩔 수 없을 때만 가고 그랬습지요. ^^;;

케이 2020-02-13 11:46   좋아요 1 | URL
라주미힌이 술에 알딸딸하게 취해 아브도치야를 만나 악수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막 가슴이 뛰고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으면서 아브도치야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는데요. (심지어 아브도치야가 손이 아프다고 하는데도) 다음날 그가 아침에 일어나선 내가 왜 그랬을까! 멍청이 같이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장면은 2020년 어제 밤 술에 취했던 한국의 모대학교 3학년 남학생이 썼다고 해도 믿을만큼 생생하답니다. ㅋㅋㅋ 너무 귀여운 인물이예요.
저도 장거리 비행은 정말 질려버렸습니다. 大자로 침대에 누워 비행하는 게 아닌 이상 이젠 엄두를 못내겠어요. 글자 그대로 그때 비행하다 죽다 살았거든요. ㅋㅋ 누가 공짜로 비행기 태워준다고해도 못탈 것 같아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무척 우울했다. 엄마가 한창 아프실 땐 수술, 항암, 입원, 각종 검사 등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막상 엄마가 항암까지 다 마치고 나니 허무했다.

   나는 남들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오히려 내 곁에 있으려는 사람이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때도 많았다. 이런 기질을 타고난 나는 평생 너무 별 볼일 없어 남들 보기에 딱한 사람으로 충실히 늙어 결국 고독사하여 죽은 지 한 달 넘은 썩은 시체로 발견되리라 생각했다. 자기 연민이 너무 과해서 지금 생각하면 추할 지경이지만, 어쨌든 그 시간도 지나왔다. 
   당시 뇌가 고장 난 거 마냥 만사 다 비관적이었던 내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더블린 사람들' 이었다. 그런데 작년 2019년에도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 속의 보잘것 없고 용기 없는 사람들을 보며 어려운 시간을 견뎠다. 내 곁에는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남편이 생겼고 비록 많이 아프지만 여전한 엄마도 있고 또 세명 남짓의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망을 극복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나에겐 거의 유일하게 책만이 위로가 된다. 책을 엄청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왜 날 위로할 수 있는 건 책뿐인지....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신나는 일 하나 없이 세월을 보내고 또 아무도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윌리엄 트레버 단편소설 속의 인물들.
윌리엄 트레버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딱 한 명은 이런 사람들한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냐고 말하며 그들을 다독거려 주는 듯하다.

다음은 각 소설별 단상. (오래되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한 적어보련다)

 

1. 욜의 추억 - 첫 소설부터 반했다.
2. 탁자 - 가구가 나와서 그런지 로알드 달의 '목사의 기쁨' 이 좀 생각났다.
3. 펜트하우스 -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다. 사람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더 슬픈 건 대부분의 경우 밟힌 사람은 정말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는 거다. 대학시절 혼자 자취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집에 남자기 있는 척하고, 친척과 같이 산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읽는 내내 화가 났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영국이건, 한국이건 비슷한 건가.
4. 탄생을 지켜보다 - 난임병원을 1년 남짓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해보니 왜 이 소설 속 부부가 미쳐버렸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5. 호텔 게으른 달 - 다시 말한다. 이 세상의 인간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힘도 없고 늙은 부부가 속수무책으로 재산을 빼앗기는 이야기.
6. 마흔일곱 번째 토요일 - 음... 난 이런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 속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유일한 이유가 뭔가. 그냥 젊은 여자랑 주기적으로 자고 싶어서 아닌가. 현실에 이런 남자가 엄청 많을 거라는 거 안다. 그런데 난 소설로까지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다. 여자한테 너무 감정이입을 하며 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7.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 - 엘리너가 잘못 될까 봐 조마조마하며 봤다. 엘리너야 잘했어. 다행이야.
8. 로맨스 무도장 - 책에 실린 단편 소설 중 어떤 소설이 제일 좋았을까 많이 고민했고 후보가 많았지만 난 '로맨스 무도장'을 최종 1위로 선정하였다. (아무도 안 알아줌 ㅋㅋ) 결국 브리디는 죽을 때까지 다리 없는 아빠를 돌보며 쓸쓸하게 살겠지. 정해진 결말에 맞춰 살 수밖에 없는 가엾은 브리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9. 오, 뽀얀 뚱보 여인이여 - "남편이 좀 이상한 거 같으십니까. 참고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서 도망치세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다가 맞이한 파국. 그리고 너무나 안일했던 뚱보 여인 때문에 희생된 불쌍한 아이... 기숙 학원에서 공부하다 과로로 끝내 죽는 아이가 불쌍한 한편으론, 영국 놈들 한국 고3들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얘기 들으면 기절하겠단 생각했다. (실제로 예전에 영어학원 다닐 때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영어 선생님한테 나 고3 때 아침 7시까지 학교 도착해서 밤 10시반까지 공부했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몇 번을 물으며 엄청 놀라더라)   
10. 이스파한에서 - 이 소설도 1위 후보 중 하나였다.난 불쌍하고 처량한 남자 이야기가 좋더라. 당신이 끝내 여자를 거절한 마음도 난 이해한다우. 
11. 페기 미한의 죽음 - 난 어린이들의 외로움에 많이 약한 거 같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고 눈물이 났던 소설.
12. 복잡한 성격 - 정말 뻔뻔한 불륜 커플. 애트리지가 다 뒤집어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13. 오후의 무도 - 1위 후보 중 하나였다. 난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끝내 용기 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한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대부분은 그렇잖아. 다 버리고, 즉흥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 거의 없잖아..
14.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 이 소설집에서 가장 직접적 메시지를 가진 소설. 윌리엄 트레버의 조국이 아일랜드임을 환기시킴.
15. 결손가정 - 세 번째로 말한다. 이 세상의 인간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조용히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 등쳐먹을 생각하지 말고. 여든일곱의 죽을 날 머잖은 할머니한테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16. 토리지 - 영국의 사립 남자 고등학교는 왜 다 그 모양이냐는. 소설과 영화 다 통틀어봐도 도대체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적이 없다.
17. 예루살렘의 죽음 - 너무 오랫동안 시골에 처박혀 자기를 희생해가며 살면 결국 주인공인 프랜시스처럼 사고하게 되겠지. 안됐다.. 안됐어.
18. 그 시절의 연인들 - 나는 의외로(?)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륜 이야기가 모든 소설과 영화의 영원한 주제임은 인정하지만, 나는 정말 웬만한 불륜 이야기에는 큰 흥미를 못 느낀다. 물론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를 읽으면서는 미친 여자처럼 눈물을 펑펑 흘렸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불륜, 싫어하는 불륜에 어떤 기준이 있는진 나도 모르오....
   애석하게도 난 현대문학이 표제작으로 꼽은 소설 '그 시절의 연인들'에도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난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에 거부감이 좀 심한데 결국 이 감정의 장벽을 끝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10대부터 30대인 지금까지 쭉 늙은 남자에게 단 한 번도 이성적 사랑 혹은 호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제레미 아이언스급 노인이라고 해도 젊고 잘생긴 남자에 비하겠나.)
  내 취향 얘기는 그만하고 또 이 소설에 큰 감동을 못 받은 두 번째 이유는 결말 때문이다. 늙은 남자는 20대의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결국 그는 후진 집에서 부대끼면서 살기 싫어서 전처랑 재결합하지 않나. 이런 이유로 난 이 소설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단 누군가를 사랑해도 현실적 조건이 우선 아니겠냐는 결론에 도달해버렸다. 그리고 그 젊은 여자도 늙은 여자를 그리워할까? 난 아닐 거라 생각한다.
19. 멀비힐의 기념물 - 이 책에서 재미로만 따지면 제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 소설.
20. 육체적 비밀 -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별 불만 없다면야... 서로 윈윈이지만. 근데 꼭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요 부인? 난 잘 모르겠소.....
21. 또 다른 두 건달 - 제임스 조이스 얘기 나와서 반가웠다.
22. 산피에트로의 안개 나무 - 1위 후보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을 내가 엄청 좋게 읽은 걸 보면 불륜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기준은 정말 모르겠는데 일단 늙은 남자 젊은 여자 조합이 싫은 건 확실하다. 아련하고 아름다운 소설.
23. 삼인조 - 이 소설의 '삼촌' 보며 전 회사 사장님 생각났다. 만인한테 친절하고 인자하지만 기본 전제는 '너는 내 밑이고 나를 대접해야만 한다'인 사람이었는데, 은행 같은데 가서도 직원들한테 항상 공손히 인사하고 친절하셨다. 그런데 딱 한 번 은행 직원들이 일어나서 자기를 모시러 오지 않는다고 주거래 은행을 바꿔버렸다. 여기 소설에 나오는 삼인조들도 강압적이고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삼촌의 호위 따위 다 무시하고 스스로 독립하고 거듭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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