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화장대가 있는 잡동사니 방에는 우리 엄마 아빠가 50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가 암과는 거리가 멀던 시절, 카메라만 갖다 대면 무표정이었던 우리 엄마가 희미하게 웃고 찍은 사진이어서 책장에 두었다.
며칠 전 우리 첫째가 화장대 뒤에 서서 그 사진을 보더니
"엄마, 외할머니 보고 싶어?"라고 물었다.
그래서 "그럼~~ 보고 싶지."라고 답했더니
"그렇다고 보러 가면 안 돼. 사진으로만 봐."
라고 나에게 당부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찡해졌다.
이제 2월이 되면 겨우 48개월이 되는 어린 애인데, 평소에 애들을 과소평가했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모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 나의 나쁜 면들.
제일 대표적인 건 아마도 내 목소리 크기일 것이다.
난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 지를 수 있는 인간인 거 애 낳기 전엔 미처 몰랐다.
또 나는 내가 이렇게 가시 돋친 말을 잘하는 인간인 것도 몰랐다.
예를 들면 "너 다른 엄마한테 키워달라고 해!! 엄마는 너 같은 애 못 키워." 같은. (반성합니다)
어쩌면 나는 이 아이들은 나를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걸 알기에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닐까.
애를 낳기 전에는 나는 애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김소영 작가를 보니 애를 정말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내 애뿐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애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애를 절대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작가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애를 정말 사랑하는 김소영 작가님의 다른 책도 다 구해서 읽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찔렸던 건 애들한테 "천천히 해."라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한 것인데, 오늘 아침만 해도 난 빨리빨리라는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빨리 일어나. 빨리 씹어. 빨리 와, 빨리 신발 신어. 빨리 제발 빨리!!!
근거리 거주 건강한 친정 엄마의 도움이 전혀 없이 애 둘 등하원 다 시키는 나보고 대단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우리 어린이집 맞벌이 부부 중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는 사람 나밖에 없음) 사실 지금 이 바빠 미쳐버리겠는 일상을 버텨주는 건 언제나 날 참아주고 용서해 주는 애들 덕분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잠시나마 했다.
내일 아침 되면 또다시 빨리빨리빨리!!!! 늦었어!!!!라고 소리칠 가능성이 높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