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작년 불행한 사건이 연거푸 일어나 스스로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어, 유쾌한 책을 찾다가 읽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러시아 혁명 후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된 로스토프 백작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 백작이었던)이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인 수양 딸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선하기 때문에 심각한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응당 찾아오기 마련인 내적 고통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근데 너무 즐겁고 유쾌하게만 읽어서 그런지 책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누군가 읽는다면 물론 추천은 하고 싶지만 말이다. 


  난 미국 사람들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동경에 항상 의구심을 품어왔다. 특히 그들이 영국 왕실에 대해 보이는 관심과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데, 아니 미국을 식민 통치했던 나라 왕자 공주를 그렇게 환장하고 좋아하고 싶나? 싶은 거다. (심지어 영국 왕자들은 죄다 대머리에  동화 속 왕자님처럼 잘생기지도 않았잖아.) 이게 얼마나 이상한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왕실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보면 될 것이다. 


  내가 뜬금없이 왜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책이 특이하게도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에이모 토울스가 썼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과거 러시아에 대한 미화와 막연한 향수가 두드러진다. 미국이 한때 러시아와 박 터지게 경쟁했지만, 역사에 있어서 만큼은 러시아에 큰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미국 사람이 쓴 소설답게 결국 주인공이 고국 러시아를 배반하고 미국으로 탈출하긴 하지만.


  오래전 신문에서 어떤 프랑스 건축가가 중국에 거주하며 쓴 글을 옮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프랑스 건축가는 중국이 도시 개발을 위해 청나라 때 지어진 (서양인이 보기에 멋진) 건물을 하루에도 몇 채씩 파괴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가끔 우리나라에도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서양 백인들 많으니까.. 아마 같은 맥락이겠지.


  그런데 난 솔직히 서양인들이 동양에 있는 멋지고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게 참 웃기다. 정작 자기네들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남의 나라에 가서 온갖 약탈과 파괴와 학살과 강간을 일삼았으면서, 중국이 자국에 있는 청나라 건물을 불도저로 밀고, 우리가 조선시대 목조 건물을 다 때려 부수는 걸 왜 그렇게 안타까워하느냔 말이다. 하여튼 1세계 서양 것들은 하나같이 다 재수가 없다. ㅋㅋㅋ 이렇게  또 역시 사람은 서양 책만 읽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겨본다.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난 조국의 과거에 대해 미련도 동경도 없고 매력도 전혀 느끼지 못함을 확인했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 수도 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무렵 우리나라는 여자를 동물과 사람 중간쯤으로 취급하던 시기였으므로 더더욱 싫다.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립지 않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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