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 책 정말 좋았다. 아무래도 서양 소설에 익숙하다 보니, 중국 고담에서 유래한 소설들이 실린 이 책에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다 보니 모든 작품이 다 재밌었다. (특히 난 한자 바보라 한자 하나하나 찾아보는 게 좀 힘들었다. ㅜㅜ) 내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독서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도 하고 앞으론 동양권 책도 많이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다짐대로 안될 확률이 높지만.


  제일 좋았던 작품은 '제자'. 공자 이야기라면 다 지겨울 줄 알았는데 웬걸. 재미도 있고 여운도 길었다. 긴 시간 공자의 옆에서 수양을 한 수제자이지만 끝내 어린이다운 순수를 간직했던 인물 '자로'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이릉'에 등장하는 '소무'도 좋았다. 고국인 한나라로 돌아갈 기약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항복하지 않고 오지에서 들쥐를 잡아먹으며 유배생활을 이어가는 '소무'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사람이 죽도록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는 것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사람을 버티게 해줄 것인가. 나같은 경우는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편인데. '소무'는 아마도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기다렸으리라... 추측해본다. 

  작년에 힘들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을 했는데, 결국 유산했던 일이 생각나는 바람에 '소무' 이야기 읽다 혼자 전철에서 울었다. 울면서 위로도 받았기 때문에, 나에겐 참 시의적절했던 책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작가가 식민지 조선의 용산에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그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당시 생활상의 묘사가 인상깊다.

  이 책이 너무 좋아 나카지마 아쓰시 책을 더 찾아읽으려고 보니 작가가 30대에 요절하는 바람에 '산월기'에 실린 소설이 그의 소설의 거의 전부인 듯 하다. 아쉽다. 더 살았으면 더 좋은 소설을 많이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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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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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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