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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최민식, 황정민이 주연한 영화 <신세계>는 내가 드물게 두번 본 영화이다 이정재는 조직폭력배에 잠입하여 오랜세월을 견뎌 넘버2까지 오른 비밀경찰이다 하지만 이정재는 자신이 경찰인지, 깡패인지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는 이야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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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란 만화책을 보면 등장인물중 경찰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경찰인지, 조직폭력배인지 혼동스럽다는 이야길 한다 이를테먄 자아정체성(self identity)에 대한 질문이다 작가는 영화 <페이스오프>등의 영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신세계>패러디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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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출신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이런 자아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작품의 이야기는 이슬람학교 교사, 성직자, 일반적으로 지식이 넓은 이를 부를 때 쓰는 ‘호자’(17세기 오스만 제국인물)와 노예로 끌려온 이탈리아 베네치아인 ‘나’, 그리고 군주로 불리는 ‘파디샤’가 등장한다 여기서 호자는 동양을 상징하고, 노예인 나는 서양을 상징한다 노예인 <나>는 호자와 한집에 살면서 많은 지식을 서로 주고 받는다 <호자>는 나를 통해 상호성장하면서 어린 파디샤의 후원과 인정을 받아 황실점성술사의 자리까지 이르게 된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호자와 나>의 관계는 기름과 물처럼 섟이지 않을 것 같은 분리, 차별, 단절, 구별의 구도가 아니라 서로가 닮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호자)는 믿을 수 없을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28p)
작품의 초반부에 두 사람이 대면하는 장면에서 파묵은 서로가 닮았음을 이야기한다
‘호자가 내게서 배운것 만큼 나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어’(90p)
‘그 때 나는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그도 나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이었다’(105p)
‘난 너처럼 되었어 이제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아 나는 네가 되었어’(107p)
‘그는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되기를 원했다’(108p)
우리는 흔히 출신배경과 피부색과 삶의 모든 요소요소들을 따지면서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별점으로 부각시켜 서로 간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절반을 넘었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지기 이전 이승만은 미군정의 힘을 등에 업고 “빨갱이 소탕작전”을 거국적으로 펼친다 그 “빨갱이”이란 딱지 안에는 복합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독립군, 가난, 농경사회, 배고픔, 빈부격차, 혁명의지, 친일파청산...왜곡된 시각과 개인적인 사심이 넘치는 기득권의 나부랭이들은 빨갱이축출을 빌미로 염상구는 강동우의 아내 외서댁을 줄기차게 욕보여 임신까지 하게되고 이를 자랑삼아 온동네방네 나발을 불어대자 외서댁은 저수지에 자살소동을 벌인다 염상구가 독자를 더 기가 차게 만드는 것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외서댁의 남편, 강동우가 분명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자기가 빨갱이 강동우를 잡아 공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허출세는 빨갱이라 불리는 남편을 둔 마삼수의 아내, 몰골댁과 강동기의 아내, 남양댁을 수시로 겁탈하면서 그 행위를 빌미로 애들 끼니값으로 쌀을 살 수 있는 돈을 쥐어준다 이데올로기는 가정도 안중에 없게 만드는 괴물이다 물론 인물들의 성적 욕망이 캐릭터화 된 것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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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묵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차이와 구분을 강조하면 함께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해”(186p)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일은 우리가 했던 일과 앞으로 할 일이지요”
‘호자는 이제 ‘가르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연구하며, 함께 찾아야 하며, 함께 걸어가야 했다’(41p)
‘상대방보다 더 옳은지 그른지 더 행복한 지 또는 더 불행한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이들은 서로에 관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219p)
그리고, 그들은 옷을 바꿔 입는다
이 이야기는 <서로의 삶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호자와 나는 서로 종이 위에다 자신의 삶의 역사를 적는다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소통한다 마치 동서양이 서로 역사를 탐색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함께 글을 쓰는 것처럼 함께 거울도 볼건가?”(80p)
그 거울 앞에 섰을때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 닮았는지, 내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친밀함과 닮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옷을 바꿔 입어도 표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가 될 수 있는가?
‘<하얀 성>은 터키에 유입된 서양의학, 천문학, 무기제조 등 서양문물의 역사를 기술,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주변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하는 텍스트’(216p)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선정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문화간의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며 상징하는 두 인물, 호자와 노예를 통해 지구촌에 공존하는 인간, 인류가 얼마나 극명한 차이를 가지는가가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닮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