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을 억지로 짜냈다. 그리고는 동네 술집에 가서 맥주 한병과 마른안주, 담배 한갑을 시킨 후 이 책을 펼쳤으니 나도 울 준비는 한 셈이다. 술집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중년의 남자들 몇몇이서 호프집 여주인에게 언니, 이리 와서 언니도 한잔 해, 이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게 내 귀에 들렸으나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아무렴 어떠냐는 마음이었다. 울 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남편과 아이들의 전화는 울리고 운전 중이란 말로 적당히 전화를 끊고 맥주 두병을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음주운전이란 걸 했다.

거기 나오는 여자들도 남자들도 다 나랑 같은 족속들이다. 작가가 위에 쓴 내 얘기를 소재로 열세번째 단편을 써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들이 잘 쓴 건지 아닌지 그런 건 알 수 없다. 다만 나에게, 너만 추운 건 아니라고,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고 말하며 위로 비스무리한 걸 건넸으니 나는 그걸로 족하다.

슬픈 것은 말다툼이 아니라 화해라는 것을 안다 ㅡ 이 말이 가장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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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0-30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이 '울 준비는 되어있다'여서 '야! 이거 뭐냐?'라고 물었더니 울적하고 꿀꿀해서 서점에 들렸는데 갑자기 책이 자기를 잡아 끌어 사게됐다고 하더군요.
깍두기님도 울고 싶으신거.... 예요?

숨은아이 2004-10-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거.... 예요?

플레져 2004-10-3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쿠니의 모든 책이 그런것 같아요.
울랑 말랑 하는 사이에 있는 인물들이 나와요...
호프집에서 책 읽는 깍두기님의 등에도 어룽대는 "울 준비"가 보였을 것 같아요...

깍두기 2004-10-3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막상 이 책을 보면 눈물은 전혀 안나옵니다^^

불량 2004-10-3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혼자서 호젓하게 술 마실 수 있는 편한 술집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음주운전은 아니되어요...

깍두기 2004-10-3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다소곳하게)

로드무비 2004-10-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어제는 왜 그러셨어요?^^
그나저나 멋지구만요. 여기 이사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끔 해봤는데......(뭘?)

깍두기 2004-10-3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글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후유증으로 지금 일어났고 집안꼴은 엉망진창이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