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초등학교에 중간, 기말 평가가 부활해서 아이들을 시험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 학교는 그나마 한 학기에 한번 '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시험을 봐서 애들 부담을 덜어주긴 하는데
어차피 공부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직도 많다.
"초등학교 성적표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써주고
시험도 안보니 애들이 학력이 저하된다.
뭔가 배운 걸 확인할 꺼리가 있어야 할 게 아니냐"

지금 서울시 교육감의 철학이 딱 저거여서
학력신장 추진위원회니 뭐니 학교가 70년대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저런 식의 일제평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너무 싫다. 반대다, 반대.
애들이랑 주입식 수업 외에 다른 걸 하기가 진짜 망설여진다.
일단 교과서의 내용은 다 다뤄주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 문화재 수업을 한다고 할 때
예전 같으면 같이 책도 만들고(재진이가 잘 만드는 그런 작은 책) 모둠 활동 시켜서 발표도 하고
교실안에 박물관도 꾸미고
시끌벅적 재밌게 보낼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교과서 읽고 외우고 하면 시간이 모자란다.
더구나 주5일제인데 배우는 양은 줄지 않아 진도 나가기도 빠듯하다.
그러니 애들이 사회 시간을 엄청 싫어해서 교사 입장에서 죄스러울 지경.

더군다나 시험문제는 어디서 베껴올 수도 없고
문제집 문제 그대로 낼 수도 없고
학년에서 분담해서 내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그래도 한 학기 한번이지 중간, 기말 다 보는 학교는
문제 내다 세월 다 간다.
전체적으로 보는 시험이라 공신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검토하는 수고와 시간도 만만찮다.
문제 난이도도 신경써야 하고 신경 쓴다고 해도 그게 생각처럼 간단한게 아니라
너무 쉬우면 백점이 열명 스무명, 너무 어려우면 또 그건 그것대로.(아이구)

이번에 내가 수학문제를 냈는데
1학기에 너무 쉬워서 낭패였던지라(사실 쉽지도 않았는데 우리 학교 애들 수준이 너무 높다)
요번에는 좀 어려운 문제를 섞었더니
이번엔 너무 어렵다고 학부모들이 원성인 듯.
(그리고 그 폐해는, 성적이 안 나온 애들을 엄마들이 학원에 집어넣을 궁리를 벌써부터 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난 시험이 싫다.
공부시간이 지루해진다.
요점 정리 잘 해 주는 교사 훌륭한 교사, 이렇게 되기 정말 싫다.

애들이랑 놀고 싶단 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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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2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은 저도 딱 깍두기 님이랑 같은데.
(나중에 맘 변하면 안 되겠죠? 그럴까봐 너무 겁나요.)

paviana 2006-11-2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초딩들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전 한달에 한번씩 시험 보는 초등학교 다녀서 시험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시험 조금보는 학교가 최고에요..

라주미힌 2006-11-2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놈의 나라는 사육과 교육을 구분 못해요.

마태우스 2006-11-2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깍두기님 맘을 몰라주는지 나 원 참....

호랑녀 2006-11-2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번 살던 동네... 시험 안 보던 학교가 교장샘이 바뀌고 시험을 봤어요. 그랬더니 당장 동네 학원이 문전성시였지요.
안 보던 경시대회 보면 또 수학학원이 문전성시이구요.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보면 하고 안보면 안하는 게 문제 아닐까 싶어요.

깍두기 2006-11-23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맘 안 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나무님은 변하지 않으실 거예요.

파비아나님, 저도 어렸을 때 월말고사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거나 말거나 학원에 보내는 부모는 없었기 때문에
(보낼 학원도 없고)
애들이 이중으로 고통을 겪진 않았었죠.

라주미힌님, 글쎄 말입니다ㅡ..ㅡ

마태우스님, 제 맘 알아주시는 건 마태님으로 충분해요. 훗.

호랑녀님, 그래서 제가 이 동네 학원 장사시켜 준 것 아닌가 엄청 찝찝해요.
시험문제 어렵게 내는 바람에 말예요.

무스탕 2006-11-2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애들도 다음달 초에 시험봐요.
큰 애 1학년때는 시험 안봤는데 올해 작은애가 1학년인데 이녀석도 시험을 본다는군요 -_-
정말 시험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애들도 고생 엄마들도 고생..
아.. 선생님들도 고생하시는군나... ^^; (울 학교로 오셔서 문제 쉽게 내주시면 안될까요? 히히히)

산사춘 2006-11-24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닐 때보다 지금이 어머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더 일이 많아진 듯 합니다. 헉, 깍두기님은 이중고?

깍두기 2006-11-2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1학년도 시험을 보다니 그 학교는 좀 너무하네요. 불쌍한 것들....

산사춘님, 그렇진 않아요. 우리 딸들의 공부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그나저나 왜 이리 섹쉬하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