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고백] :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여배우는 세 명이 아니라 셋 중 하나이다. 위증에 얽힌 이야기다.
 
등  
극본가 가미야 가세이, 아내 고노 유리코, 여배우, 남자
줄거리
최고의 극본가인 '가미야 가세이'가 자신의 집에서 둔기로 머리를 맞고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잠적해버린 그의 두 번째 부인 '고노 유리코'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한 '여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한 여름 밤의 꿈] 제작 발표회장 근처에서 그녀를 봤다고 증언한다. 자신은 그녀를 증오하기 때문에 절대 착각할 리 없다며, '고노 유리코'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여배우'에게 '위증'의 냄새가 나는데……. '여배우'는 왜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고노 유리코'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었나?
 
 
극본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 극으로 나오는 부분으로 세 명의 여배우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등  
극본가 가미야 가세이, 여배우1 마키 아키코, 여배우2 가이자키 게이코, 여배우3 히라가 요시코, 남자
줄거리
최고의 극본가인 '가미야 가세이'가 호텔 정원에서 열린 티Tea 파티 도중에 독살당한다. 경찰은 그가 다음 작품인 [고백]의 주인공 후보로 논의된 '세 명의 여배우' 중에 한 명의 과거를 폭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그녀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연극 내용이 여배우의 인생을 토대로 변형되기 때문에 '세 명의 여배우'에게 연기를 시켜보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제작한 연극인지 알아본다. 과연, '그녀들' 중에 범인은 누구이고, 어떻게 그가 마신 홍차에 '독'을 넣었고, 증거를 숨겼을까?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 이제까지 나온 모든 인물이 이 한 편의 극에 등장인물이 된다.
 
   장
극본가 호소부치 아키라, 친구 구스노키 도모에, 여배우들, 남자, 젊은 남자 아키오, 나이 든 남자 등
줄거리
극본가인 '호소부치'는 친구 '구스노키'에게 빌딩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사망한 '젊은 여자'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는 그녀가 죽기 전에 웃었다고, 울었다고, 화가 났다고 각기 다른 진술을 펼치고, 그는 그 기이한 일을 토대로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라는 연극을 구상한다. '한 여자가 보이는 세 가지 얼굴'에서 그는 '세 명의 여배우'를 연상한다. 그리고 결말 부의 내용을 위해 친구인 '구스노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그 와중에 '유명한 여배우'가 호텔 정원에서 독이 든 와인을 마시고 숨진 사건이 발생하고, 그녀가 살해당한 것인지, 자살한 것인지, 사고를 당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의문 속에 빠져든다. 이것은 현실일까, 극일까? 배우는 모두 몇 명일까? 

………………………………………………………………………………………………………………………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요. 보신을 위해, 허영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무관심, 질투, 회유, 자비, 상식, 변덕. 이중 어떤 것이라도 거짓말을 할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지요.
 
가슴 속에는 분명 '사랑한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입에 올리는 순간 그건 거짓된 가면을 씁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할 어떤 느낌이 분명히 존재했을 가슴 속의 감정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내게는 지옥의 고통도 천국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다면 만족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손댄 죄로 지옥의 감옥에 평생 갇히는 거라면 그것이 나의 천국. 거기서 오래도록 고통을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윽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결된다는 쾌락으로 변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에 적지 않은 증오가 포함되어, 있고 물론 질투도 감추고 있습니다. 증오에는 사랑과 질투도 포함되어 있고, 질투에는 증오나 사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봄으로써 소비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보임으로써 소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언제 어느 때 뒤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밖에서 감상하는 눈과 안에서 감상당하는 눈을 가진 현대인은 그 두 가지 눈으로 항상 분열된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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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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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S.S.반다인' 등 [서양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동양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선 한 문장도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 '모든 문장은 등장인물에 대해 알려주거나 사건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글쓰기 법칙]을 완벽하게 충족한다. 그는 그만큼 영리한 글쓰기를 한다. 그게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추리장르를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라 여기는 내게, 추리만화에서 탐정이 [네모칸 밖의 단서]를 보고 범인을 알았다고 외치는 것은 [정정당당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리장르의 묘미를 [추리 그 자체]라고 여기고, 범인이나 트릭, 반전을 맞추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본격팬]으로썬 추리장르에서의 [정정당당함]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는 독자와 [정정당당]하게 대결에 임한다. 

 작가가 독자와 단서를 공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대부분 추리소설에서 나타나는 역할관계는 [작가]의 역할은 범인의 정체를 숨기는 [공범자]이자, [범인 은닉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향유하는 [독자]들은 범인을 밝히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에 이입된다. 그러니 단서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독자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에 다가가고, 종국엔 [사건의 진상]에 먼저 도달한다.

 그래서 작가가 즐겨 쓰는 방법이 [선입견에 의한 트릭]이다. 여기선 [초석 트릭]이라고 하나,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만약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고 치자, [그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라는 작가의 진술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수상하다]고 여긴다. 이미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이 아닌 [밤샘 조사때문에 피곤해서]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선입견]이란 게 참, 무섭다. [초석], 이렇게 생긴 [선입견]을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 [트릭]을 위한 주춧돌을 만드는 것이다.『방과 후』는 1985년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다. 미스터리 분야에 대한 좁은 식견으로 말하자면, 내가 지금껏 읽은 데뷔작 중에서 가히 최고라 평할 수 있다. [이것이 정녕 데뷔작이란 말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반의 [밀실 트릭]은 그렇게 대단치 않으나, 후반의 [초석 트릭]은 정말 대단하다. [밀실 트릭] 역시 [초석 트릭]을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살해 동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것은 아쉽다. 누구나 한 번쯤 [살의(殺意)]를 느낀다. 그것이 언제든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 생각하면 너무한 것인가. [당사자의 고통]이 그만큼이라면 동기로썬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살해]란 행위에 대해서까지 관대한 입장은 당연히 아니다. 작가가 던진 단서들을 조합해서 소설의 중반 쯤에, [범인]과 [공범]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앞서 읽은 동생에게 확인을 해봤는데 맞아도 맞다고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부분에 유난히 약해서 대단하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범인]과 [공범]의 위치가 살짝 어긋났었지만, 그의 [정정당당함]에 즐거웠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소개하면서 그의 작품에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을 거론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마지막 문장을 공개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주인공인 마에시마의 독백인 [아무래도 기나긴 방과 후가 될 것 같다]이다. 동생과 의견이 분분한 문장이었지만, 소설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고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문장들만 모아도 괜찮은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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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어수첩을 공개합니다
오자키 데쓰오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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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스테디 셀러『내 영단어장을 공개합니다』의 자매격으로,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숙어편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 저자인 오자키 데쓰오는 법학부를 졸업했지만, 국제 무역을 전공하고 현재 외국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서 영어와 접목했는지 알 수 있다.

 전공인 법률과 관련해 [미국의 헌법 역사]와 [법률 용어 사전]도 출간하고, 부전공인 무역에 관련해 [비즈니스 영어]에도 능통하고, [해외 여행 가이드]를 낼 정도로 외국의 문화에도 익숙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학습자를 돕는 쉽고 재미난 [영어 학습서]를 다수 집필했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집필한 영숙어 단어장이다. [영어 학습서]라고 단순히 [학습]에만 머물지 않고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쓰여 있다. 첫 장인 [숙어를 공부하기 전에]에서는 숙어의 구성 요소가 되는 전치사와 부사의 뜻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림을 잘 활용해서 보여준다.

 그 다음 장부터는 [하나의 단어]와 관련된 숙어를 보여준다. 나는 숙어라고 특별히 어렵거나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숙어 또한 [단어의 조합]일 뿐이고, 문장 속에서 [하나의 단어]로 역할하기 때문이다. 어원으로 단어를 외우는 영단어 책이 있었듯이, [하나의 단어]가 속한 숙어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러나 방식은 좋았지만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고, 마인드 맵으로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것이 약간의 흠이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그림을 활용한 연상 표현이 적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Come]의 경우에는 [~을 (뜻밖에) 만나다]를 뜻하는 [come across]에서 across가 [교차되는 이미지]라고 적혀 있으나, 이것을 그림으로 활용하여 표현했다면, 더 연상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간혹 예문도 없이 뜨는 숙어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제안하다]를 뜻하는 [come up with]와 같은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up]과 함께 반대 의미를 갖는 [down]을 떠올리니, [come up with]를 [병에 걸리다]를 뜻하는 [come down with]의 위에 위치하게 하면 좋을 것같다. 물론, 반대 의미를 나타내는 화살표는 [회복하다]를 뜻하는 [come to]와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은 변함없다.

 그 다음 장에선 동명사/부정사/분사를 이용한 문법적인 구문이 나오고, 파트 번호 51번부터 100번까지는 깔끔한 편집과 그림을 활용한 부분이 돋보인다. [수를 세는 방법]에선 헷갈리는 단위 표현들을 그림과 함께 정리했고, [동물]과 [여러 가지 색]부분에선 동물과 관련된 속담이나 동물과 색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영어 문화권과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생활/의학/컴퓨터 용어와 국제기관과 경제/경영 용어의 약어를 정리한 부분은 상식에 보탬이 되어 좋았다. 다음 장인 [간판/표지판으로 쉽게 배우는 숙어]는 해외 여행 시에 도움이 되는 부분으로 이뤄져 일회독으로 그치기엔 아쉽다. 그리고 저자가 [여행 가이드]까지 집필할 정도로 영어 문화권에 정통해서, 같은 영어권이지만 단어를 달리 쓰는 미국과 영국의 영어 사용 습관도 알려준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단어 같은 숙어들]은 철자가 많은 고급 어휘들로 구성되어, 이 단어를 마스터하면 CNN 방송을 듣는데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특별히 접착이 우수하고 책 넘김이 편한 PUR방식으로 제본해서 독자를 배려한 측면이 돋보였다. 숙어장이기 때문에 이렇게 책장이 활짝 펼쳐지는 제본 방식이 더욱더 돋보였다. 왜 그간 학습서들은 이런 제본을 하지 않았나 몰라.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일본인 저자의 학술서나 학습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영문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책이 오래전에 출간된 일본 영문법 책을 번역한 것이고, 우리가 학창 시절 내내 배운 것이 [죽은 문법]이라는 충격에 일본인 저자의 영어 학습서를 기피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번역 학습서는 번역에 번역을 거친 것이라 의미가 모호한 문장이 많다. 그래서 학습 부담이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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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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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명성은 허위다. 내가『파피용』을 읽게된 경위에도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된다. 그보다 [뫼비우스의 일러스트]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더 높았을지도 모르지만. 뭐, 소설을 다 읽은 마당에 그렇게라도 [자기 안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안그러면 너무 억울하다. 그에게 특별히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데, 이번 작품에서 특히 그의 [문학적 소양]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기발한 상상력]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만, 그 또한 새롭다고 하기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소설도 과거에 많은 SF소설이 갈고닦은 토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것도 영 어정쩡한 상태로. 이것이 바로 문제다.
 
 인간은 자신들의 요람인 지구를 흔들다가 뒤집어 버렸다. 그들은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구여, 나의 어머니여, 안녕.] 우주의 존재를 알게된 순간, 인간의 습성 중에 하나인 [이동성의 나침반]은 우주 공간을 가르켰다. 그래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였다. 현실에서도 인간의 눈은 우주 공간에 향해 있을진데, 현실의 이상을 그린 소설 속에서야 더 무얼 말하랴. 특히 [인간의 지구 탈출]과 [다른 행성으로의 이동]은 우주선 개발 이전의 과거에도 많은 SF소설에서 볼 수 있는 소재였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한 문제는 이번 작품이 전작들과는 달리 과학의 비중이 줄었다는데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관찰력을 동원하여 [개미들의 제국]을 탄생시킨『개미』와 비교했을 때, 이브의 원대한 계획인 광자 추친 에너지를 이용한 우주 범선 <파피용>호의 몸통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과연, 지름 500m의 원통을 세탁기의 원리로 회전하면 [인공 중력]이 발생해서, 사람들이 원둘레의 표면에 붙어 생활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구의 중력도 지구가 어떤 물체를 잡아당기는 인력과 지구의 자전에 의해 가해지는 원심력에 의해 생기는 것인데, 고작 지름 500m의 원통을 회전시켜 [원심력]만으로 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다. 이론적으론 가능할지 몰라도 지구와 같은 생태 자연 환경까지 만들어내기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혹시나 반지름이 500m라면 몰라도. 총길이는 32km에 달하면서, 왜 지름은 고작 500m인가. 지구라는 공이 워낙 커서 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내 머리의 500m위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면 [원통의 회전]을 의식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까. 머리 위에서 자전거가 돌아 다니고, 호수가 있고, 식물이 자라고, 건물이 건설되어 있는데. 사실, [원심력]이란 단어조차 소설 속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불친절한 베르베르 씨는 과학보다는 환상을 헤맨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로선, 조금은 [과학]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존재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과학 지상주의]나 뭐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과학]이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리얼리티를 상실했다.
 
 내가『파피용』을 읽으며 나에게 던진 질문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우습게도 [내가 파피용호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는가?]였다. 우선 제외 대상인 [정치인, 군인, 목사]가 아니니까 1단계에서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트가 제시한 [건강]과 맥 나마라가 제시한 [젊음]의 조건에 부합하고, 아드리앵이 제시한 [전문직]에는 조금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또 내가 특별히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마지막 희망 Dernier Espoir>이란 프로젝트 명에 혹해서, 분명 명확한 [동기 의식]을 갖출 것이고, [성공을 바라는 믿음] 또한 어느 누구보다 클 것이다. 그리고 나름 [열정]도 지니고 있으니 힘들지 않게 파피용호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파피용호에 올라타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이브가 가진 회의만큼이나 이 생각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리라 생각된다. 이제 더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지구를 떠나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 생각하고 파피용호에 올랐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마지막 희망>이라 할 수 있을까, 지구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면, (이제 [하늘]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되겠지.) 형광등처럼 생긴 [인공 태양]과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이 보이고,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없는 공간에서, [내가 과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답은 하나. 나는 파피용호에 오르지 않을 것이고, [지구]에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파피용호에 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한 시도가 많을수록 성공의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 굳게 믿고, <최후의 인간>을 태운 정자라고 여기고, <최초의 인간>을 전파하기 위해 힘쓰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나름대로 지구에 남아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고, <최후니 최초니 따지지 않는 인간>이 되어, 마지막까지 <어머니 지구>를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지 않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내가 앞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판한 이유를 말하겠다. 그는 우리나라에『나무』라는 [유일무이]한 베스트 셀러를 탄생시킨 명실공히 베스트 셀러 작가다. 이 [유일무이]란 단어에 숨겨진 이면에는 [유일무이한] 베스트 셀러이기 때문에, [다시는 나오지 않아야 할] 베스트 셀러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베스트 셀러는 무조건 좋은 책]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한 우려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작품에선 실망이 무척 컸지만, 차기작인『신』3부작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 때문일까. 훗, 나도 어쩔 수 없군.

 창시자 5명이 죽고 나서 천 년의 시간은 더이상 희망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했다.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을 마치 역사 교과서를 요약하는 듯한 서술 방식이다. [인간의 역사]라는게 [전성기]가 있으면 [퇴화기]가 있고, [퇴화기]가 있으면 [전성기]가 있는 하나의 사이클로 구성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듯이, 우리 인간은 언제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이쯤에서 [불량품]이 하나 나와 준다면, 그것이 <마지막 희망>일까. 나는 덜렁대고 소심한 이브를 믿고 그를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정신적으로 지지를 아끼지 않은 [맥 나마라]가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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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7-08-2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파피용』을 읽으며 나에게 던진 질문=====이후 글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정의 2007-08-29 17:48   좋아요 0 | URL
으힛, 감사합니다^^

현욱과연수 2007-09-0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유명한지도 모르고 접한 책입니다. 당연히 전작이라는 개미와 나무도 보지 못한 채 읽은 책이 파피용이었읍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의 열광에 꽤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솔직히 정의님과 비슷한 느낌에 많은 실망을 했는데, 서평을 쓰면서는 그 표현을 직설적으로 못하겠더군요.. 그래도 웬지 작가로 쓰는데, 고생했겠지 싶어서, 좋은 표현으로 우회적으로 짧은 문장 실력에 애먹고 서평을 썼는데, 정의님의 글을 읽으니,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이렇게 정확한 지적을 해야할 필요가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읍니다. 머리속의 어수선함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읽은 책의 서평을 써 나갈 수록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써 나가면서 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야를 갖게 해주는 일이기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의님의 서평을 보면서 이제 앞으로는 다른 분들의 서평도 세심히 보면서 제가 느낀 부분과 다른 분들의 느낀 부분,그리고 표현법의 차이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책읽기를 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 여지껏은 제가 쓴 글을 누가 얼마큼 읽어는지 숫자 확인만 해 보는 단순함 뿐이었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의 2007-09-05 16: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속이 다 시원해지신다니 기분이 좋네요.
이렇게 큰 칭찬을 받게 되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 결심 꼭 이루시길 바라구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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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순위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와 에쿠니 가오리를 물리치고 무려 7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녀는 수상경력도 화려한데, 87년에 데뷔작『우리들 이웃의 범죄』로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았고, 89년『마술은 속삭인다』로 일본추리 서스펜스 대상, 92년『용은 잠들다』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 상, 93년『화차』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 97년『가모저택 살인사건』으로 일본 SF 대상, 99년『이유』로 제120회 나오키 상, 2001년『모방범』으로 마이니치 출판 대상 특별상, 2007년『이름없는 독』으로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상을 수상했다. (책 날개 참고)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작품은『스텝파터 스텝(Stepfather Step)』이었다. 프로 도둑이라 자부하는 화자보다 복합언어를 구사하는 쌍둥이의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았고, 귀엽고 발랄하고 유쾌한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에서 익히 느꼈기에 그닥 끌리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보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거기다『모방범』의 방대한 양으로 인해 중도 포기하게 되고, 그 후에는 딱히 그녀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나는 지갑이다』의 원제는「기나긴 살인 長い長い殺人」으로, 내용은 원제에 어울리게 1년 6개월간 벌어진 보험금을 노린 네 건의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각 파트의 화자는 사건과 관계된 어떤 인물의 지갑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형사가 되고, 탐정이 되고,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고, 범인이 된다. 지갑은 그 인물의 가장 가까운 소유물이다. 범인의 지갑처럼 서랍에 방치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지갑을 소지하고 다닌다. 그러나 지갑은 단순히 관찰하는 입장에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몰입도를 높이지 않았나 싶다. 독자가 등장 인물에게 개입할 수 없듯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지갑 역시 인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고, 위험한 순간에 그 인물에게 경고등을 켤 수도 없다. 그래서 독자는 단지 전해주는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 있다. 지갑의 수만큼이나 많은 인물이 다양한 성격으로 그려지는데, 재미있는 것은 지갑들조차 그 주인의 성격과 동일하거나 유사하지 않고 각자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버스 안내양의 지갑은 그녀를 보호하려 하고, 탐정의 지갑은 아예 그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소년의 지갑'과 '탐정의 지갑'이었다. 두 사람은 힘이 없거나 너무 늦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고, 그녀를 가슴에 묻고 살아갈 남은 사람들이기에 가슴이 저리고 안타까웠다. 10개의 지갑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연작 단편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빠른 전개와 몰입도를 높여줬다. 읽다 보니 내가 지갑을 너무 홀대한 건 아닌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빨간 지갑을 샀는데,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진 게 홀대한 이유랄까. 내 지갑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출판계는 과거로 회귀한 듯 보인다. 이미 많은 팬층을 확보한 일본작가의 데뷔작이나 초기작으로 방향을 돌린 것 같다. 아니, 이미 많은 작품이 쏟아진 탓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방향을 환영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왕이면 출간시기 순으로 만나보고 싶은 맘도 있지만, 아예 안 나오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시류에 휩쓸려 나온다 쳐도 '천재 작가'를 탄생시킨 작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팬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탄생이 언제나 범상치 않았음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발전하고 변화하고 전환점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흐뭇하다. 작가의 성장 과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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