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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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정이현과의 첫 만남은 신문지상에서였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서 그녀와 한 노(老)교수가 격주간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젊은 신인 여자작가가 상큼 발랄한 문체로 젊은이로써 진지한 질문을 툭툭 던지는 것을 보고 약간의 관심과 함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녀와 두 번째로 만난 것은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그것은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사실 그녀의 문체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로맨스 소설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그리는 30대 여성, 오은수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독자와 작품의 만남'에는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있지 않나 싶다. 내가 그녀와 만날 당시에 문학계에선 [쇼퍼홀릭]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칙릿(Chick-lit) 소설이 인기였고, TV드라마에선 [내 이름은 김삼순]과 [올드 미스 다이어리]같은 드라마가 열풍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로 만난 그녀의 작품은 [오늘의 거짓말]이다. 연예인 학력 위조와 신정아 씨 사건으로 인해 뒤숭숭한 시기에 '거짓말'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만난 것도, 내가 앞서 말한 '적당한 시기'에 속할텐데 느낌은 "글쎄?"였다. '거짓말'보단 '음모론'에 초점을 맞춰서 흥미를 유발하려는 듯하다.

 처음엔 얇은 두께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고해서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15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내게도 그리 멀지않는 과거인데도 불구하고, 형언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우선 [비밀과외]에서 보여지는 80년대 중반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의 유년시절을 그린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클럽]과 비교하겠다. 박민규 작가의 글에서 나는 프로야구와 함께 자라난 그들에게 질투가 날 정도였지만, [비밀과외]의 소녀에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편의 수상작인 [타인의 고독]과 [삼풍백화점]에 대해서는 공감보다도 아무런 감상이 없었다. 2004년 제5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인 [타인의 고독]에선 그나마 '자유의 대가로 고독을 지불해야 한다'라는 명대사를 찾았지만,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삼풍백화점]은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도 없고, 엄마도 그 당시에 '삼풍백화점'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해서 그런 듯싶다.

 의외로 와닿았던 소설은 조금 식상한 구조의 [어금니]였다. 그것은 '적당한 시기'와 연관해서 해석할 수 있는데,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을 함께 읽었기 때문에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잘못을 덮어주려는 부모에 대한 내용이 연상작용을 일으켜서 더 의미가 깊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목과 줄거리의 호환성'도 가장 어울렸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중심소재인 '어금니'가 '아들'을 의미한다는 것도 충치가 생긴 어금니를 바로 뽑아버려야 하지만, 차마 뽑아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화자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평생 자식과도 자신과도 화해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말도.

 요즘 우리 문단에 불고 있는 바람이 정이현의 글에서도 보인다. 바로 장르적 특성을 혼합하는 것인데, [빛의 제국]과 [어두워지기 전에], [익명의 당신에게]가 그렇다. [빛의 제국]은 한 소녀의 자살에 둘러싼 의문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제목만 보고선 무슨 내용인지 영 감이 안 잡힌다. 내가 아는 [빛의 제국]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온다 리쿠의 [도코노 일족] 시리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화자가 자신의 남편을 유아 살해범으로 오인하는 내용인데, 초반에서 중반까지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나가다가 후반에서 폭삭 주저앉았다. [익명의 당신에게]도 비슷한 패턴인데, 병원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의 증언과 '화자'가 결정적 단서를 잡는 등 사건의 진행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더욱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렸다. 그러나 역시 결말의 마무리가..

 [그 남자의 리허설]의 경우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위험한 독신녀]는 초중반의 설정보다는 후반의 마무리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빛을 발한다. 1991년에서 기억이 멈춰버린 '채린'이, 아직도 자신을 20대 초반으로 여기는 '채린'이 위험할 거라 생각했지만, '위험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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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9-3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소설집은 기대가 잘 안 되네요. 'ㅁ'음~~

정의 2007-09-3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전작보다 강하게 끌리는 맛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맛으로 표현하자면 그냥 밋밋한 맛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