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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오츠 이치가『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로 집영사에서 주관하는 [제6회 점프소설 대상]을 수상하고 작가로 데뷔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보니, 당시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지 상상이 간다. 데뷔 7년후에 출간한 단편집『ZOO』를 읽고 데뷔작을 평하는 것이 어느 정도 무리일지 모르나, 17세의 어린 소년이 발표했다기엔 충격적이고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 논란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죽은 소녀'가 화자로 등장하고, 자신의 사체를 숨기는 남매의 모습을 담담하게 혹은 천진난만하게 전하는 모습때문일 것이다. 화자는 마치 [피해자]이기 보다는 [공범자]인 마냥, 어른들을 상대로 [시체 유기]가 아니라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무척 즐거워 보인다. 소녀는 해마다 남매와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했듯이 올해도 역시 이렇게 셋이서 함께 불꽃을 구경하러 왔다며, 높다란 돌담 위에서 보는 불꽃은 더욱 아름다웠고, 그 매혹적인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죽은 소녀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하나 더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앨리스 세볼드의『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한 14세 소녀의 영혼이다. 소녀는 범인을 용서하고, 때로는 그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가족들의 곁에 영혼으로 남아서, 가족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렇게 두 소설은 비슷한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전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음 작품인 [유코]에서는 저주받은 집안에 이어져 내려온 업보로 인한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유코]보다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가 더 좋았다. [유코]에서 주인공인 '키요네'가 인형에게서 좀처럼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어 [조금 쓸쓸했다]고 마무리한 것에 비해,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에서 '카고메 카고메' 노래는 쓸쓸하게 울려 퍼지지만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고 말하는 소녀 '사쓰키'의 마지막이 더 작품의 초반에 느꼈던 감상이나 분위기를 면밀히 이어갔다.
이 작품에서 문장이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받은 것과 달리, 단편집『ZOO』에선 분량은 다소 짧아졌으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짜임새있게 구성한 면이 돋보인다. 데뷔작을 읽고 나니 그가 지금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게 내심 기쁘기 그지 없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에는 나의 성향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 꺼려졌으나, 점차 그의 강렬한 필치에 마음이 끌려서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데뷔작에 대한 기대치를 상승케 했으며, 그 기대는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