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S.S.반다인' 등 [서양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동양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선 한 문장도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 '모든 문장은 등장인물에 대해 알려주거나 사건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글쓰기 법칙]을 완벽하게 충족한다. 그는 그만큼 영리한 글쓰기를 한다. 그게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추리장르를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라 여기는 내게, 추리만화에서 탐정이 [네모칸 밖의 단서]를 보고 범인을 알았다고 외치는 것은 [정정당당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리장르의 묘미를 [추리 그 자체]라고 여기고, 범인이나 트릭, 반전을 맞추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본격팬]으로썬 추리장르에서의 [정정당당함]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는 독자와 [정정당당]하게 대결에 임한다. 

 작가가 독자와 단서를 공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대부분 추리소설에서 나타나는 역할관계는 [작가]의 역할은 범인의 정체를 숨기는 [공범자]이자, [범인 은닉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향유하는 [독자]들은 범인을 밝히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에 이입된다. 그러니 단서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독자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에 다가가고, 종국엔 [사건의 진상]에 먼저 도달한다.

 그래서 작가가 즐겨 쓰는 방법이 [선입견에 의한 트릭]이다. 여기선 [초석 트릭]이라고 하나,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만약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고 치자, [그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라는 작가의 진술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수상하다]고 여긴다. 이미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이 아닌 [밤샘 조사때문에 피곤해서]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선입견]이란 게 참, 무섭다. [초석], 이렇게 생긴 [선입견]을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 [트릭]을 위한 주춧돌을 만드는 것이다.『방과 후』는 1985년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다. 미스터리 분야에 대한 좁은 식견으로 말하자면, 내가 지금껏 읽은 데뷔작 중에서 가히 최고라 평할 수 있다. [이것이 정녕 데뷔작이란 말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반의 [밀실 트릭]은 그렇게 대단치 않으나, 후반의 [초석 트릭]은 정말 대단하다. [밀실 트릭] 역시 [초석 트릭]을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살해 동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것은 아쉽다. 누구나 한 번쯤 [살의(殺意)]를 느낀다. 그것이 언제든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 생각하면 너무한 것인가. [당사자의 고통]이 그만큼이라면 동기로썬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살해]란 행위에 대해서까지 관대한 입장은 당연히 아니다. 작가가 던진 단서들을 조합해서 소설의 중반 쯤에, [범인]과 [공범]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앞서 읽은 동생에게 확인을 해봤는데 맞아도 맞다고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부분에 유난히 약해서 대단하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범인]과 [공범]의 위치가 살짝 어긋났었지만, 그의 [정정당당함]에 즐거웠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소개하면서 그의 작품에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을 거론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마지막 문장을 공개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주인공인 마에시마의 독백인 [아무래도 기나긴 방과 후가 될 것 같다]이다. 동생과 의견이 분분한 문장이었지만, 소설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고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문장들만 모아도 괜찮은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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